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생 90%가 다문화 학생… 미술 수업으로 마음 문 열어
“투이링의 그림은 자기만의 색채가 돋보여서 좋아. 까쨔는 원근감을 줘서 풍경이 한층 역동적으로 보이는데....”
지난 2일 경기 안산시 단원구 관산중 미술실. 학생 20여 명이 공들여 그린 ‘작품’에 대한 칭찬이 릴레이처럼 이어졌다. 국내 대표적인 ‘다문화 도시’에 있는 관산중은 전교생의 91.6%가 다문화 학생일 정도로 외국인 가정이나 중도 입국자 자녀 비율이 높다. 중국·베트남·러시아는 물론이고 우즈베키스탄·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 우크라이나, 콩고민주공화국 등 출신 국가가 16곳에 달한다.
미술실을 담당하는 신경아(46) 교사는 2021년 관산중에 부임했다. 그는 한국말이 서툴러 다른 수업 시간에 말 한마디 제대로 못 하던 아이들이 미술 시간에 서로 그림을 보고 이야기하고 질문을 던지는 모습을 보고 “이거다” 싶었다고 했다. 한국 적응에 어려움을 겪으며 잔뜩 움츠렸던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는 순간만큼은 자기 자신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신 교사는 “‘잘 그린다’ ‘그림 좋다’는 칭찬에 아이들이 마음을 조금씩 열었다”며 “미술에 ‘치유의 힘’이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고 말했다.
신 교사가 개발한 대표적인 미술 수업은 ‘가족의 식탁’이다. 자신의 가족이 즐겨 먹는 음식을 그린 뒤 친구에게 소개하며 자연스럽게 다양함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방식이다. 중국의 마라탕, 러시아의 샤우르마, 인도네시아의 툼펭 등 각국 전통 음식을 파는 맛집을 그림으로 소개하는 ‘세계가 모인 우리 동네’ 프로젝트, 학생들이 과일이나 동물 등 주제를 정해 그림을 그리고, 각국 언어로 이름을 적은 뒤 소개하는 ‘관산 말모이’ 수업도 진행했다.
관산중 한 학급 학생 중 약 65%는 읽기와 쓰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기초 학력에 미달하는 학생도 많다. 신 교사는 “교과 수업에서 칭찬받은 적이 거의 없는 학생들이 미술 시간에 ‘작은 성공의 경험’을 느낄 수 있도록 미술실 곳곳에 그림을 전시한다”고 말했다. 관산중 미술실 벽면엔 빼곡히 학생들의 회화 작품이 걸려 있고, 미술실 밖 복도 전시 공간엔 가면·의상 디자인 작품이 10여m 길이로 늘어서있다. 미술실 뒤편 캐비닛엔 누구든지 자신의 그림을 걸어 자랑할 수 있게끔 했다. 지난 2년간 다문화 학생 600여 명을 가르친 신 교사는 “친구의 작품을 보면서 아이들이 서로 문화적 배경을 자연스럽게 이해하는 기회도 됐다”고 했다. 그는 올해 교육부와 교직원공제회가 주관하는 ‘대한민국 스승상’을 받았다.
신 교사는 졸업생 그림도 꼼꼼히 챙긴다고 했다. 학교를 ‘고향’이라고 생각하며 찾아오는 졸업생이 한 달에 2~3명은 된다고 했다. 말없이 그림 한 장을 그려 놓고 가는 학생도 있다고 한다.
신 교사는 여름날 소나기가 내린 청량한 풀숲에서 동물들이 뛰노는 모습을 그린 첫 그림책 ‘여름비(논장)’를 최근 펴냈다. 책에 등장하는 개구리·아기 오리의 모습은 모두 제자들의 순수한 모습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부터 유튜브 채널 ‘국경 없는 미술실’을 열어 수업 영상도 공유하고 있다. 학생들이 자기 작품을 소개하고 자랑하는 통로가 되면서 적극성으로 수업에 참여하는 경우도 많아졌다고 한다. 앞으론 다문화 교육 현장을 주제로 한 에세이도 낼 계획이다. 그는 “학생들이 자기 자신으로 오롯이 존재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교육의 역할 아니겠느냐”며 활짝 웃었다.
교육부는 다문화 학생의 학교 적응을 위해 한국어 교육 지원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지난 9월 교육부는 한국어 능력이 부족해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초·중·고 학생을 위해 다문화 밀집 학교가 있는 33개 시·군·구에 지역 거점 한국어 예비과정을 우선 설치하고, 지역 대학생이 다문화 학생에게 일대일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대학생 멘토링도 확대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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