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 일 못 찾아, 심신이 지쳐서…‘쉬는 청년’ 41만명
여성·20대 초·대졸 이상 비중 늘어
2년 전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한 신지영씨(26)는 졸업과 동시에 취업에 성공했지만 올 초 퇴사한 뒤 다시 일을 하지 않고 있다. 재충전한 뒤 다시 취업할 계획이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요즘은 구직 활동도 거의 하지 않는다. 신씨는 “합격해서 출근하라는 곳도 있었지만 이전 회사에서 힘들어서 아무 곳이나 들어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크다”고 말했다.
신씨처럼 일을 하지 않으면서 구직 활동도 안 하는 ‘쉬었음’ 청년이 빠르게 늘고 있다. 원하는 일자리를 찾지 못해 구직활동 자체를 포기한 경우가 가장 많았고, ‘번아웃 현상’(정신적·육체적으로 지쳐 의욕 등이 소진)으로 재취업을 미루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특히 올해는 여성, 20대 초반, 대졸 이상에서 구직활동을 하지 않고 그냥 쉬고 있는 인구가 빠르게 늘고 있다.
정부는 1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비상경제장관회의를 열고 최근 증가하는 ‘쉬었음’ 청년들을 위한 ‘청년층 노동시장 유입 촉진방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통계청에 따르면 일도, 구직활동도 하지 않는 ‘쉬었음’ 청년(15~29세)의 규모는 2016년 26만9000명 수준이었지만 이후 급증해 코로나19 때인 2020년에는 44만8000명으로 정점을 찍었다. 이후 코로나19가 완화되면서 ‘쉬었음’ 청년은 줄어드는 추세였지만 지난 1~9월 월평균 41만4000명을 기록,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만3000명이 늘었다. 이는 전체 청년 인구의 4.9%로, 청년 비경제활동인구 기준으로는 9.8%에 달한다.
전통적으로 ‘쉬었음’ 청년은 남성이 여성보다 많고, 20대 후반, 고졸 이하의 비중이 높았다. 그러나 올해 늘어난 ‘쉬었음’ 청년의 경우 여성(1만9000명), 20대 초반(1만6000명), 대졸 이상(2만8000명)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쉬는’ 청년 65% “구직 의사는 있다”
청년들의 ‘쉬었음’ 사유로는 ‘원하는 일자리를 찾기 어려움’이 32.5%로 가장 많았다. 이는 지난해(27.8%)보다 4.7%포인트나 늘어난 것이다. 이어 ‘다음 일 준비를 위해’(23.9%)가 뒤를 이었다. 정부는 대기업 대비 중소기업 임금이 50%를 밑도는 노동시장 구조가 지속되는 가운데 최근 수시·경력 채용 확대로 사회 초년생들의 괜찮은 일자리 기회가 축소된 영향이 큰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대학 졸업생의 첫 취업 소요기간은 2020년 7.2개월에서 2021년 7.7개월, 2022년 7.8개월, 2023년 8.2개월로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기재부는 “청년들의 경우 원하는 일자리 취업 실패 시 하향 취업보다 구직연장 또는 ‘쉬었음’을 선택하는 경향이 높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평생직장 개념이 흐릿해지면서 퇴직과 재취업에 대한 거부감이 적고, 코로나19 시기 확대됐던 단기 일자리가 축소된 것도 ‘쉬었음’ 청년이 늘어나는 데 영향을 미쳤다. 다만 ‘쉬었음’ 청년의 절반 이상인 65.1%가 1년 이내 구직의사가 있고, 66.4%는 구체적인 구직계획도 보유하고 있었다. 일 자체를 하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며, 맞는 일자리만 있다면 언제든 일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정부는 이들 ‘쉬었음’ 청년이 노동시장에 유입될 수 있도록 1조원대의 단계별 지원 방안을 이날 발표했다.
우선 학교를 졸업한 청년들이 쉬었음 과정을 겪지 않고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재학생을 위한 맞춤형 고용서비스를 본격 도입하기로 했다.
이호준 기자 hj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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