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치 대신 콩나물·싱거워진 주스…고물가에 '스킴플레이션'
(서울=연합뉴스) 김윤구 기자 = 식품 물가가 치솟은 가운데 제품 가격을 올리지 않고 양을 줄인 '슈링크플레이션'이 최근 이슈로 떠올랐다. 양을 줄인다는 뜻의 슈링크(shrink)와 물가 상승을 뜻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인 '슈링크플레이션'에 대해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지난 14일 "정직한 판매 행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식품 기업이나 외식 업자들은 가격을 유지하는 대신 제품이나 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이는 '스킴플레이션'(skimpflation)으로 불리는데 '인색하게 아낀다'는 뜻의 '스킴프'(skimp)와 인플레이션의 합성어로 기업 등이 재료나 서비스에 들이는 비용을 줄이는 것을 말한다.
소비자들은 가격이 오른 것보다 제품의 양이 줄어든 것을 발견하기 어려우며 제품의 질이 낮아진 것은 가장 알아차리기 힘들다. 이 때문에 스킴플레이션은 가장 교묘한 인플레이션으로 불린다.
16일 식음료 업계에 따르면 롯데칠성음료는 오렌지 주스 원액 가격이 오르자 올해 앞서 델몬트 오렌지 주스의 과즙 함량을 대폭 낮췄다. 오렌지 100% 제품의 과즙 함량은 80%로 줄었다. 제품 하단에 '오렌지과즙으로 환원 기준 80%'라고 표시됐지만 '오렌지 100%'라는 문구가 먼저 나오기 때문에 일부 소비자는 제품 리뷰에서 함량이 얼마나 되는지 알기 어렵다고 불평하기도 했다.
델몬트 오렌지주스의 과즙 함량이 80%인 제품은 45%로 낮아졌다. 델몬트 포도 주스 역시 과즙 함량이 내려갔다.
'100%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오일'을 사용한다고 오랫동안 내세우던 치킨 브랜드 BBQ는 지난달부터 튀김기름의 절반을 단가가 낮은 해바라기유로 교체했다. BBQ는 올리브유 가격이 급등해 올리브유 50%, 해바라기유 50%의 '블렌딩 오일'을 사용한다고 보도자료에서 밝혔다.
BBQ 관계자는 "올리브유의 전 세계 생산량이 급감한 데다 가격이 4배 가까이 상승하면서 발생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며 "기존 치킨의 맛과 품질을 최대한 유지할 수 있도록 고품질의 해바라기유도 포함된 올리브 블랜딩 오일을 개발해 도입하게 됐다"고 연합뉴스에 설명했다.
식당들도 식재료 가격이 뛰자 반찬 가짓수를 줄이는 등의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소비자로서는 한 끼 식사의 만족도가 떨어졌다고 느낄 수 있다.
서울 마포구의 한 칼국숫집은 김치를 직접 담근다는 안내문을 아직 붙여놨지만 실제로는 김치 없이 콩나물무침과 단무지만 제공하고 있다. 이 식당 직원은 "김치 단가가 너무 비싸 콩나물무침으로 바꿨다"고 말했다.
인력 절감 때문에 소비자가 제공받는 서비스도 이전만 못 한 경우가 많다.
커피숍, 패스트푸드점, 식당 등에서 키오스크로 주문하고 마트에서는 셀프 계산대를 이용하는 것은 일상이 됐다. 지난해 한국소비자원 설문조사에서 키오스크 이용 경험이 있는 소비자의 46.6%가 '뒷사람 눈치', '조작 어려움' 등 불편을 겪었지만, 인건비 절약을 위해 키오스크를 도입하는 곳은 늘고 있다.
최근 한 인터넷 게시판에서는 한 식당이 손님에게 식탁을 닦아달라고까지 요구해 논란이 됐다. '요즘 식당은 손님이 상까지 닦아놔야 하나'라는 제목의 글에 첨부된 사진에는 물티슈 상자 위에 "테이블 클리닝 물티슈입니다. 다음 손님을 위해 마무리 매너 부탁드립니다"라는 문구가 적혀있어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스킴플레이션'은 외국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다.
캐나다 언론에 따르면 퀘이커는 그라놀라 초코바의 코코아버터 코팅을 값싼 팜유로 대체했다.
영국 슈퍼마켓 체인 세인스베리는 올리브스프레드의 올리브오일 함량을 21%에서 10%로 낮췄다. 또 다른 슈퍼마켓인 모리슨은 과카몰리 제품의 아보카도 함량을 80%에서 77%로 조정했다.
미국 디즈니랜드는 주차장에서 출입구까지 1마일(1.6㎞) 가까운 거리에서 운행하던 트램을 중단해 탐욕스럽게 이윤만 추구한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정지연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스킴플레이션'은 제품 품질을 떨어뜨려 '슈링크플레이션'보다 질적으로 더 나쁘다"면서 "소비자들에게 (제품이나 서비스의 변경 내용을) 투명하게 잘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기업들에 가격 인상을 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가운데 정부의 압박과 소비자 저항을 피해 제품 용량을 줄이거나 값싼 재료로 질을 낮추는 기업들이 많아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y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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