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서든데스' 경고에…폐플라스틱서 답 찾은 SK지오센트릭
본격 가동시 年 32만톤 재활용…500ml 생수병 213억개 분량
공장 짓기도 전에…"생산 물량의 30% 선판매 협의"
나경수 SK지오센트릭 사장이 화학산업의 위기를 플라스틱 재활용 등 고부가가치 신규 사업으로 돌파하겠다고 밝혔다.
나 사장은 세계 최초의 플라스틱 재활용 종합단지인 ‘울산 ARC(Advanced Recycling Cluster)’ 착공을 하루 앞둔 11월 14일 서울 종로구 SK그린캠퍼스(종로타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구체적인 청사진을 공개했다.
나 사장은 "한국의 화학산업은 수년간 기존 범용 화학시장은 중국 공장 증설 등으로 치열한 경쟁에 내몰려 수익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상태로 이미 '서든데스(돌연사)'에 직면해 있다"고 진단했다.
최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2023 CEO세미나’에서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또다시 화두로 던진 ‘서든데스'를 인용한 것이다. 최 회장이 서든데스의 위험성을 경고한 것은 2016년 '확대경영회의' 이후 7년 만이다.
SK지오센트릭은 서든데스에 대비하기 위해 매년 20만톤의 에틸렌을 생산하며 꾸준한 수익을 냈던 납사 분해설비(NCC) 공장 가동을 2020년 중단했다. 새로운 시즌이 아닌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플라스틱 재활용 사업에 눈을 돌렸다.
나 사장은 “글로벌 경기에 따른 수익성 변동이 큰 사업에서 벗어나 우리 힘으로 미래를 만드는 새로운 사업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며 “견고한 매출을 내던 공장을 끄는 두려움이 있었지만, 그보다 변화에 대한 확신이 컸기에 내린 결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변화를 기업문화에 적용하기 위해 사명도 SK종합화학에서 SK지오센트릭(지구중심적 의미)으로 변경했고 회사는 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며 “플라스틱 재활용, 고기능 신규 플라스틱 생산으로 기존 대비 사용량을 줄이는 것이 혁신의 방향”이라고 말했다.
나 사장은 “플라스틱 재활용 핵심 기술을 보유한 울산 ARC를 통해 국내 화학산업의 르네상스를 이끌겠다”고 밝혔다. 재생, 부흥(부활)의 개념인 르네상스를 플라스틱에 적용, 폐플라스틱을 새로운 자원으로 만들어 다시 쓰임새를 찾도록 하고 화학산업에도 생기를 불어넣겠다는 포부다.
울산ARC는 국제 규격 축구장 22개와 맞먹는 면적에 지어진다. 총 1조8000억원이 투자되며 2025년 말 완공이 목표다. 울산ARC가 완공되면 매년 32만톤 규모의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할 수 있게 된다. 이는 500ml 생수병 213억개 분량에 해당한다. 국내에서 1년간 소각 또는 매립되는 폐플라스틱(약 350만톤)의 10%를 이곳에서 처리할 수 있다.
울산 ARC는 세계 3대 화학적 재활용 기술을 한 곳에 구현해 주목받고 있다. 열분해, 고순도 폴리프로필렌(PP) 추출, PET 해중합 기술이다. SK지오센트릭은 앞선 재활용 기술을 보유한 글로벌 기업들과의 협업으로 3대 기술을 확보했다.
열분해 기술은 영국 플라스틱에너지, 고순도 PP 추출은 미국 퓨어사이클 테크놀로지(PCT), 해중합 기술은 캐나다 루프인더스트리와 각각 협업했다. 다양한 종류의 플라스틱을 처리할 수 있는 고부가 기술들로 플라스틱의 오염도, 성상, 색상과 상관없이 상당수의 플라스틱을 재활용할 수 있다.
순환경제로의 전환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면서 플라스틱 재활용 시장은 향후 고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조사업체 맥킨지에 따르면 전 세계 재활용 플라스틱 시장은 2027년 85조원, 2050년 600조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SK지오센트릭은 이미 연 생산량의 30%에 달하는 물량에 대한 선판매를 완료했다. 글로벌 포장재 기업 암코 등 여러 주요 소비재 브랜드가 관심을 보이며 공급 협력 논의를 진행 중이다. 2024∼2025년에는 70%까지 선판매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나 사장은 “아직 공장을 짓기도 전이지만 글로벌 고객들이 우리를 찾아오고 있으며 생산될 물량의 30%가량이 선판매 협의 단계”라며 “플라스틱 재활용 시장은 수요가 공급보다 앞서는 시장이며 빠르고 확실하게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 사장은 "공장이 완전 가동되는 시점 기준으로 매출은 7000억원 이상, 영업이익은 2500억~3000억원을 올릴 것"이라며 "공급 부족에 따라 오랜 기간 높은 마진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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