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위스키가 맛 없는 이유 [김지호의 위스키디아]
어느 순간 주위에 위스키를 좋아한다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입맛은 제각각이고 위스키 종류는 수천 가지. 본인의 취향만 알아도 선택지는 반으로 줄어듭니다. 주정뱅이들과 떠들었던 위스키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려고 합니다. 당신의 취향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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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키를 즐기다 보면 누구든 반세기 전에 만들어진 위스키에 대한 호기심이 생길 것입니다. 1970~80년대는 최고급 보리 품종 ‘골든 프라미스’와 고품질의 오크통으로 위스키를 손수 정성 들여 만들던 시기입니다. 흔히 이 당시 병입된 위스키를 ‘올드 보틀(Old Bottle)’이라 부릅니다. 여러 위스키 전문가들이 높은 평가를 주는 제품들도 대부분 이 시기에 병입됐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병 입구를 막는 코르크가 긴 세월을 견뎌내지 못하고 맥없이 바스러지기 때문입니다. 스치면 부러지고, 수습하면 가루가 되는 코르크 마개. 술을 따를 때마다 코르크 조각들을 걸러 마셔야 하는 번거로움은 둘째 치고, 뚜껑 없이 덩그러니 남은 술은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해집니다. 또 코르크와 위스키 뚜껑의 접합부가 분리돼 코르크만 병에 박혀 있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올드 보틀뿐만 아니라 새로 산 위스키도 코르크를 사용한 제품이라면 이러한 비극을 피해 가긴 어렵습니다. 대체 이 코르크, 정체가 뭘까요.
◇17세기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코르크
코르크 사용의 공식적인 기록은 17세기에 등장합니다. 다들 한번쯤 들어보셨을 ‘돔 페리뇽(Dom Perignon)’은 샴페인을 개발한 수도사 ‘돔 피에르 페리뇽(Dom Pierre Perignon)’의 이름에서 따온 것입니다. 그는 샴페인의 발효 과정에서 급격하게 증가하는 탄산가스 압력을 견딜 방법으로 코르크 마개를 개발했다고 합니다. 한순간의 압축으로 병목에 들어간 코르크는 단시간에 다시 팽창하여 꺼내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코르크의 유연성과 탄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코르크 마개는 수령이 25년 이상 된 코르크나무(Quercus suber)로 만드는데, 주로 포르투갈이나 스페인 등 지중해산을 최고로 칩니다. 간혹 나무를 베어서 만든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코르크는 나무의 껍질로 제작됩니다. 때 되면 수확하는 과일처럼, 코르크도 평균 10년 주기로 수확합니다.
방법은 이렇습니다. 먼저 코르크 껍질만 전문으로 벗겨내는 숙련공들이 손도끼를 사용해 나무의 껍질을 분리합니다. 이때 나무가 재생할 수 있도록 손상을 최소화해야 합니다. 이 작업은 주로 여름이 되는 5월 초에서 8월 말 사이에 이뤄지는데, 이 무렵이 나무에 손상을 가장 적게 주는 시기라고 합니다.
벗겨낸 껍질은 6개월가량 야적해 건조 과정을 거친 뒤, 뜨거운 물이나 수증기로 살균하고 압착하여 평평하게 합니다. 작업하기 좋게 평평해진 껍질을 추가로 건조 과정을 거친 뒤 ‘원형 펀칭기’로 뚫어내면 코르크 마개가 완성됩니다. 나무 한 그루에서 한 번에 채취할 수 있는 껍질의 양은 40~60kg. 이것으로 약 3000~5000개의 코르크 마개를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나무의 죽은 세포로 이루어진 코르크는 왁스 같은 물질인 ‘수베린’(suberin)을 함유하고 있어 물과 공기를 차단합니다.
코르크의 단점은 내구성입니다. 아무리 품질 좋은 코르크 마개도 보관 상태에 따라 20년이 넘어가면 조직이 약해지고 틈이 발생해 외부 공기에 노출됩니다. 이때부터 뜻하지 않게 ‘에인절스 셰어’(Angle’s Share: 자연 증발해 없어지는 술이 ‘천사들의 몫’으로 돌아갔다는 말)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조직이 약해지면 자연스럽게 세균이 침입하고 코르크에 곰팡이가 생겨 오염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를 프랑스어로 ‘부쇼네’(bouchonne)라고 하는데 원인 물질은 ‘TCA’(Trichloroanisole: 곰팡이가 염소 화합물 또는 페놀과 만나 합성되는 물질)입니다. 이는 낡고 축축한 신문지나 썩은 나무, 곰팡이 핀 습한 지하실에서 풍기는 퀴퀴한 냄새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럴 거면 도대체 코르크를 왜 쓰느냐 싶지만, 몇 가지 간단한 규칙만 지키면 위스키의 생명력을 연장할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반드시 지켜야 할 위스키 보관법에 대해서 알려드리겠습니다.
