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두의 꼬치 COACH] “가장 중요한 건 소통과 믿음이에요” 가스공사 김상영 코치

조영두 2023. 11. 16.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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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조영두 기자] 현재 KBL과 WKBL에는 총 46명의 코치가 각 팀의 감독을 보좌하고 있다. 이중 스타플레이어 출신이 있는 반면, 선수 시절 다소 주목을 받지 못했던 코치도 있다. 이번 코너에서는 선수시절 화려한 경력은 아니었지만 지도자로서 가치를 인정받은 이들을 소개하려고 한다.

11월호 주인공은 대구 한국가스공사 김상영 코치다. 2007년 프로 데뷔 3년 만에 일찌감치 현역 은퇴를 선언한 김상영 코치는 원주 DB 유소년 농구교실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지도자의 꿈을 키웠다. 이후 상무 코치로 장창곤 감독을 보좌했고, 올 시즌을 앞두고 강혁 감독대행의 부름을 받아 가스공사에 합류했다. 그는 소통과 믿음을 바탕으로 지난 시즌 하위권에 머무른 가스공사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부드러운 지도력으로 팀에서 큰 신뢰를 얻고 있다.

※본 기사는 농구전문매거진 점프볼 11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어떻게 농구를 시작하게 됐는지?
예전에는 동사무소에 키 큰 학생들 이름을 적어 놨다. 운동선수로 선발하기 위해서다. 한규돈 선생님께서 내 이름을 보시고 우리 집에서 와서 부모님께 말씀을 드렸다. 나는 배구인줄 알고 연습을 열심히 했는데 알고 보니 농구였더라. 그렇게 성자초 농구부에 합류하게 됐다. 시작한지 얼마 안 되어서 일본 센다이로 단체 홈스테이를 떠났다. 나와 같이 살던 일본인 친구의 아버지가 협회 회장직을 맡고 계셨다. 그래서 좋은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들었고, 거기서 흥미가 생겼다.

휘문고 시절 방성윤과 함께 팀을 이끌었지만 중앙대 진학 후에는 부상으로 고생했다.
휘문고 시절에는 농구를 정말 재밌게 했다. 내 신장이 큰 편이라 장신 가드로 주목을 많이 받았다. (방)성윤이의 3점슛을 살려주기 위해 계속 패스를 줄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자연스럽게 패스의 길을 알게 됐고, 시너지 효과가 났다. 대학 시절에는 부상이 있었다고 하지만 솔직히 내가 열심히 안 했다. 그럼에도 송영진, 박지현 등 좋은 선배님들이 나를 잘 잡아주셨다. 정신 차려서 3학년부터 다시 열심히 해보려고 했는데 발등 피로골절로 수술을 받았다.

2004년 KBL 신인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2순위로 창원 LG에 입단했는데?
당시 부상으로 트라이아웃을 뛰지 못했다. 드래프트 전에 1라운드 지명을 받을 거라는 예상이 있었는데 2라운드로 밀려서 충격이 컸다. 상처도 많이 받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열심히 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 후배들이 과거의 나처럼 되지 않도록 도와주려 하고 있다.

데뷔 시즌 벤치에 있는 시간이 많았는데 마음고생은 없었는지?
팀 성적이 꼴찌여서 마음고생 할 겨를이 없었다. 어떻게 보면 대학 시절의 연장선이다. 그 때도 정신을 못 차렸다. 열심히 하기보다 안일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자만심과 안일함 때문에 프로에서 살아남지 못한 것 같다.

해당 시즌 종료 후 원주 동부(현 원주 DB)로 트레이드 됐다.
강동희 감독님이 LG 코치로 계시다가 동부 코치로 가셨다. 나에게 동부에서 식스맨으로 뛰어보자고 하셨고, 덕분에 트레이드가 됐다. 사실 당시에 사정이 있어서 (대구) 오리온스(현 고양 소노)에 3, 4개월 정도 있다가 동부로 다시 팀을 옮겼다. 시범경기까지 뛰었다. 그 때 팀에 김진 감독님, 김승현 선배님이 계셨는데 짧은 시간이었지만 도움을 많이 받았다.

