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하기 싫어 ‘뇌 빼고’ 본다… 수백만 홀리는 B급 캐릭터
동그란 얼굴에 머리 한 가닥이 우뚝 솟은 캐릭터가 요즘 젊은 세대를 웃고 울린다. 유튜브 애니메이션 ‘빵빵이의 일상’의 주인공 ‘김빵빵’이다. 작년 개설된 유튜브 채널 구독자가 186만명. 최근까지 올라온 애니메이션의 조회수가 모두 250만~900만회를 기록했다. 선뜻 정이 가지 않는 비주얼인데, 10~20대가 사용하는 카카오톡 이모티콘 인기 5위 안에 들며 각종 굿즈로도 제작된다. 왜 젊은 세대는 대충 그린 것 같은 ‘B급’ 캐릭터에 열광하는가.
작품을 한 편만 본다면 그 매력을 알기 어렵다. 주요 내용은 생일·데이트·명절 같은 일상적 상황에서 빵빵이가 특수부대 출신 여자 친구 ‘김옥지’의 화를 돋우는 스토리다. 빵빵이는 ‘생일 선물 받고 싶은 것 있냐’는 옥지의 질문에 180만원짜리 신발을 말한다. 빵빵이는 옥지에게 얼굴에 혹이 생길 정도로 맞고, 울먹이며 “삼선 슬리퍼”라고 답한다. 이처럼 빵빵이는 핍박받을 걸 알면서도, 매번 제멋대로 행동하고 의기소침해진다. 서사에 일관된 맥락은 없지만, 실소를 유발하는 전개가 3분여 동안 쉼 없이 펼쳐진다. 거기에 헬륨 가스를 마신 것 같은 빵빵이의 목소리까지 웃음을 자아낸다. 처음엔 “왜 웃긴다는 거지?” 싶다가도, B급 유머에 익숙해져 웃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처럼 맥락 없고, 대충 그린 것 같은 B급 느낌의 캐릭터가 젊은 세대 전반에서 인기를 끄는 현상은 이례적이다. 동물이 사람처럼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유튜브 채널 ‘짤툰’(구독자 282만명), 군대를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 ‘신병’ 등을 제작한 유튜브 채널 ‘장삐쭈’(구독자 359만명) 등이 대표적. 이말년·김성모 등이 그린 B급 느낌의 만화가 국내 마니아들 사이에서 유행한 적은 있으나, 이제는 만화에 익숙하지 않는 이들 사이에서도 B급 유머가 쉽게 받아들여지게 된 것이다.
B급 캐릭터를 좋아하는 이유 중엔 “뇌 빼고 보기 좋다”는 반응이 많다. 탄탄한 서사에 몰입해 진한 감동을 얻기보다는, 잠깐 가볍게 웃고 넘어가기에 적절하다는 것. 콘텐츠가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소비되기 때문에 타인과 함께 즐기기에도 용이하다. 진지한 공감은 아닐지라도, 온라인 공간에서 타인의 관심을 얻고 싶어하는 젊은 세대에게서 인기를 끄는 이유다. 김성수 대중문화평론가는 “콘텐츠가 일정한 시간 동안 기승전결을 거쳐 메시지를 주는 기존 방식에 젊은 세대가 반발을 느껴 유행하는 현상”이라며 “어릴 때부터 유튜브 등을 통해 단순하고 순간적으로 재미있는 콘텐츠를 즐겨 왔기에, 공감하거나 몰입하지 않고도 소비할 수 있는 대상을 찾는 것”이라고 했다.
낙서를 연상시키는 그림체 속엔, 수많은 최신 유행 코드가 숨어 있다. 푸바오, 탕후루를 비롯한 소재부터 ‘상여자’(강한 여자) 등 유행어까지. B급 캐릭터엔 이런 코드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조차도, 각자의 웃음 포인트를 찾아 즐길 수 있다는 매력이 있다. 서사 자체가 깊은 이해를 필요로 하지 않기에 반복적으로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것. 가령 B급 애니메이션은 주로 작가 한 명이 남녀 심지어 동물의 목소리까지 모두 더빙하는 경우가 많아, 그것만으로도 웃음을 유발한다.
다만 B급이라 하더라도, 서사를 이끌고 가는 핵심 코드를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수년 동안 로맨스 혹은 회귀·빙의·환생에 기반한 판타지 서사가 장악하던 웹툰계에도 최근 B급 바람이 다시 불고 있다. 마법사가 되기 위해 50년 동안 망치질을 하다가 70살에 마법학교에 입학한다(‘망치하르방’)거나, 검을 찾으려다 망령이 돼버린 용사의 이야기(‘성검전설’) 같은 웹툰은 B급 소재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줄곧 호평을 받고 있다. 다시, ‘빵빵이의 일상’으로 돌아오면 이런 댓글이 많다. “빵빵이 말투 너무 귀엽다. 더빙 안 바뀌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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