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숨의 위대한 이웃]현규씨

기자 2023. 11. 1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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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본 것, 내가 계속 지켜본 것, 내가 경험한 것, 그래서 내가 알게 된 것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거예요. 내가 느낀 걸, 내가 깨달은 걸 이야기할 거예요.”

2005년에 경기 양평의 ‘수풀로 운심리(한강생태학습장)’에서 숲 해설가가 된 현규씨. ‘난 앵무새가 아니야, 난 녹음기가 아니야’라는 저항이 그녀의 깊은 내부에서 터져 나온 것은 3년쯤 됐을 때다. 그녀는 앵무새가, 녹음기가 되지 않으려 스스로에게 질문하기 시작했다. ‘이 나무는 왜 이곳에 서 있을까?’ 그녀는 알고 싶어서 그 나무를 보러 갔다. 오늘도 보러가고, 내일도, 모레도, 글피도…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다시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렇게 그녀는 15년 동안을 거의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수풀로 운심리에 머물며, 억새와 버드나무 몇 그루뿐이던 그곳이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풍성한 숲으로 성장하는지 지켜봤다. 팔당호가 만수가 되면 물에 잠기는 그곳에서 물에 실려 온 온갖 씨앗들이 발아해 꽃으로, 나무로 자라는 과정을 함께했다.

그녀를 숲 해설가의 길로 인도하고 성장시킨 은인은 큰딸. 22년 전 다섯 살이던 큰딸에게 지적장애 진단을 내린 의사의 목소리를 그녀는 잊을 수가 없다. ‘어머님 잘 들으세요. 어머니 딸은 직장 못 갖고요, 대학에 못 갈 거고요. 사회생활도 못할 거고요….’ “ ‘할 수 있어요.’ 나는 그 말을 듣고 싶었어요.” 그녀는 큰딸을 데리고 숲으로 가기 시작했다. ‘엄마 이게 뭐야?’ 큰딸이 묻는 게 좋았다. 이름을 알려주고 꽃과 나무들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학교에 입학한 후 아이들로부터 ‘섬’ 취급을 받는 딸을 보고 상처받은 그녀는 장애아를 가진 엄마들과 모여 ‘연극마음치료’를 하다, 한발 더 나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연극 무대에 올렸다. 그녀가 맡은 역은 ‘다운증후군 아들을 잃어버린 엄마’. “우리 아이는 지적 장애가 있어요. 우리 아이를 보면 눈을 마주치고 천천히 물어봐주세요. 전화번호를 물어봐주세요. 엄마 이름을 물어봐주세요. 기다리면 우리 아이는 말할 수 있어요. 다 말할 수 있어요. 제가 다 가르쳤으니까 말할 수 있어요.” 그 대사를 관객들에게 온전히 전달하려 애쓰며 그녀는 처절하게 깨지는 경험을 했다. 그건 그녀의 이야기, 진짜 그녀의 이야기였다. “그런데 나의 숲 해설은 가짜 같았어요.” 부끄러움과 함께 ‘내 것이 된 이야기에 대해서만 말해야겠다는 다짐’이 그녀에게 왔다.

그녀가 숲 해설가로 자라나는 동안 그녀가 27세에 낳은 큰딸이 27세가 되었다. 20세에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고, 졸업 후 카페에 바리스타로 취직해 지금껏 일하고 있다. 정석대로 커피를 내리는 큰딸의 커피는 맛이 한결같다. 아이일 때 잘 웃어서 ‘미소천사’로 불리던 딸은 출근 2시간, 퇴근 2시간, 모두 4시간을 오가는 직장에 7년째 다니며 다니기 싫다는 말을 한 번도 한 적 없다. 큰딸은 스스로를 이렇게 말한다. “나는 그냥 직장인. 나는 그냥 바리스타.” 그녀가 큰딸을 키우면서 지킨 첫 번째 원칙은 ‘강요하지 않는다’였다. 그리고 “지켜봐줘야 해요. 그런데 지켜봐주려면 힘이 있어야 해요. 그 힘은 따뜻했던 기억(추억)에서 나와요. 그래서 따뜻한 기억을 많이 만들려고 노력해요.”

큰딸의 친구 중에 자폐성장애를 가진 청년이 있다. 그녀는 여의도 ‘샛강공원’에서 그 청년에게 숲 해설 교육을 시킨 적이 있다. 그 청년이 ‘가시박’에 대해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걸 듣고 그녀는 또 한 번 깨졌다. “‘저는 자폐성이 있어요. 저는 원래 그렇게 태어났어요. 가시박도 원래 그렇게 태어났어요. 가시박은 달라질 수 없어요. 저도 달라질 수 없어요. 가시박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여러분도 나쁘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 멋지고 솔직한 해설을 들으며 나는 배웠어요.” 그녀가 지금 숲 해설가로 있는 팔당호에는 작은 섬이 세 개 있다. 번식력이 좋고 잠수를 잘하는 민물가마우지의 배설물로 뒤덮인 섬들을 보고 그녀에게 묻는 이들이 있다. “민물가마우지를 죽여 개체 수를 조절해야 하지 않을까요?” 청년에게 배운 뒤로 ‘질문을 던지는 해설가’로 성장한 그녀의 대답. “민물가마우지는 원래 그렇게 생겼다네요. 생긴 대로 열심히 사는 것뿐이라네요. 저는 아직 결론을 못 내렸어요. 여러분들은 민물가마우지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하면 좋을 것 같아요?”

김숨 소설가

김숨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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