동부 이적 후 어느 정도 출전 기회를 받았는데?
인생을 살면서 한두 번은 기회가 오더라. 그 때가 나에게는 기회였다. 근데 내가 잡지 못했다. 이미 열심히 하지 않고 있던 상황에서 뒤늦게 무언가 해보려고 하니 잘 안 되더라. 나를 믿고 데려오신 전창진 감독님, 강동희 코치님께 죄송했다. 자만심과 안일함이 끝까지 내 발목을 잡았던 것 같다.

2009년 상무에서 군 복무를 마친 후 갑작스럽게 현역 은퇴를 선택했다.
살면서 인생의 가장 큰 전환점을 맞이한 곳이 상무다. 상무에서 결혼을 했고, (양)동근이와 같이 생활하면서 충격을 많이 받았다. 몸 관리를 정말 잘하고, 농구에 대한 열정도 뛰어났다. 낮잠도 자지 않더라. 최고의 선수가 저렇게 노력하는 걸 보면서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동근이를 보며 마음을 다잡았고, 열심히 몸을 만들어서 팀에 복귀했다. 그런데 어느 날 구단에서 전화가 오더라. 나를 부르더니 매니저 해볼 생각이 없냐고 물어보셨다. 강동희 감독님께서 냉정하게 내 기량이 안 된다고 판단을 하셨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지만 감독님이 그런 생각을 하셨다면 나는 경쟁력이 없을 거라고 봤다. 새 인생을 빨리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고, 매니저 제의를 수락하게 됐다.

선수 시절에 미련이 남을 것 같은데?
전혀 미련이 없다. 나 스스로 열심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프로에 있는 선수들을 보면 모두가 고등학생 때 잘했다. 하지만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나는 열심히 해야 될 시기에 열심히 하지 않았다. 사실 아내에게 가장 미안하다. 상무에서 결혼하고 전역 후 은퇴하는 바람에 내가 프로에서 뛰는 걸 보지 못했다. 후회보다는 아쉬움이 조금 남는다.

“유소년 코치하며 지도자의 꿈을 키웠어”
현역 은퇴 후 10년 가까이 동부 매니저로 일했던 김상영 코치는 2017년 DB 유소년 농구교실 코치가 됐다. 아이들을 성정하는 걸 보며 뿌듯함을 느낀 그는 본격적으로 지도자의 생각을 갖기 시작했다. 2019년에는 상무 코치로 합류해 프로선수들과 함께 생활하며 또 다른 경험을 쌓았다.

매니저로서 어떤 업무를 했는지?
현재 매니저들 업무와 똑같다. 선수단, 감독님, 코치님들까지 모든 스케줄 관리를 맡는다. 선수들이 편하게 운동하도록 만들어주는 게 매니저의 역할이다. 매니저 경험이 인생에 많은 도움이 됐다. 사회생활의 큰 자산이다. 그리고 나는 당시 팀에 계셨던 이세범 코치님, 故표명일 코치님, 배길태 스카우트님께서 전력분석을 같이 할 수 있게 도와주셨다. 너무 감사할 따름이었다.

2017년부터 DB 유소년 코치로 활동했는데?
그 때 이상범 감독님이 새로 오셨다. 나이가 있다 보니 매니저를 그만 둘 때가 됐는데 당시 차장님이셨던 이흥섭 사무국장님이 나를 좋게 봐주셨다. 다른 일을 하기 전까지 유소년 아이들을 가르쳐보라고 기회를 주셨다. 그래서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이때부터 지도자의 꿈을 키웠다. 5살 친구들을 가르쳤는데 습득력이 정말 빠르더라. 대표반을 맡아서 대회에 나가기도 했다. 굉장히 희열이 컸다. 천직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클럽팀이었는데도 엘리트팀처럼 훈련을 시켰다. 스위치 수비나 아이스 수비까지 했었다. 잘하는 게 보이니까 더 해주고 싶은 마음에서 그랬다. 다행히 부모님들도 좋아해주셨다.

