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피고인들 국민참여재판 악용 계기엔 2016년 대법원 ‘조희대 주심’ 결정문 있었다[뉴스 깊이보기]

이혜리 기자 2023. 11. 15. 21:3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성범죄 피해자 반대하더라도
국민참여재판 가능하다 적시
시민 배심원의 심리·평결에
강간통념 작용…무죄율 높아
선처 받아내는 전략으로 악용
가해자에 ‘무죄’ 통로 열어줘
조희대 대법원장 후보자가 15일 서울 서초구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성동훈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대법원장으로 지명했다 국회의 임명동의안 부결로 낙마한 이균용 후보자의 경우, 성범죄 피고인에게 지나치게 관대한 판결을 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윤 대통령이 지난 8일 새 대법원장 후보로 지명한 조희대 후보자(전 대법관)는 어떨까.

경향신문은 조 후보자가 대법관으로 재직하던 2016년 3월 주심으로 내놓은 대법원 결정 하나에 주목했다. 조 후보자가 당시 결정문에 써놓은 의견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성범죄 재판은 피해자가 반대하더라도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할 수 있다’는 것. 법조계 안팎에서는 조 후보자의 이 같은 판단 이후 성범죄 피고인(가해자)이 무죄를 받아내는 ‘통로’로 국민참여재판을 활용하는 길이 열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 배심원 심리 주요하게 고려

해당 사건의 피고인은 14세 지적장애인인 피해자를 강제추행해 기소됐다. 이 피고인은 재판을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해달라고 신청했다. 직업 법관이 심리·판결하는 일반 재판과 달리 국민참여재판은 시민 배심원이 심리·평결하고, 법관은 이들의 평결 결과를 주요하게 고려해 선고한다.

1·2심 법원은 피고인의 국민참여재판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국민참여재판법이 성범죄 피해자가 원하지 않으면 법원이 국민참여재판 ‘배제’ 결정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기 때문이다. 1·2심 법원은 피해자가 국선변호사를 통해 국민참여재판을 원하지 않는다고 명백히 밝힌 점, 심리 과정에서 2차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는 점 등을 고려해 “국민참여재판이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대법원도 국민참여재판 배제 자체는 합당하다고 봤다. 그런데 대법원은 이 결정문에 “단순히 성범죄 피해자가 국민참여재판을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국민참여재판 배제 결정을 해서는 안 된다. 배제 결정은 신중하게 해야 한다”고 적시했다. 대법원은 그 이유로 사법의 민주적 정당성과 신뢰를 높인다는 국민참여재판의 도입 취지, 국민참여재판을 받을 피고인의 권리를 들었다. 이 결정의 주심이 조 후보자였다.

성범죄 사건 재판을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할 때 피해자가 배심원들 앞에서 피해사실을 증언하고 피고인 측 추궁을 받는 과정에서 2차 피해를 입을 소지가 있다. 피고인 측이 ‘피해자다움’에 대한 편견을 이용해 법원의 왜곡된 판단을 끌어낼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박기쁨 사법정책연구원 연구위원(판사)은 지난해 연구보고서를 통해 배심원 판단에 ‘강간 통념’이 작용한다는 점을 밝혔다. ‘밤늦게까지 같이 술을 마셨거나 모텔에 자발적으로 간 이상 피해자가 성관계를 허용한 것’ ‘연인관계에는 강간이 있을 수 없다’ 식의 통념이 국민참여재판에 작동한다는 것이다. ‘피해자다움’에 맞지 않으면 배심원들이 무죄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고, 피고인이 번듯한 직업을 가진 경우 등 ‘가해자다움’에 맞지 않으면 성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편견도 존재한다고 했다. 통계적으로도 성범죄의 국민참여재판 무죄율은 일반 형사사건보다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대법 결정, 국참재판 악용 계기”

조 후보자가 주심이었던 대법원 결정은 성범죄 피고인들이 국민참여재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계기가 됐다는 비판이 일찍이 제기됐다. 홍진영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017년 논문에서 이 결정에 대해 “향후 최소한 성인 간 강간 사건에 대해 피해자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민참여재판이 열리게 될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성폭력 피해자들과 연대해 사법시스템 감시 활동을 해온 연대자D(활동명)는 지난 3일 법원 내 ‘현대사회와 성범죄 연구회’가 연 공개토론회에서 “현장에서는 성범죄 사건에서 국민참여재판의 신청을 피고인들이 적극적으로 하게 된 시기를 2016년 이후로 보고 있다”며 대법원의 해당 결정을 비판했다.

연대자D는 “대법원 결정을 들어 일명 성범죄 전담·전문 법인들이 무죄 또는 선처를 받아내는 전략 중 하나로 국민참여재판 신청을 독려했고, 성범죄 가해자들의 온·오프라인 관계망을 통해 실제 성범죄 국민참여재판의 과정 및 결과가 알려졌다”면서 “국민참여재판이 성범죄 피해자 공격에 효과적이라는 판단을 한 성범죄자들과 조력자들은 피해자를 괴롭히기 위한 목적까지 포함해 국민참여재판을 악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성범죄 피고인들이 국민참여재판을 악용한다는 지적이 계속 제기되자 국회에선 ‘피해자가 원치 않으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국민참여재판을 배제토록 한다’는 취지의 법률 개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조 후보자는 16일 경향신문에 “(해당 대법원 결정은) 국민참여재판 배제 결정의 원칙적 기준을 제시한 것이지 피해자의 의사나 상황을 고려할 필요없이 무조건 참여재판으로 진행하라는 취지가 아니다”라며 “대법관들의 합의에 의해 도출된 결론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