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삶]청소광

기자 2023. 11. 15.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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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케이블채널 TLC에서 방영했던 <My Strange Addiction>은 보편적이지 않은 강박과 중독을 가진 사람들을 소개하는 다큐멘터리다. 쇼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플라스틱, 벽돌, 페인트 등을 먹는 이식증을 갖고 있거나 베개, 암석, 남편의 유골과 같은 특정 물건에 집착하고, 귀를 파거나 피부에 앉은 딱지를 떼는 등의 신체 자극 행위를 멈추지 못한다. 단순히 기벽 정도로 간주하기 어려운 개인의 병리적 강박 증상들을 ‘보여주는 것’에 충실한 쇼는 강박과 중독을 대하는 특유의 건조한 연출로 온라인에서 화제를 모았다.

완전히 같은 포맷이라 할 수는 없지만 우리나라에도 개인의 독특한 습벽과 신념을 다루는 <화성인 바이러스>라는 쇼가 있었다. 매운맛에 중독되어 캡사이신 소스를 들고 다니는 화성인, 10년 동안 양치질을 하지 않은 화성인, 매주 연애 상대를 바꿔 만나는 화성인, 애니메이션 캐릭터 베개와 결혼한 화성인까지…. 종영 후 10년이란 시간이 지났지만 과거 영상을 다시 찾아보지 않고도 그들의 ‘기행’이 쉽게 떠오르는 이유는 방영 당시부터 지금까지 반복되는 여론의 낙인과 더불어 출연자와 나를 완전히 분리하고자 했던 강렬한 경계의 경험 때문이다.

<My Strange Addiction>과 <화성인 바이러스> 같은 방송들을 보면서 나는 출연자와 나 사이에 벽을 만들어 그 벽 뒤에 나의 강박과 중독들을 가둬 두었다. 한여름에도 몸을 무겁게 짓누르는 감각을 느끼지 못하면 잠에 들 수 없는 것, 불안하고 초조할 때 빨대나 볼펜 뚜껑 같은 작은 플라스틱을 턱이 아플 때까지 씹는 것, 중요한 일을 앞두면 캡사이신을 들이부은 매운 음식으로 긴장을 달래는 나의 ‘이상한 중독(Strange Addiction)’들을. 이것은 모두 ‘화성인’이 되기에 충분한 증상이었다.

지난달부터 공개된 유튜브 콘텐츠 <청소광 브라이언> 역시 강박과 중독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새로 구입한 청소 도구를 ‘언박싱’할 때 희열을 느끼고, 로봇 청소기의 움직임에 맞춰 춤을 추며 교감하는 ‘청소 중독자’ 브라이언은 청결에 대해 지나친 강박을 갖고 있다. 그는 불결한 환경을 ‘싸가지 없는 것’이라 말하고, 타인은 모두 오염물질이라 여기며 ‘I HATE PEOPLE’을 외친다. <청소광 브라이언>은 이런 브라이언의 지독한 청소벽에 ‘충격요법’을 진행하는 예능이다. 포맷만 놓고 보자면 깔끔한 브라이언이 청결에 무심한 의뢰인의 환경과 생활습관을 고쳐주는 솔루션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방송은 의뢰인의 더러운 습관에 기겁하며 청소를 하는 브라이언과 그런 브라이언을 태평하게 바라보며 낄낄대기 바쁜 의뢰인을 번갈아 비추면서 두 사람이 서로의 습관을 침범하며 발생하는 반응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각자가 가진 크고 작은 강박들을 자연스럽게 끌어낸다.

강박과 중독에 관용을 베풀지 않는 사회에서 미디어는 그것을 오락으로 이용한다. <청소광 브라이언> 역시 브라이언의 ‘결벽증’을 캐릭터로 구축해 흥미를 끌어내는 콘텐츠다. 개인이 가진 병적 습관이 예능 소재가 되는 것은 충분히 우려할 만한 사안이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방송이 강박과 중독을 어떻게 다루는지 함께 파악하면서 개인의 중독 문제를 사회가 어떻게 수용해야 할지 논의할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우리 모두는 조금씩 강박과 중독을 가지고 있다. 그중 어떤 강박과 중독들은 숨기고 은폐할수록 해로워진다. 개인의 불안과 정신 건강에 대해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은 그래서 중요하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구분하는 것에 쓰던 힘으로 서로의 ‘벽’을 이해하고 내가 쌓은 ‘벽’을 부수자. 어떤 불안을 가졌는지, 그것이 어떤 습관을 만들었는지 쉬쉬하지 않고 터놓을 수 있는 환경은 중독과 강박이 만드는 위험한 상황을 예방하고 대처할 수 있는 사회의 힘이 될 것이다.

복길 자유기고가 <아무튼 예능> 저자

복길 자유기고가 <아무튼 예능>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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