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방치된 지하철 예술
중요한 미술가가 남긴 작품이 무관심 속에 훼손되고 있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깜짝 놀라며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일이 수도권 지하철에서 일어나고 있다.
지하철이 생긴다는 사실 자체가 대단했던 1970년대에서 1980년대 초반까지는 역사(驛舍)에 특기할 만한 조형물이 거의 없었다. 그러다가 1985년 개통된 서울 지하철 3·4호선에 이르면 재정에 여유가 생기고 문화 수준이 높아진 만큼 지하철에도 환경 디자인 개념을 도입하여, 역사 내부에 지명(地名) 유래를 형상화하거나 역과 관련성을 지닌 수퍼그래픽을 조성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4호선 한성대입구역엔 근처 삼선교의 지명이 유래한 3선녀의 모습을 모자이크 벽화로 형상화하고, 3호선 독립문역엔 대부분 벽면을 태극과 건곤감리를 콘셉트로 꾸미는 식이다.
3·4호선 역사 곳곳에 설치한 조형물이나 벽화는 우리 디자인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예술가들이 직접 구상하여 만든 것이 대부분이다. 비록 인지도는 떨어지지만 그들이 남긴 다른 작업과 비교했을 때 중요도가 결코 낮지 않다. 역사가 건설된 지 40년을 향해 가는 지금은 문화유산이라 불러도 무방할 듯하다.
이런 작품의 관리는 원활하게 이뤄지고 있는가. 모자이크 벽화 일부가 훼손되어 있는 등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곳이 많다. 작품을 설명하는 명판을 오리지널 금속 명판과 맞지 않는 저렴한 재질에 퀄리티 낮은 서체를 써서 대충 보수한 경우도 보았다. 스크린도어가 설치되면서 그 너머에 있는 선로 측 벽화가 관리가 안 된 채 흉물로 변하고 있다. 타일 형식으로 설치된 작품의 일부가 전혀 다른 분위기의 타일로 바뀐 사례도 있는데 이것 역시 엄연한 훼손이다.
사람들이 자주 오가는 장소인 만큼 펜스 설치 같은 적극적인 보존 처리는 어렵더라도 현황 파악이나 정기 점검 같은 최소한의 관리는 필요하다. 명물은 시간이 흐른다고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꾸준한 노력을 필요로 한다. 헤리티지(문화유산)를 존중하는 작은 조치들이 모여야 ‘디자인 서울’이 만들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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