2019년부터 상무 코치로 합류했다.
장창곤 감독님께서 연락을 주셨다. 살짝 고민이 되더라. 나는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차근차근 올라가고 싶었는데 기회가 너무 빨리 왔다. 그래도 지도자의 꿈이 있었기에 상무로 가게 됐다. 사실 상무는 코치가 매니저 역할까지 다 해야 된다. 그리고 프로선수들을 상대해보니 아이들을 가르칠 때만큼의 희열이 없더라. 확실히 상무에 오는 선수들은 개인훈련을 정말 열심히 한다. 자기관리도 잘한다. 그래서 개인훈련 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옆에서 봐주곤 했다.

2022년 상무 코치를 그만두고 분당 삼성 유소년 코치로 활동했는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지도자가 하고 싶었다. 사실 유소년이 아니라 중고등학교를 생각했다. 장창곤 감독님께 잘 말씀드리고 상무에서 좋게 나왔다. 이후 조금 쉬고 있는데 분당 삼성 금정환 원장님께서 같이 해보자고 제안해주셨다. 분당 삼성 아이들은 확실 실력이 뛰어나더라. 그래서 좀 더 심화 과정으로 들어갔다. 체력 훈련도 시켰다. 체력이 부족해서 발이 안 떨어지면 아무 것도 못 한다. 체력이 기본이 되어야 된다고 생각했고, 아이들이 발전하는 걸 보며 역시 희열을 느꼈다.

요즘 유소년 농구를 보면 클럽팀이 엘리트팀을 자주 이기는데 어떤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지?
선생님들의 수준이 높아졌다. 엘리트 농구를 경험했던 선수들이 은퇴하고 클럽 지도자를 많이 한다. 과거 클럽팀은 즐겁게 농구하는 게 목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클럽팀을 엘리트팀처럼 운영하면서 자연스럽게 실력도 올라갔다. 그걸 보며 학부모님들도 욕심이 생기고, 더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엘리트팀보다 클럽팀 경기에 관중들이 더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클럽팀에서 농구를 하다가 너무 좋으면 엘리트팀으로 스카우트 되어서 넘어가곤 한다.

“패배를 하더라도 단단한 팀이 됐으면”
분당 삼성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김상영 코치는 올 여름 인생에서 또 한번의 큰 변화를 겪게 된다. 새롭게 가스공사의 지휘봉을 받은 강혁 감독대행이 코치 제안을 한 것. 김상영 코치에게 고민이라는 단어는 필요가 없었다. 곧바로 팀에 합류한 그는 패배의식에 젖어있는 선수단 분위기 쇄신을 위해 힘썼다. 아직 초보 지도자에 가깝지만 시즌을 치르며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올 시즌을 앞두고 가스공사 코치로 합류했는데?
내 인생에서 기적 같은 일이다. 강혁 감독대행님이 연락을 주셨다. 감독대행님이 LG 코치, 내가 상무 코치였을 때 대화를 많이 했다. 정식 감독이 아니기 때문에 처음에 미안하다는 말을 먼저 하시더라. 나는 고민하지 않고 당연히 한다고 했다. 나를 믿어주셨으니 당장 내일 그만두더라도 온다고 했을 거다. 너무 감사하고, 평생 은인이라고 생각하며 열심히 하고 있다. 이 자리를 빌려서 최연혜 사장님, 단장님, 부단장님, 사무국장님께도 감사드린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

프로팀 코치는 처음인데 시행착오는 없는지?
동부 매니저 시절 이세범, 故표명일 코치님, 배길태 스카우트님께 코칭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때와 지금 시대가 달라졌지만 기본 틀은 같기 때문에 큰 어려움은 없다. 나는 소통과 믿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소통과 믿음이 없으면 선수들과의 관계가 단절될 수밖에 없다. 지난 시즌 팀 성적이 좋지 않아서 선수들이 자신감이 떨어져 있다. 그래서 믿어주고 자신감을 불어넣어주려고 했다. 덕분에 지금은 분위기가 많이 바뀐 것 같다.

