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혁의 극적인 순간] 수능일 아침… 아직 꿈을 찾지 못한 그대에게
친구들 재능 박수치다 그들을 연결·추천하는 내 재능 발견
“좋은 꿈 꾸는 친구들 만나다 보면 언젠가는 네 꿈도 분명…”
나는 스무 살 전까지 꿈이 없었다. 사람이 미래를 꿈꾸는 방식은 다양하겠지만, 그 당시의 나는 남들보다 잘하는 것이 있어야 꿈꿀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기준으로 보았을 때, 나는 전체적으로 애매했다. 공부를 엄청 잘하는 것도 아니었고, 운동도 친구들 사이에서 간신히 어울릴 정도였다. 춤신, 노래 천재, 만화 박사, 컴퓨터 도사처럼 한 분야에 별명이 붙을 정도로 탁월한 재능을 보이는 친구들이 있었지만, 나는 탁월하게 어중간했다. 공부와 재능이 빛나는 친구들은 저마다 어울리는 꿈을 정하고 있었다. 인생이 막 펼쳐지는 시기인 만큼 포부도 컸다. 그냥 의사, 변호사, 가수가 아니라 세계적인 의사, 세계적인 변호사, 세계적인 가수였다.
세계라는 단어를 발음하기에 나는 너무 쑥스러운 능력치를 갖고 있었다. 그런 생각만 하면 슬픈 기운이 몰려왔다. 꿈을 정하는 것보다 슬픔을 퇴치하는 것이 시급했다. 언제부터인가 매일매일 웃는 것이 나의 꿈이 되었다. 박수와 환호를 받을 수 없으니 누구보다 뜨겁게 박수 치고 환호하면서 웃었다. 누군가처럼 주목받을 수 없으니 누군가를 흉내 내면서 웃음으로 주목받았다. 그렇게 하루하루 웃다 보니 어느새 나는 ‘꽤 웃긴 친구’가 되어있었다. 친구들 추천으로 수학여행 사회도 보고 반 대항 장기 자랑에도 나가게 되었다. 친구들 재능에 박수 치면서 지내다 보니 온갖 재주꾼들을 알게 되고, 맞춤 추천 서비스도 하게 되었다. 그림을 잘 그리는 친구가 필요하다거나, 컴퓨터를 고쳐줄 친구가 필요하면 어김없이 나를 찾아왔다. 어느새 나는 친구들과 웃고, 친구들을 추천해 주는 것이 정말로 행복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상에 그런 직업이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의 재능을 발견하고 박수 치고 함께 어울리는 일이 있다면, 꼭 그 일을 하고 싶다고 꿈꾸게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꼭 대학을 가야 하는지 고민이 됐다. 담임선생님의 대답은 참 쿨했다. “네가 꿈꾸는 일을 대학에서 찾을 수도 있고 사회에서 찾을 수도 있다. 그러니 일단 대학에 가라. 대학에 가서 못 찾으면 바로 사회로 가라.” 그 한마디에 설득되어 수능을 보고 대학에 갔다. 아직 꿈을 정하지는 못했지만, 책과 영화를 보는 것을 좋아했기에 최대한 책과 영화를 많이 볼 수 있을 것 같은 학교로 갔다. 그곳은 엄청난 열정과 재능으로 무장한 친구들의 세계였다. 책과 영화에 빠져들 시간이 없을 정도로 친구들에게 빠져들었다. 내 머리를 틔워줄 정도로 좋은 친구를 만나는 날이면 너무 좋아서 잠을 잘 수 없을 정도였다.
나는 또다시 고등학교 때처럼, 전공에 대한 노력보다는, 열정과 재능이 넘치는 친구들을 사귀고 소개하는 노력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또다시 엠티에서 사회를 보고, 축제 장기 자랑에 나가고, 친구 맞춤 서비스를 하게 되었다. 어느 날, 연극을 하는 선배들이 광장에서 연습하는 모습이 너무 멋져서 한동안 구경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술자리에 끼게 되었다. 공짜로 얻어 먹기가 미안해서 웃음으로 갚고 싶었다. 아까 본 연기들을 흉내 냈더니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그날 이후 자연스레 연습을 구경하러 가고, 연습에 못 나온 배우를 대신해서 대본을 읽게 되고, 새로 써야 하는 대본 작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재능이 있다는 생각은 안 했다. 거기서 만난 동료들이 너무 좋아서 계속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들에게 더 좋은 동료가 되고 싶어서 연극을 공부하고 연기 연습을 하면서 시간을 쌓아나갔다. 이들과 평생 헤어지지 않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 보니 더 필사적으로 연극에 몰두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동료들과 더 많은 연극을 만들고, 그 연극에 동료들이 계속 모이고, 그 동료들과 새로운 프로젝트를 하게 되고, 그 프로젝트에 새로운 동료들이 모이게 되었다.
나는 마침내 알게 되었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누군가의 재능을 발견하고 박수 치고 함께하는 꿈이 바로 연극’이었다는 것을. 나는 고민 끝에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극단을 만들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좋은 동료들과 좋은 꿈을 꾸며 살고 있다. 생각할수록 신기하다. 나는 너무나 어중간했기에 꿈을 찾기 힘들었지만, 좋은 꿈을 꾸는 친구들을 열심히 만나다 보니 어느새 나만의 꿈이 ‘발견되었다’. 연극은 누군가에게 아주 작은 의미일 수 있지만, 나에게는 가장 큰 꿈이다. 아주 작은 나의 존재를 발견해 주었기 때문이다.
또다시 수능 날이 다가왔다. 수많은 친구가 꿈을 위해 시험을 볼 것이다. 어떤 친구들은 아직 꿈을 정하지 못한 채 시험을 볼 수도 있다. 어떤 친구들의 꿈은 대학에 있지 않기에 시험을 안 볼 수도 있다. 각자의 친구들이 각자의 꿈 때문에 각자의 고민과 불안이 있을 것이다. 그 모든 친구에게 뜨거운 박수와 환호를 미리 보내고 싶다. 언젠가 반드시 자신만의 꿈이 찾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찾아내는 방식은 모두 다를 것이다. 어떤 꿈은 스스로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어떤 꿈은 자신을 아끼는 누군가에게 발견되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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