[대일논단] 전세사기 피해, 국가책임을 인정해야 한다

장철민 국회의원 2023. 11. 1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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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철민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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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사회적 재난이다. 전국 전세사기 피해 규모가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전세사기 피해 신청을 받기 시작한 6월 이후 11월까지 피해 접수는 전국 1만 건을 넘어섰다. 그런데도 전세사기 피해 사태 책임을 피해자들에게만 온전히 지게 하는 것은 너무나 가혹하다. 후순위 채권으로 내몰려 보증금을 못 받게 된 것도, 선순위 임차보증금을 확인할 수 있는 제도가 없이 계약이 이루어진 것도, 당시 준법의 틀 내에서 피해자들이 결정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국가가 불량품 같은 제도를 팔았고 정부와 국회는 제도의 부존재를 방치했다. 올 4월 「주택임대차보호법」이 개정되면서 선순위 임차보증금 등에 대해서 의무적으로 제출하는 제도 개선이 이뤄졌지만, 그전에는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사실상 피해를 예방할 수 있는 장치가 아예 없었다. 이 과정에서 법원, 금융기관, 공인중개사 등의 역할 부재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국가기관인 LH조차 제도의 미비로 피해를 봤다. LH는 최근 전세임대주택 155호를 사기당했다. 시세보다 높은 부채가 있을 경우 계약을 할 수 없는 제도지만, 증빙서류를 받는 과정에서 임대인이 선순위 임차보증금 규모를 허위로 속여 LH와 계약했다. 건물이 구분등기 되지 않아 선순위 임차보증금을 확인하기 어려운 다가구주택의 맹점이었다. 제도적·시스템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LH조차도 사기를 당했다.

지난 5월 국회는 전세사기 피해지원 특별법을 처리하며 연립주택, 다세대, 비주거용 오피스텔 등 피해자들에 대한 전세사기 피해자 인정 길을 열어줬다. 반면 피해자 기준과 피해인정 이후 복잡한 지원 절차 등에서 당시 특별법을 면밀하게 살피지 못했던 부작용이 계속 나타났다. 우선매수권, 저리대출, 긴급주거지원 등 특별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지원대책 실적은 매우 저조해 피해자들에게 실효성 있는 구제 방법이 아니었다. 게다가 다가구주택, 신탁사기 등 특별법에서 포괄하지 못한 피해 유형에 대한 문제까지 불거졌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대전의 피해규모는 최소 2,000세대에 건물은 200채 이상, 피해보증금 규모는 최대 5,000억 원을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대전지역 피해자 약 75%가 다가구주택이다. 다가구주택은 구분등기가 돼 있지 않아 임차인 전원의 동의를 득하기가 매우 어렵다. 이에 우선매수권과 경·공매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호별로 매매가 불가능하고 다가구주택 내 기존 세입자와의 마찰 등 공공 매입을 통한 임대주택 공급도 실현 가능성이 낮다. 그야말로 출구가 막혀있다.

대등한 정보와 계약의 신뢰라는 자본주의 시장질서가 작동하지 않았다. 피해자들의 85%가 대학생 및 사회초년생의 2030이다. 가장 억울하고 가장 취약한 계층이 가장 위험에 노출돼 있다. 대전은 타 지역에 비해 높은 비율의 다가구주택 등 사안이 특수하고 복잡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피해자분들은 지원은커녕, 제대로 된 안내조차 못 받고 있다. 오죽하면 피해자대책위에서는 감정적 위로라도 해달라 호소하고 있는 지경이다. 전세사기 피해는 더 이상 사인 간 거래로 치부해선 안 된다. 대등한 정보와 계약의 신뢰라는 자본주의 시장질서가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피해에 대해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오히려 반시장주의며 반자본주의다.

이제는 전세사기 피해에 대해 사회적 재난에 준하는 국가배상 수준이 필요하다. 그것은 이번 사태에 대해 정부와 국회는 제도의 부존재 책임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번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를 통해, 정부에 대전만의 전세피해지원센터 설치를 강력하게 촉구했다. 그 결과 11월 말 대전전세피해지원센터 출범이 확정됐다. 당장 사안의 복잡성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안내할 수 있는 급한 불은 껐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

피해자 금융지원을 위한 피해지역 내 전담 금융 창구 지정도 서둘러야 하고, 지자체별로 상이한 지원체계도 개선해 피해자들이 느끼는 추가적인 상실감과 박탈감을 없애야 한다.

이번 정기회에서 기존 특별법 보완과 함께 다가구주택, 신탁사기 등 전세사기 피해 사각지대를 포괄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지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제도의 부재와 관련기관의 역할 부재에 기인한 공공의 책임을 명확하게 확립해야 할 것이다.

장철민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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