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비만 고양이’에게 바란다

기자 2023. 11. 15. 20:3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국민의힘 대구 국회의원들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자기 당대표를 지낸 이준석에게 ‘비만 고양이’라 조롱을 당하고 있다. 그 말이 참 아픈 모양이다. ‘비만 고양이’란 주는 밥이나 먹고 햇볕 따신 창가에 앉아서 졸기나 하는 게으른 고양이라는 뜻이 아닌가? 주인의 눈치나 살피는 무능한 고양이 꼴이라는 비유다. 이보다 더한 능멸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준석이 쏴붙인 이 모욕에 한마디 대꾸하는 국회의원이 없다는 것이다. 이곳 국회의원들은 정말 어리바리한 살찐 고양이가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딱 한 사람 볼멘소리를 낸 국회의원이 있긴 했다. 그러나 그것도 우스웠다. 그의 항변인즉, 이준석이 ‘버릇없다’라는 말이었다. 기껏 ‘예절론’으로 이준석의 입을 봉해 볼 요량이었다니 ‘턱도 없는’ 얘기였다. 시대착오였다. 옛날에는 젊은 사람과 다투다 밀리면 ‘너 나이가 몇이냐?’라고 입막음했는데 지금 그런 억지에 주눅이 들 젊은이가 누가 있겠는가?

나이를 앞세워 기를 죽이려는 것은 전통사회에서나 있었던 사회적 폭력이다. 그때는 “너거 아부지 누고?”라는 말이 억압의 기제로서 힘이 있었다. 그 말이 아버지의 안부를 묻는 인사가 아님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것은 가부장적 위계질서를 불러내 젊은이의 입을 닫게 하려는, 실로 몽매한 구조적 억압이었다. 그러하니 이준석은 더 기세등등하게 받아친다. “힘 있는 사람 하수인 노릇하던 국회의원이 누구였는지 하나하나 짚어보겠다.” 그러자 더 이상 토를 다는 비만 고양이는 없었다.

가만히 보면, 비만 고양이가 측은하기도 하다. 비만 고양이의 초라한 행색이 가엽고, 사실상 고양이의 비만은 그들 자신의 탓이 아니기에 연민이 생기기도 한다. 대구 국회의원들이 비만 고양이가 된 것은 그들의 유전인자나 심성이 나태해서가 아니라, 지역주의, 그리고 그것을 끊임없이 재생하는 선거제도가 만들어 낸 것이다. 말하자면 구조적 요인의 산물이다. 난다 긴다 하는 정치인도 이런 조건에 가져다 놓으면 비만 고양이가 될 수밖에 없다. 공천만 받으면 막대기를 꽂아도 당선이 된다는 이곳에서 국회의원들은 권력자에게 잘 보여서 공천만 받으면 그것으로 정치활동은 끝이다. 유권자는 안중에 없다. 이런 상황이 게으른 고양이를 만들어왔다.

그렇다면 이 대목에서 비만 고양이들은 고민해야 한다. 살찐 고양이라는 모멸을 받으며 살 것인가?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스스로 혁신에 나서야 한다. 건강한 보수정당이 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야 한다. 강경 보수의 감정선이나 자극하며 보수의 안방 따뜻한 아랫목에서 편하게 살아온 것에 대해 성찰해야 한다. 변화하는 세상에 미치지 못하는 상상력, 절박한 민생위기를 느끼지 못하는 불감증, 시대의 아픔을 함께하지 못하는 게으름을 반성해야 한다. 미리 혁신하지 않으면 혁신을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고양이들의 비만을 막을 열쇠는 단연코 선거제도 개혁이다. 선거제도를 개혁하게 되면 이곳에도 정치적 다양성을 실현할 수 있고 나아가 사회적 개방성과 경제적 역동성을 이룰 수 있다. 민심을 그대로 반영하는 선거제도를 만들면 이곳에도 여러 정치세력이 등장하여 경쟁할 것이고 고양이들은 양지바른 곳에 앉아서 주인만 바라보며 살 수가 없게 된다. 유권자들은 더 이상 ‘잡아놓은 물고기’가 아닐 테니 그들을 찾아 나서야 한다. 그렇게 되면 고양이들은 살찔 시간도 없을 것이며 나태하고 무능하다는 조롱을 받을 이유도 없을 것이다. 비만 고양이가 선거제도 개혁에 앞장서야 하는 이유다.

지금 선거제도 개혁은 지지부진하다. 나라를 두 쪽으로 가르고, 증오와 혐오의 정치를 조장하는 진영정치의 주범이 승자독식 선거제도라는 건 천하가 알고 있는 사실인데 여의도의 거대 양당은 또 딴청을 피우고 있다. 어떤 것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는 데 유리한가라는 수읽기에나 골몰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선거제도 개혁이 이번에도 실패한다면 우리나라 정치는 더 깊은 늪으로 빠져들 것이 분명하다. 현행 선거제도를 숙주로 몸을 기대고 있는 ‘비만 고양이’가 그 그늘에서 나와 정치개혁, 정당개혁의 실마리를 찾아보기 바란다. 비만 고양이가 살고 있는 보수의 안방에서 변화를 시작하면 우리나라 정치 전체가 바뀌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가장 살이 많이 찐 고양이를 골라 혼을 내 줄 것이라는 이준석에 의해 어떤 변화를 당할지 모른다. 이준석 바람이 심상치 않아 보여서 하는 말이다.

김태일 전 장안대 총장

김태일 전 장안대 총장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