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보, 역사속으로 ‘전보’... 내달 15일 138년만에 서비스 종료

채제우 기자 2023. 11. 15.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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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가장 빠른 연락 방식이었던 ’전보(電報)’가 138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KT는 15일 홈페이지를 통해 “다음 달 15일부터 ‘115 전보’ 서비스를 종료한다’고 공지했다. 전보는 전선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아 메시지를 전달한 최초의 전기통신 서비스다. 가정에 전화기가 보급되기 시작한 1960년대 전까지 일반 국민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연락 수단이었다. 국내에는 1885년 서울과 인천 사이에 전신 시설이 개통되면서 처음 도입됐는데, 내달 KT의 서비스 종료와 함께 완전히 사라지게 된 것이다.

◇최초의 근대 통신 서비스

최초의 전보는 전신기를 통해 모스 부호를 전달했다. 전신기에 달린 조작기를 손가락으로 눌렀다 떼는 걸 반복하는 식으로 전류 변화를 일으켜 부호를 만들면, 수신자는 부호 체계에 따라 이를 해독해 메시지로 만들었다. 하지만 서울-인천 사이만 연락이 가능한 데다 한문(漢文)으로만 내용 작성이 가능했는데, 주로 정부 부처나 공공기관들이 공문을 보낼 때 사용됐다. 1890년대 후반부터 국문 전보가 가능해지긴 했지만, 당시 26자짜리 전보의 요금은 10냥4전(현재 기준 약 40만원)에 달해 일반 국민이 사용하긴 어려웠다.

1950년대 후반에는 타자기로 문자를 입력하면 수신자가 이를 그대로 인쇄할 수 있는 ‘타자 전신기’가 생겼다. 서울-부산까지 전신 시설이 확충되고, 각 지역에서 직접 수신지로 배달을 해주면서 전보가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에도 타자를 치고, 전신기를 다룰 수 있는 전문 인력이 부족해 관련 학원까지 생겨났고, 이용 요금도 우편에 비해서는 2~3배가량 비쌌다. 특히 전보는 글자 수에 따라 요금이 달라졌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은 ‘쾌유를 기원합니다’를 ’기쾌유’로, ‘결혼을 축하합니다’를 ‘축결혼’같이 조사와 형용사 등을 뺀 축약어로 바꿔 메시지를 보냈다.

그래픽=김하경

이와 관련해서는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의 ‘조부 위독’ 전보 일화가 유명하다. 1950년대 초, 김 전 대통령은 가족들로부터 ’조부 위독’이라는 전보를 받고 고향인 거제도로 내려갔는데, 알고 보니 당시 가족들이 김 전 대통령을 결혼시키기 위해 부른 것이었다. 원로 방송인 고(故) 송해씨도 한 방송에서 6·25 휴전 전보를 자신이 직접 쳤다고 밝히기도 했다. 휴전 소식을 전보를 통해 전할 만큼, 가장 빠르고 확실한 연락 수단이었던 것이다. 고향의 부모님에게 자녀를 낳았다는 소식을 전한 수단도, 사법 고시에 합격했다는 희소식을 친지들에게 전달한 수단도 모두 전보였던 시절이 있었다.

◇휴대전화 대중화와 함께 사라지는 전보

하지만 1980년대 후반 들어 가정마다 유선 전화가 생기면서 전보의 시대가 저물기 시작했다. 1981년 한국전기통신공사(KT의 전신)는 설립과 함께 전보를 전적으로 맡기 시작했고, 1984년에는 전보가 공중전기통신사업법상 기간통신역무로 지정됐다. 전보의 공익성을 인정해 국민이 이용하는 데 불편이 없도록 정부 허가와 규제를 받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유·무선 전화가 빠르게 확산되면서 1991년에 기간통신역무에서 제외됐고, KT는 차별화를 위해 같은 해부터 전보와 함께 꽃, 떡 등 선물을 같이 보내는 부가 서비스를 시작했다.

KT는 2002년 민영화 이후에도 전보 서비스를 이어갔지만, ‘1인 1 휴대전화’의 시대가 오면서 이용률은 계속 떨어졌다. 결국 각 지사 직원들에게 직접 배달을 시켜온 KT는 2008년 배송 과정을 배달 업체에 위탁했고, 현재 전국 82개 업체와 계약을 맺고 있다. 이후 정부나 기업 차원에서 관계자들에게 결혼·승진 축하 메시지를 격식 있게 보내는 경우에 사용되면서 2010년에는 연간 이용 건수가 238만건에 이르기도 했다. KT 관계자는 “한때 인기를 끌기도 했지만 최근 10년 새 카카오톡과 같은 각종 메신저와 온라인으로 선물하는 서비스들까지 생기면서 이용 건수가 그마저도 90% 이상 급감했다”고 했다.

앞서 해외에서는 이미 미국은 160여 년 만인 2007년 전보 서비스를 종료했고, 독일도 170년 만인 올해 1월 서비스를 중단했다. 국내에서 전보를 담당해온 KT는 이용률이 계속 떨어지자 지난 2018년 4월 국제 전보 서비스에 이어 올해 안에 국내 서비스를 종료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앞으로 국내에서는 전보와 비슷한 우체국의 축하카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축하카드 서비스는 전보와 달리 배송에 2~3일이 걸리지만 메시지와 함께 화환, 케이크 등을 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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