◇올바른 위스키 보관법
한번 병입된 위스키는 보관만 잘하면 무한의 수명을 갖습니다. 현재까지 100년 넘는 위스키들이 고가에 거래될 수 있는 이유기도 하지요. 알코올 도수 20도가 넘어가면 세균이나 미생물이 번식하기 어려워 위스키가 변질할 우려도 없습니다. 단, 위스키는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세워서 보관해야 합니다. 높은 도수의 원액이 코르크 마개에 닿게 되면 코르크의 부식을 촉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와인은 살짝 눕혀서 보관해야 코르크 마개와 액체가 맞닿아 코르크의 수축을 방지할 수 있는데, 위스키에는 독이 되는 행위입니다.
위스키는 직사광선을 피해 서늘한 곳에 보관해야 합니다. 간혹 채광 좋은 거실에 떡하니 장식하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당장 그늘로 대피시켜야 합니다. 햇빛은 위스키에 들어가 있는 캐러멜 색소를 파괴하고 색을 변하게 합니다. 이 과정에서 이뤄지는 화학 반응은 자연스레 위스키의 품질 저하로 이어집니다. 또 높은 온도는 알코올을 기화시킵니다. 위스키에서 풍미를 담당하고 있는 성분들은 대부분 휘발성이라 좋은 성분은 날아가고 안 좋은 맛만 남게 됩니다. 만약 개봉도 하지 않은 위스키 원액이 병 어깨선 밑으로 내려와 있다면, 보관이 잘못돼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아무리 좋은 술이라도 이런 상태면 맛을 보장하기 어렵습니다.
일반적으로 위스키의 적정 보관 온도를 15~20℃로 권장합니다. 즉, 위스키의 냉장이나 냉동 보관도 불필요합니다.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보관법은 구매 시 받은 상자를 버리지 않고 그대로 포장해 옷장에 넣는 것입니다.
한번 개봉된 위스키는 ‘최적의 풍미’를 즐길 수 있는 기간이 한정돼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위스키가 절반 정도 남은 상태라면 2년 이내, 그보다 적게 남았다면 6개월 안에 모두 마시는 것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병 내부에 원액보다 공기가 많아지면, 과도한 산화로 위스키가 고유의 풍미를 잃게 됩니다. 특히 병 아래 애매하게 남아서 깔린 위스키는 작은 바이알(vial) 병에 옮겨 담아 공기와의 접촉을 최소화하는 게 좋습니다. ‘파라필름(parafilm)’으로 병목을 싸매는 것도 방법입니다. 파라필름은 보통 실험실에서 액체를 밀봉하는 데 사용되지만, 주류에도 효과가 좋습니다. 흔히 몰트 바에 가면, 바텐더들이 병목에 감긴 필름지 같은 것을 벗기는 모습을 보셨을 겁니다. 이게 파라필름입니다.
참고로 마시고 남은 위스키병의 코르크는 따로 모아 두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새로 산 위스키 코르크가 제 기능을 하지 못했을 때, 훌륭한 대체재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위스키는 브랜드마다 병 입구 모양에 차이가 있어, 코르크를 다양하게 준비한다면 최악의 상황도 유연하게 피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대형 위스키 증류소들의 코르크 사랑은 남다릅니다. 코르크의 친환경적인 이미지와 전통적인 측면도 있겠지만, 코르크가 주는 특유의 감성을 포기하긴 어려워 보입니다. 어쩌면 소비자들이 코르크에서 기대하는 프리미엄에 대한 심리도 이들의 정책에 반영됐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코르크 뽑는 소리를 마치 숭고한 의식처럼 즐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위스키 병목에 비닐을 벗기고 코르크 마개를 ‘뻥’ 하고 뽑는 순간은 늘 경쾌하고 설렙니다. 뻥 소리 이후 잔에 따라지는 술은 맛에 대한 기대감도 한층 높입니다. 혹시 여러분들의 코르크는 지금 안전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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