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희의 영화 같은 하루] [148] talk to me
십대 아이들이 한 방에 모여 있다. 소름 끼치게 생긴 마네킹 손을 탁자에 올려두고 촛불을 켜고 장난처럼 강령술을 시작한다. 자원한 아이는 마네킹 손을 악수하듯 잡고 말한다. “내게 말해(Talk to me).” 그 아이는 그와 동시에 동공이 확장되며 마약이라도 한 듯한 쾌락을 느낀다. 이제 유령과 연결됐다. 지켜보는 아이들은 이 장면이 웃기기만 하다. 마네킹 손을 잡고 유령에 빙의된 아이가 끔찍한 목소리로 소릴 지르기 시작한다. “도망쳐! 도망쳐! 도망쳐! 도망쳐!(Run! Run! Run! Run!)” 공포 영화 ‘톡 투 미(Talk to me∙2023∙사진)’의 한 장면이다.
미아(소피 와일드 분)는 약물 과용으로 사망한 엄마 때문에 우울증에 걸리지만 아버지마저 슬픔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딱히 아버지의 도움을 받지도 못한다. 슬픔으로 세상과 단절된 채 연결에 목말라하던 미아는 결국 유령과의 연결이라도 좋겠다며 마네킹 손을 잡는다. 90초가 넘기 전에 깨워서 빙의를 풀어야 한다는 규칙이 있지만 아이들은 실수로 미아의 빙의를 90초 안에 풀지 못한다. 이제 유령은 미아의 몸속에 갇혔다. 마네킹의 손을 잡고 그립던 엄마의 목소리를 들은 미아는 이제 습관처럼 마네킹 손을 잡고 유령의 세계로 들어간다.
“내게 말해(Talk to me)”라는 말 다음 꼭 해야 하는 주문이 있다. “널 들여보낸다(I let you in).” 이 주문과 동시에 유령이 사람에게 빙의된다. 바깥에서 보기엔 우스꽝스러운 광경이어서 아이들은 하나같이 휴대폰을 꺼내 동영상을 찍어 소셜미디어에 올린다. 온라인 세상과의 대화, 가상의 존재들과의 연결이 더 친숙한 아이들은 이제 옆에 실재하는 누군가에게 말을 걸기보다 다른 세상에 존재하는 유령에게 말을 거는 게 차라리 편해졌다. 사람보다 유령을 내 안으로 들이는 게 편해진 세상, 진짜 공포는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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