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과거사 딜레마에 빠진 독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기습 공격으로 시작된 이스라엘 전쟁이 한 달 넘게 이어지고 있다. 전장(戰場)은 전 세계로 확장됐다. 각국에서 이스라엘 지지,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가 이어지며 여론이 분열됐다. 독일은 특히 이번 전쟁에 더 민감하다. 유대인을 학살한 홀로코스트라는 과거사 때문이다. 이른바 ‘정치 엘리트’들은 전쟁 초기부터 과거사를 이유로 이스라엘에 대한 절대적 지지를 표했다. 올라프 숄츠 총리는 전쟁 후 서방 지도자로는 제일 먼저 이스라엘을 찾았다. “이 땅에서 다시는 반유대주의는 안 된다”(로베르트 하베크 경제부 장관)는 발언도 이어졌다. 더 엄격한 태도를 취한 지방정부도 있다. 함부르크는 팔레스타인 시위에 들고 나올 수 있는 국기 개수에 제한을 뒀다. 베를린은 학생들이 등교할 때 아랍 전통 두건인 카피아를 착용하거나, 팔레스타인 국기 혹은 국기 색이 들어간 옷을 착용하는 것을 금지할 수 있는 권한을 학교에 줬다.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에서 만난 사람들은 독일 정부의 태도에 불만과 함께 배신감을 토로했다. 지난달 아랍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인 노이쾰른에서 만난 독일인 자메(38)씨는 팔레스타인 국기 스티커를 붙인 핸드폰 케이스와 가방을 들고 광장을 서성였다. “그는 경찰의 감시가 심해, 커다란 국기를 꺼내는 대신 이렇게라도 뜻을 표현하고 싶었다”며 “나는 하마스의 이스라엘 민간인 공격이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민간인 학살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고 했다. 또 다른 팔레스타인 출신 남성은 “나도 독일 시민인데, 나의 분노는 이해받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과거사 반성에 대한 독일의 태도는 존중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민자가 늘며 같은 과거를 공유하지 않는 독일인도 많아졌다. 현재 독일 인구의 28%가량이 이민자 출신이다. 독일 일간 타게스슈피겔은 “팔레스타인, 베트남인, 터키인 등 독일 이민자들이 독일의 역사에 같은 태도를 가지길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며 “이들이 왜 독일이 600만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것을 반성해야 하는가”라고 지적했다.
이번 전쟁에 대해 독일이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 것인가는 점점 더 복잡한 논의가 되고 있다. 이런 고민이 독일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지난달 행정안전부 발표에 따르면 한국은 내년 처음으로 외국인 비중이 5%를 넘어 아시아에서는 제일 처음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 기준 ‘다인종·다문화 국가’에 진입할 가능성이 높다. 이민과 난민의 시대에 국가 정체성은 늘 정답을 찾기 어려운 문제. 우리는 지금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가 되는 딜레마의 시대를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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