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까지 32km…그러나 철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자유·평화 의미 새기는 'DMZ 자유평화대장정'
양구전투위령비, 두타연 지나 이목정까지 14km 행군
두타연, 천혜의 자연과 전쟁의 아픔을 품다
씻기지 않은 전쟁의 상흔…곳곳에 지뢰와 철조망
치열했던 양구 고지전, 위령비 앞에서 넋을 기리다
태극기 감자전 출품돼 눈길 끌어…'과연 MZ!'
▶ 글 싣는 순서 |
①"와~저기가 북한이라구요?" ②천오백년 역사 품은 건봉사…분단 70년 상흔 곳곳에 ③금강산까지 32km…그러나 철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계속) |
"우리는 원정대, 가자가자 DMZ!"
15일 오전 강원 양구군 비득검문소 앞, 원정대의 힘찬 구호 소리가 산기슭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오늘 원정대는 비득검문소 내 민간인 통제구역을 지나 양구전투 위령비와 두타연을 거쳐 '금강산 가는 길 안내소(구 이목정 안내소)'에 도착하는 일정을 수행한다. 총 코스 길이는 14km다.
출발 전 비득검문소에서 대한민국의 최전방을 지키는 국군의 인원 확인이 있었다. 민간인 통제구역 (민통선) 안으로 들어가는 만큼 원정대원들의 정확한 인원 확인은 필수였다.
70명의 인원 파악이 끝난 후, 원정대는 양구전투 위령비로 바쁜 걸음을 옮겼다.
두타연, 천혜의 자연과 전쟁의 아픔을 품다
오늘은 14km를 오전에 몰아서 걸어야 해 양쪽 길가로 두 줄로 벌어져서 1.5배 더 빠르게 걸었다. 2열 종대로 걷던 그전 이틀과는 달랐다. 처음에는 긴 거리를 말도 없이 가야 한다는 사실이 걱정되기도 했지만, 걷는 데에 몰두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걸으면서 국군장병에 대한 감사함을 가슴 깊이 느꼈다. 기자는 자진해 이곳에 참여한 것인데도 마음까지 힘들어졌는데, 추워지는 이 날씨에도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힘쓰고 있는 우리 군인들의 노고를 되새기는 시간이었다.
민통선 안이라 행렬 앞뒤로 군 차량이 대동했기에 쉬는 시간 군인과 대화할 시간이 있었다. 이곳 군 장병들은 야간에 40km를 20~25kg 군장을 메고 행군한다고 했다. 민간인이 올 수 없는 곳, 아무도 몰라주는 곳에서도 고생하는 군인들을 보며 마음 한 켠이 찡했다.
한국전쟁 이후 반세기 동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양구 두타연은 수많은 총탄과 군인들의 피와 아픔이 녹아있었다. 곳곳에 지뢰 표지판과 가시철망이 있어 동족상잔의 비극을 몸소 느꼈다.
전쟁의 상처 위에 역설적으로 청정한 자연이 피어나고 있었다. 두타연은 멸종위기 야생생물이 서식할 정도로 청정지역이다. 그래서일까 이번 여정에서 천연기념물 제217호인 산양을 두 번이나 봤다.
순식간이라 사진을 찍지는 못했으나 대원들 모두 "정말 산양이 있구나"하며 놀라워했다. 한 번은 산 끝자락에서 껑충껑충 뛰어가는 갈색빛의 산양을 보았고, 한 번은 갑자기 산에서 흰 산양이 튀어나와 대원들 모두 가던 길을 멈춰 서기도 했다.
"아까 우리가 산양에 길을 피해줬었죠. 왜 그랬겠어요?" 김학면 DMZ 원정대장이 기자에게 불쑥 물었다. 당연하게도 안전상의 문제라 생각했지만 김 대장은 "여기 DMZ 땅의 주인은 우리도, 군인도 아닌 산양 같은 야생동물들이에요. 당연히 인간이 길을 양보하는 게 맞아요"라고 말했다. 이 땅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게 된 순간이었다.
두타연은 연간 8만여 명이 찾는 접경 지역 최대의 관광 명소다. 금강산과 불과 35㎞ 떨어진 곳이다. 두타연은 금강산 육로관광의 관문이기도 하다. 32km만 더 가면 금강산이 나온다는 이정표도 보였다. 그러나 이정표 뒤 금강산 가는 길은 철문으로 굳게 닫혀 닿을 수 없는 곳이었다.
