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 자식 노릇 하던 직원들이 없어졌다…긴축이 낸 구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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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드니 전구 하나 가는 것도 어려운데, 노인들 하기 힘든 일을 알아서 척척 해주니 좋았지. 근데 요새 통 사람이 보이질 않아."
기온이 영하 4도까지 내려간 지난 12일 오전, 경기 동두천시 생연2동 주택가에서 만난 한영자(82)씨가 '행복마을관리소'의 상황을 궁금해했다.
생연2동과 중앙동 일부가 담당 지역이었는데, 홀몸노인 274명, 장애인 159명, 한부모가정 16곳 등이 관리소의 돌봄 대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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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두천 ‘행복마을관리소’ 예산 없어 문 닫아
의정부도 복지시설 예산 삭감 통보해 주민 반발
“힘든 사람 것부터 없애는 건 잘못된 것 아닌가”
“나이 드니 전구 하나 가는 것도 어려운데, 노인들 하기 힘든 일을 알아서 척척 해주니 좋았지. 근데 요새 통 사람이 보이질 않아.”
기온이 영하 4도까지 내려간 지난 12일 오전, 경기 동두천시 생연2동 주택가에서 만난 한영자(82)씨가 ‘행복마을관리소’의 상황을 궁금해했다. “좋은 일 참 많이 했어. 마스크 나눠 주고, 부탁하면 행주 짜주고, 칼도 갈아주고.”
생연동 행복마을관리소는 2021년 3월 마을공동체 사업의 하나로 생연2동 양키시장 안에 문을 열었다. 공공일자리 창출 차원에서 동네 주민으로 꾸린 직원들이 홀몸노인 돌봄, 반찬 나눔, 집수리 등의 일을 했다. 생연2동과 중앙동 일부가 담당 지역이었는데, 홀몸노인 274명, 장애인 159명, 한부모가정 16곳 등이 관리소의 돌봄 대상이었다.
하는 일에 대단한 전문성이 필요한 건 아니었다. 집수리라고 해도 형광등을 갈거나 망가진 창문을 고치는 정도였다. 하지만 젊은 주민이 드문 이곳 동네 노인들에겐 큰 도움이었다. “아들이 걱정한다”는 이유로 이름을 밝히지 않은 ㄱ씨는 “우리 같은 노인네는 그런 일 못 한다. 그 사람들 있으면 그래도 멀리 있는 자식 부를 일은 없지 않으냐”고 했다.
노인들 곁에서 ‘자식 노릇’을 하던 관리소는 지난 10월31일 문을 닫았다. 갑작스레 불어닥친 예산 한파 때문이다. 경기 침체와 감세로 인한 세수 결손에, 정부의 긴축 정책이 더해져 지자체로 내려오는 지방교부세가 큰 폭으로 줄었다. 경기도와 동두천시가 5 대 5로 나눠 지던 관리소의 운영비 부담마저 3 대 7로 바뀌었다. 1년에 9700만원 정도였던 동두천시 예산이 1억3000만원 이상으로 늘어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동두천시 관계자는 “비용 대비 효과가 작다고 판단했다”며 폐쇄 이유를 밝혔다.
이처럼 긴축의 칼바람은 가장 낮고 약한 곳부터 덮치고 있었다. ‘재정위기 특별대책단’을 출범할 정도로 상황이 나쁜 의정부시에서도 취약계층이 느끼는 불안이 가장 크다. 의정부시는 앞서 사회복지시설 7곳에 예산 50% 삭감을 통보했다가 반발에 부딪혔다. 지역아동센터 예산도 대폭 삭감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의정부시 관계자는 “전국 지자체가 모두 어려운 상황”이라며 “아직 예산 편성이 마무리가 되지 않아, 구체적인 얘기는 하기 어렵다”고 했다.
중앙부처가 지자체에 지원하던 다른 사회복지 예산도 줄줄이 삭감되고 있다. 여성가족부는 청소년 지원 예산 38억2500만원을 전액 삭감했다. 이 때문에 여가부와 22개 지자체가 함께 운영하던 고위험 청소년 보호 사업인 청소년안전망팀 예산이 사라졌다. 보건복지부도 지자체 사회서비스원에 지원하던 정부 예산 148억3400만원 삭감안을 내놨다. 사회서비스원은 지역에서 국공립어린이집·요양시설 등을 운영한다. 지금의 예산안대로라면, 이런 사업들도 모두 위기에 놓이게 된다.
취재 중 만난 노인들은 ‘예산 문제로 행복마을관리소가 문을 닫았다’는 말에 진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한영자씨는 “진짜 큰 도움이 필요한 분들은 바깥에 나오기도 어려워 우리도 사정을 잘 모르는데, 반찬 나눔 같은 게 도움이 많이 됐을 것”이라고 했다. 생연2동에서 만난 또다른 노인은 “나라가 하는 일이니 이유가 있을 것”이라면서도 “아무리 그래도 힘든 사람들 것부터 없애는 건 일의 순서가 잘못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준희 기자 givenhapp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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