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주의는 가라, ‘핵개인’ 캐릭터의 반란[이주영의 연뮤 덕질기](14)
요즘 ‘핵개인 시대’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개인주의가 극대화된 시대라고 착각하기 쉽지만, 오히려 반대다. ‘중심’ 혹은 ‘씨앗’이라는 의미의 ‘핵’이 접두어이니, ‘나 자신의 본질과 자율에 충실한 시대’로 포괄할 수 있다.
빅데이터 전문가 송길영은 저서 <시대예보: 핵개인의 시대>(2023)에서 “자기 인생의 능동적 결정권을 서로 존중해 주었을 때 이 시대의 개인들은 자기 삶과 사회 모두에게 책임을 다하는 핵개인으로 거듭난다”고 했다. “그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는 시대”이며 “서로가 서로에게 각자의 길을 허락한다면 기존의 불합리했던 권위주의는 깨질 수 있는 시대”다. 따라서 필자는 ‘자기 주도적인 삶을 통해 불합리에 균열을 일으키는 선순환의 존재’가 ‘핵개인’이라고 해석해 보았다.
뮤지컬 <비더슈탄트>의 주인공 매그너스와 아벨이 그러하다. 1938년 독일 나치 시대 엘리트 스포츠학교 펜싱부의 17세 동갑내기인 이들은 펜싱선수가 꿈이다. 인종차별 수업에 반발하다 감금되면서 자신들이 유대인 학살에 참여하는 나치군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급기야 1938년 11월 9일 ‘수정의 밤’(Kristallnacht·거리에 흩어진 유리 파편에서 유래한 대대적인 나치의 유대인 폭력사태)에 무장 동원돼 학살 현장을 목격한 그들은 나치의 만행을 알리는 전단을 배포하기에 이른다.
조선 중기 화가 최북의 삶과 작품세계를 연극적 상상력으로 재해석한 뮤지컬 <칠칠>은 신분제도와 권위주의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조선판 ‘핵개인’ 이야기다. 양반가의 금지옥엽인 최북(실제 최북은 중인으로 알려져 있다)과 노비 무명은 형제처럼 자랐다. 최북은 그림에만 빠져들고 무명은 학문으로 일가를 이룬다. 불합리한 차별은 둘의 재능을 죄악시한다. 무명은 뜻을 펼치지 못하는 세상을 스스로 놓아버리고 최북은 자신의 눈을 직접 찌른다.
서로 다른 시대, 다른 세계관의 작품들이지만 거대한 폭력과 불합리에 맞서는 자기 주도적인 인물들이 이끌어간다는 공통점이 있다. <비더슈탄트>(Widerstand)는 ‘저항’이라는 의미의 독일어로 실제 나치 저항 활동에서 착안한 창작 뮤지컬이다. 김태형 연출은 권위와 불합리에 가하는 저항과 균열을 무대에 담아냈다. 나치를 상징하는 견고한 성벽에는 깊고 긴 칼자국이 자리한다.
목소리가 봉인된 청소년들이 펜싱대회에서 모스 부호를 변형한 발 구르기로 소통하며 히틀러를 향해 펜싱 칼을 휘두른다. 무대 전체가 굉음을 내며 칼자국 부분이 어긋나고 거대한 성벽은 기울어진다. 이어 나치의 만행을 알리는 전단이 객석 전체에 쏟아진다. ‘수정의 밤’에서 조명을 이용해 유리 조각이 객석 가득 퍼지도록 연출한 것과 같은 맥락의 관객 체험장치다. 출연진들은 펜싱경기 장면을 위해 한 달 넘게 훈련에 임했다. 펜싱(fencing)은 지킨다는 의미의 펜스(fence)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친구들과 나 자신의 존엄과 자율성을 지키기 위함이다. 대표 넘버 ‘비더슈탄트’의 “우리는 눈을 떠야 한다”가 작품 내내 반복되며 자기 주도적인 삶을 돌이키게 한다.
뮤지컬 <칠칠>에서 최북은 신분제와 권위주의에 저항하다 친구를 잃고 한쪽 눈도 잃었으나 삶의 의지를 불태운다. 자신의 이름인 북(北)이 마치 칠(七) 자가 등을 맞대고 있는 모양이라며 호를 칠칠(七七)로 지은 것도 친구를 새기기 위함이다. 초연의 오세혁 연출과 재연의 이기쁨 연출이 실제 최북의 작품들을 영상화해 서사에 녹여냈다. 무명의 과거급제를 기원한 손가락 그림 ‘게’, 서재에 앉아 있는 상상인 ‘북창한사도(北窓閑寫圖)’가 애달프다. 금강산에서 투신하고 자신의 그림을 찢고 불태우는 등 기행 속에서도 무명과 함께하는 세상을 담은 ‘창해관일본(滄海觀日本)’, ‘공산무인도(空山無人圖)’ 등은 뮤지컬 <칠칠>의 근간이다. 대표 넘버인 ‘살아 있다’를 통해 최북은 “아직 나는 살아 있다. 내 안에서 치열하게. 나는 나를 미워하고 괴로워하면서 나로서 살아간다”고 절규한다. 관습을 타파하고 자기주도적인 삶을 살겠다는 다짐이고 선언이다.
연극 <카페 쥬에네스>의 ‘핵개인’은 찰나의 삶을 산다. 불어로 ‘청춘’을 뜻하는 쥬에네스(Jeunesse)는 1929년 일제강점기를 살아간 청년들의 낭만과 비애를 다루고 있다. 만주와 러시아에서 의열단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고문에 시달리다 탈출한 정신은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며 카페를 운영하는 해원과 함께 작전을 수행 중이다. 독립운동가의 아들이었으나 가족을 잃고 일제 앞잡이가 된 아키가 독립운동가 자녀들을 도피시키려는 이들의 작전을 눈치챈다. 해원은 자신의 딸을 볼모로 삼은 아키에게 결국 굴복하고 만다.
카페 쥬에네스는 애잔한 음악이 흐르는 공간이다. 찰나에 지나가는 청춘의 아름다움과 혼돈이 통기타와 마이크, 위스키와 보드카, 크리스털 유리잔 등의 소품들로 대변된다. 좁고 긴 타원형 무대는 카페 쥬에네스를 중심으로 경성 골목과 광장의 대치 상황을 상상하도록 3개의 공간으로 나뉜다. 해원은 이 좁고 혼란스러운 공간에서 자신의 변절을 목격한 동료를 총살한다.
독립운동가 서사를 변절로 마무리하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있어야 하는 일이다. 관객과의 대화에서 오인하 연출은 “친일파와 반역자들에 대해 청산되지 않은 역사를 돌아보고 기억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처럼 독립운동은 지금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비더슈탄트>의 매그너스와 아벨, <칠칠>의 최북과 무명, <카페 쥬에네스>의 독립운동가들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주어진 삶에 책임과 최선을 다한 핵개인들이었다. 기존의 권위주의는 이런 능동적인 핵개인들에 의해 균열에 이른다. 수직 계열화되지 않는 세상이 온다. 모두가 존중받고 모두의 입장에 귀를 기울이는 새로운 권위가 부상한다. 최근 대학로의 무대극들이 내는 목소리이기도 하다. 세 작품 모두 11월 26일까지 상연한다.
이주영 문화칼럼니스트·영상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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