두타연 폭포 상류가 보이자, 대원들은 일제히 감동에 찬 탄성을 내질렀다. "민간에 개방하면 여기 사람 정말 많아지겠어요" 한 대원이 말한 그대로였다.
시원하게 쏟아지는 10m 높이의 폭포 아래로 맑은 물에 햇빛이 비쳐 윤슬이 눈부시게 반짝였다. 폭포 오른쪽 암벽에는 동굴이 보였고 주변으로는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었다. 폭포는 그대로 흘러 하류까지 뻗어가 걷는 내내 폭포 소리가 잔잔히 들려왔다.
"통일은 머리보다 가슴으로"…양구전투 위령비 앞에서의 묵념
강원도 양구는 한국전쟁에서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 중 하나로 손꼽힌다. 당시 양구에서는 피의 능선 전투, 도솔산지구 전투, 단장의 능선 전투 등 악명 높은 전투들이 이어졌다.
양구전투 위령비는 이런 잔혹한 양구 지역의 전투에서 전사한 호국영령들의 넋을 기리고자 1994년 건립됐다.
위령비에 도착한 대원들은 추모 시 '길 가소서' 낭독 후 전쟁의 참혹함 앞에 스러져 간 호국영령들을 위해 묵념하는 시간을 가졌다. 대원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순국선열들의 얼이 담긴 위령비 앞에서 대원들의 침묵은 한동안 이어졌다. 특히 전날 저녁 한국전쟁의 비극을 그려낸 영화 '고지전'을 단체관람했던 터라 그 어느 때보다도 진실하게 느껴지는 침묵이었다.
'고지전'은 휴전협정 회담이 한창 진행 중이던 1953년 여름, 전선 최전방에 위치한 가상의 지역, '애록(AERO-K)고지'을 배경으로 한다.
하루에만 고지의 주인이 몇 차례나 바뀔 정도로 치열했던 영화 속 '애록고지'는 한국전쟁 중 벌어졌던 '백마고지 전투'와 '425고지-406고지 전투'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백마고지 전투는 강원도 철원 395고지에서 중국군과 수차례 접전을 벌이며 고지 수탈과 탈환을 반복했던 전투로, '425고지-406고지 전투는 전쟁 막바지까지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철원군 일대의 고지전이자 한국전쟁의 마지막 전투로 잘 알려져 있다.
1951년 휴전협정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지만, 1953년 7월 휴전협정 체결까지 고지를 먼저 차지하기 위한 수많은 고지전이 벌어졌다. 휴전협정이 논의됐던 2년 동안 한국전쟁 총사망자 400만 명 중 300만 명이 발생했을 정도로 치열했다.
류동화(35)씨는 "영화 '고지전'을 보고 와서 그런지 오늘 들렀던 장소 중 위령비가 가장 인상 깊었어요. 동족 간에 이런 슬픈 일이 일어나면 안 되는데…"하며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또 다른 참가자 역시 "간접적으로나마 영화를 보고 오니 좀 더 느껴지는 바가 있었다"며 "통일은 머리보다 가슴으로 해야 한다"는 생각을 밝혔다.
감자전으로 빚어낸 건곤감리!
이날 저녁 숙소 양구 지게마을에서는 감자전 만들기 대회가 열렸다. 양구의 지역생산 재료인 감자를 이용해 의미가 있는 대회였다. 총 7조가 출품한 쟁쟁한 감자전 작품들 사이에서 젊은 층으로 구성된 4조가 1위를 차지했다.
전인정(34) 씨는 "DMZ에서 우리 같은 젊은 MZ들이 앞장서서 남북의 통일을 염원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MZ in DMZ' 키워드를 생각했어요. 영화 '고지전'에서도 그려졌듯 강대국들의 이념 갈등으로 인해 한민족끼리 싸우게 된 한국전쟁의 배경이 너무 가슴이 아프고 조국을 위해서 몸을 바친 분들을 기리기 위해서 태극기를 만들어 봤어요"라며 작품의 취지를 설명했다.
우승조 선정에 앞서 모든 조들의 작품 설명이 있었다. 각 조가 빚어낸 감자전의 모양은 모두 달랐지만, 모두 우리 장병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담고 있었다.
내일은 강원도 화천 평화의 댐을 시작으로 안동철교와 살랑교, 숲으로 다리를 지나 위라리 원시림 숲길을 걷는다. 총거리는 약 14km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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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류효림 인턴기자 nocutnews@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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