이찬영 코치, 공두현 매니저와 전려분석 업무도 병행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이찬영 코치, 공두현 매니저는 원래 팀에 있었기 때문에 내가 합류했을 때 정말 도움을 많이 줬다. 나도 이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있어 너무 좋다. 한 팀이라고 생각하고 3명이서 전력분석 업무를 같이 하고 있다. 우리끼리 대화를 나눠서 감독대행님께 보고를 드린다. 그럼 판단만 하시면 된다. 재밌게 일하고 있어서 시간 가는지 모른다. 이제는 정말 가족 같은 친구들이다.

현재 김상영 코치가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 있다면?
우리 팀이 지난 시즌 패배가 많았다. 팀 전체가 자신가을 가져야 한다. 단순히 승리보다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20점을 졌다면 다음엔 10점 또는 5점차로 줄일 수 있도록 과정을 쫓아야 한다. 패배를 하더라도 단단한 팀이 됐으면 한다. 그럼 다음 시즌 더 나아가 그 다음 시즌에는 더 좋은 팀이 될 수 있다. 물론, 감독대행님은 성적에 대한 압박감이 있을 것이다. 나는 옆에서 욕심내지 않고 잘 보좌하고 싶다. 작은 부분에서라도 도움이 됐으면 한다.

김상영 코치만의 지도자 철학이 있다면?
솔직히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노력하고, 공부하는 게 중요하다. 내가 겪어본 코치님들은 정말 공부를 열심히 하셨다. 시대가 바뀌면 농구도 바뀐다. 새로운 지식이 없다면 팀이 발전할 수 없다. 나는 코치님들을 옆에서 보고 배웠다. 나 역시도 후배들이 배울 수 있도록 공부 많이 하고, 트렌드에 맞는 농구를 할 수 있게 도와주고 싶다.

선수 시절 주목 받지 못해도 프로팀 코치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것 같은데?
아직은 아니다. 더 공부하고 노력해서 후배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사실 가장 중요한 건 인성이다. 나는 어렸을 때 이걸 몰랐다. 후배들은 인성을 잘 길러서 나중에 누군가 찾아줬으면 한다. 인성이 되어 있지 않으면 아무지 찾지 않는다. 내가 겪어봤기 때문에 잘 안다. 이 부분을 후배들에게 꼭 강조해주고 싶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어떤 지도자가 되고 싶은지?
가장 큰 목표는 후배 양성이다. 선수 수급이 제대로 되지 않는 한국농구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 지금은 프로팀에 있지만 먼 미래에는 다시 밑으로 내려가고 싶다. 여기서 배운 걸 어린 아이들에게 가르쳐준다면 좋은 선수로 성장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KBL 신인 드래프트 현장에 가서 지명되지 않는 선수들을 보니 마음이 아프더라. 앞으로는 선수들이 많아져서 4라운드, 5라운드까지 뽑혔으면 한다. 내가 기본기부터 잘 가르쳐서 모든 팀들이 누굴 뽑을지 행복한 고민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보고 싶다.

▼ “아내와 아이들에게 너무 고마워요”
김상영 코치와 인터뷰를 마친 뒤 자리를 일어나려는데 “저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더 해도 될까요?”라며 기자를 붙잡았다. 그는 “사실 저에게 가장 소중한 건 가족이에요. 아내 정서윤, 아들 지한이, 딸 아린이에게 미안하고 고마워요. 첫째 딸 아린이가 초등학교 6학년인데 그동안 일만 하느라 크는 걸 거의 못 봤어요. 둘째 아들 지한이는 지금 초등학교 1학년이고요. 아내가 농구선수 그만두고 매니저 할 때부터 옆에서 묵묵하고 도와주고,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옆에서 잡아줬어요. 그래서 너무 고맙다고 전하고 싶어요”라며 가족에게 애정 어린 한 마디를 남겼다. 이어 “저도 가족을 위해 더 열심히 일하도록 할게요”라고 덧붙이며 인터뷰를 끝냈다.

▼ 김상영 코치 프로필
생년월일
1981년 7월 31일
신장/체중
190cm/91kg
출신 학교
성자초-휘문중-휘문고-중앙대
선수 경력
2004~2005 창원 LG
2005~2007 원주 동부
지도자 경력
2019~2022 상무 코치
2023~현재 대구 한국가스공사 코치

# 사진_유용우 기자, 점프볼 DB, KBL PHOTOS, 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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