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눈] 굉음(轟音)

박현철 2023. 11. 16.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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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철 횡성주재 취재부국장

횡성주재기자로 발령받은 지 어느덧 6개월이 지났다. 기자는 횡성에 발령받자마자 지난 4월 사무실 인근에 방을 구했고 주민등록도 이전했다. 집은 지척인 원주였지만 횡성군민이라는 자부심과 주변 사람들과 빨리 친해져야 한다는 생각에 별다른 고민없이 결정한 일이었다. 그리고 일주일에 4~5일은 횡성에서 거주하는 어엿한 군민이 됐다. 하지만 군민으로서의 자부심도 잠시 고통스러운 시간이 찾아왔다. 사무실에서 기사를 쓸 때도, 취재현장에서 인터뷰를 할 때도, 퇴근 후 방으로 들어와 쉬는 시간에도 천둥소리보다 더 요란한 소음이 수시로 반복됐기 때문이다. 주범은 바로 제8전투비행단의 초음속 군용기 ‘블랙이글스’의 비행 굉음(轟音)이었다.

기자가 횡성에 주소를 이전한 이후 현재까지 6개월 간 훈련이 없는 공휴일과 강풍 등 기상악화를 제외하면 블랙이글스의 비행훈련은 쉬지 않고 계속됐다. 국어사전에서의 소음(시끄러운 소리)과 굉음(몹시 요란하게 울리는 소리)의 차이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어떤 때는 동이 트기 전부터 캄캄한 밤 시간대까지 가리지 않는 굉음의 고통은 비단 기자만이 느끼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웃 간 분쟁으로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도심 아파트의 층간소음은 비교할 수 없는 극도의 스트레스였다. 층간소음을 피할 수 있어 선호하는 로열층도 횡성에서는 무용지물이 된 셈이다.

이 같은 굉음의 피해는 지난 4월 횡성군 용역조사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주민 414명을 대상으로 소음 관련 질병 항목인 난청, 이명, 성가심, 수면, 신경, 우울 정서불안 등 56개 항목에 대해 조사한 결과, 청력 질환인 난청과 이명이 월등히 높은 것으로 조사됐고, 202명을 대상으로 건강 검진을 실시한 결과 소음피해가 있는 지역 내 대상자가 청력 질환에 더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소음과 가장 연관이 높은 2개 항목인 허혈성 심장질환과 전음성 및 감각신경성 청력손실의 질병이 1.6배 이상 발병률이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소음 대책 지역 내 5개 학교에 대해 차음량을 조사한 결과 대부분의 학교가 학교보건법상 교사 내 소음기준(55dB)을 초과하는 등 학습권을 크게 침해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뿐만 아니라 블랙이글스가 비행훈련을 하면서 쏟아붓는 경유스모크의 환경문제도 심각하다. 횡성군용기소음피해대책위원회는 지난 2020년 12월 7일 굉음을 발생시키고 수만 리터의 경유를 무방비로 뿌리고 있는 블랙이글스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시작했고, 지난 9월 5일 1000일이 지났다. 1인 시위는 헌법에 보장된 행복추구권을 되찾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하지만 국방부와 공군부대는 주민들과 약속한 경유스모크 성분조사는 갖가지 이유를 들어 실행하지 않고 있다.

물론 1966년 창설된 공군특수 비행팀인 블랙이글스는 고도의 팀워크와 비행 기량으로 국가 주요 행사 등에서 다양한 곡예 비행을 선보이며 맡은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올해는 ‘2023 호주 애벌론 국제 에어쇼’에 참가해 종합 최우수상을 수상하는 등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지난 1976년 음속보다 빠른 항공기인 ‘콩코드(Concorde)’가 탄생해 전 세계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하지만 그렇게 탄생한 콩코드는 30년의 수명도 못 채운 채 항공업계에서 사라졌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그 중심에 ‘굉음 공해’가 있다는 게 정설이다. 이·착륙 과정에서 발생하는 굉음이 너무 심한 나머지 런던, 파리, 뉴욕, 바레인, 싱가포르를 제외하고 세계 모든 국제공항이 콩코드 비행기의 이착륙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기의 명품으로 등장했던 콩코드가 굉음 공해 때문에 몰락해 그 화려한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블랙이글스도 교훈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블랙이글스는 지금까지 제기된 각종 문제에 대해 주민들의 요구사항을 적극 수용하는 것이 지역사회와 공생할 수 있는 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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