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C] 말을 참는 게 더 어렵다

안아람 2023. 11. 16.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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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12일 법률대리인을 통해 배우자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에 대한 입장문을 냈다.

앞서 노 관장은 9일 최 회장과의 재산분할 및 위자료 소송 재판에 출석한 후 취재진에 "이혼 소송이 가정의 소중한 가치가 법에 의해 지켜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고, 이튿날에도 언론에 이혼 관련 심경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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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2015년 8월 14일 광복 70주년을 맞아 단행된 8·15 특별사면 대상에 포함돼 경기 의정부교도소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12일 법률대리인을 통해 배우자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에 대한 입장문을 냈다. “(노 관장이) 마지막 남은 재산분할 재판에서 유리한 결론을 얻기 위해 재판이 진행 중인 사항에 대해 일방적인 자신의 입장을 언론에 이야기해 논란을 일으키고 있어 당황스럽기까지 하다”는 것이 핵심이다.

앞서 노 관장은 9일 최 회장과의 재산분할 및 위자료 소송 재판에 출석한 후 취재진에 “이혼 소송이 가정의 소중한 가치가 법에 의해 지켜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고, 이튿날에도 언론에 이혼 관련 심경을 밝혔다. 노 관장이 이른바 ‘언론 플레이’를 하는 것이 소송에 불리할 것이라는 판단에 최 회장 측이 그랬겠구나 싶으면서도 헛웃음이 나왔다.

실소를 금치 못한 건 2015년 12월 한 일간지 1면 기사가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당시 ‘최태원 “노소영씨와 결혼 지속 어렵다”’는 제목의 기사는 ‘사면 이후 왕성한 대외활동을 벌이고 있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충격적인 고백을 했다’는 문장으로 시작했다. 이어 ‘부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 결혼생활을 지속하기 어렵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것이다. 다른 여성과 아이를 낳았다는 부끄러운 과거까지 고백하면서 용서도 구했다’고 적혔다. 최 회장은 이런 내용을 담은 편지를 언론사에 보냈다고 한다.

그는 같은 해 ‘경제 살리기’를 명분으로 단행된 광복 70주년 8·15 특별사면에서 재벌 총수 중 유일하게 사면됐다. 최 회장의 사면 과정을 잘 알고 있는 한 관계자는 “경제 살리라고 (명분을) 쥐어짜서 내보내놨더니 바람피우고 있다는 연서를, 그것도 언론사에 편지를 보내서 공표를 했다”면서 허탈해했다. 이혼을 위한 ‘언론 플레이’는 최 회장이 먼저 한 셈이다.

이번에도 최 회장의 언론 플레이는 비판을 면치 못했다. 한 재계 관계자도 “어찌 됐든 세 자녀를 낳아 잘 길렀으면 조강지처로 봐야 한다”면서 “최 회장의 이혼하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그렇다고 법적인 관계가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다시 언론에 상대방을 비방한 건 부적절한 것 같다”고 말했다.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적반하장도 유분수”라고 잘라 말했다. 최 회장이야 현재 연인과의 관계를 대중에 인정받고 싶겠지만, 불편하게 보인다는 얘기다.

공적 인물이 자신의 처지를 타파하기 위해 언론을 이용하는 건 이젠 너무 흔해졌다. 당대표 경선 과정에서 돈봉투를 돌렸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최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겨냥해 “어린놈”이라고 말한 데 이어 “(한 장관은) 후지게 정치를 하는 정도가 아니라 후지게 법무부 장관을 하고, 수사도 후지게 하고 있다”며 비난했다.

민주당 내부에서조차 본인을 두둔하지 않는 등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지자 한 장관을 끌어들인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해당 발언으로 한 장관을 비판하는 측의 환호는 이끌어냈을지 몰라도, 정작 송 전 대표를 옹호하는 목소리는 나오지 않는 걸 보면 평가가 틀리지 않은 것 같다.

말은 곧 신뢰고, 신뢰는 힘이다. 한 고위 검찰 관계자는 평소 “말을 하는 것보다, 하지 않는 것이 훨씬 힘들다”는 얘기를 하곤 한다. 말보다 행동이, 선언적 다짐보다는 실제 결과가 더 중요하다는 의미다.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큰 사람들이 말을 좀 아꼈으면 좋겠다.

안아람 기자 onesh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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