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기업에 1000억 정부 지원…‘전력기금’ 쌈짓돈 변질 우려
업계 시설자금·운전자금 융자
사용처 제한 없고 대상도 모호
‘기술 개발·투자용’ 취지와 달라
전문가 “재생에너지 투자 필요”
정부가 내년 전력산업기반기금을 통해 원자력발전 업계에 1000억원 넘게 지원하는 것을 두고 지원 대상과 자금 용도가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기술 개발 지원에 쓰여야 할 돈이 단순히 기업의 자금난 해소에 전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15일 보고서 ‘2024년도 예산안 위원회별 분석’을 보면 국회예산정책처는 원전 생태계 금융지원 사업에 대해 “전력기금의 법적 용도에 부합하도록 지원 대상과 자금 용도가 정해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내년에 전력기금을 활용해 원전 생태계 금융지원 사업에 1000억원을 지원한다. 원전 생태계 금융지원 사업은 원전 기자재 기업 육성을 위해 원전 중소·중견기업에 시설자금·운전자금 등을 저금리로 융자 지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예정처는 구체적인 사용처를 고려하지 않고 원전 관련 기업에 자금을 지원하는 점에 대해 우려했다.
실제 전기사업법에 따르면 전력기금은 전력산업 해외 진출과 기술 개발 사업화 지원, 전력산업 기반 조성을 위한 시설 투자 등으로 용도를 한정했다. 예정처는 “자금 지원이 원전 분야 투자나 기술 개발 등을 위해 사용되지 않을 경우, 원전 기업의 일시적인 경영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다”면서도 “원전산업 육성 측면에서는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원 대상이 지나치게 폭넓은 것도 문제다. 원전 생태계 금융지원 사업 대상은 최근 5년간 원전 분야 매출이 발생하거나 한국수력원자력 연구·개발(R&D) 사업에 참여한 기업이다. 이에 대해 예정처는 “단순히 원전 분야 매출 발생 여부로 지원 대상을 선정할 경우 원전산업과 관련성이 적은 기업을 지원하게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중소·중견기업의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위한 보조기기 발주 계약 체결 시 선급금 지급에 필요한 보증보험 수수료를 지원하는 사업도 도마에 올랐다. 예정처는 “원전 기자재 선금보증보험 지원 사업은 전력기금으로 지원할 법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전력기금은 전기를 사용하는 모든 국민이 전기요금에 추가로 3.7%를 붙여 내야 하는 일종의 ‘준조세’다. 전기요금 인상에 따라 3조1536억원이었던 전력기금은 2022년 6조4917억원으로 늘었다.
전문가들은 기술 개발 지원 목적에 맞도록 전력기금 집행을 엄격히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은 “중국산 태양광 저가 공세에 맞서 국내 태양광 효율을 높이는 연구·개발이나 소형 가스터빈·양수발전 확충 등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하는 데 집중적으로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상영 기자 s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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