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예산편성 잣대도 모른 채 예산심의하는 국회
2024 회계연도 예산안 심의가 진행 중이다. 정부는 국가재정운용계획에 근거하여 분야별, 부처별 지출한도를 설정한 후 예산안을 편성한다. 따라서 국회가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을 심의·확정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분야별, 부처별 지출 한도를 알아야 한다. 하지만 기획재정부는 지출 한도를 비밀문서로 분류하여 관리하는 자료라며 제출이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이는 기재부의 권한 남용이다.
흔히 정기국회를 예산 국회라고 부른다. 대한민국 헌법에서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에 예산 심의권을 부여한 것은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을 검토, 분석, 조사하여 불필요한 국민 부담을 줄이고 국민이 낸 세금을 최적 배분했는지를 견제, 감시하라는 것이다. 따라서 국회는 정부 예산안에 대해 엄격한 잣대로 심사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국회는 정부 예산안을 제대로 심의하고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은 “아니다”이다. 왜냐하면 소위 예산편성 잣대를 모르고 정부 예산안을 심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4년 예산은 657조원에 달한다. 그런데 예산안 편성의 근간이 되는 분야별, 부처별 지출 한도를 모르고 국회가 예산심의를 진행한다면 졸속으로 심의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지출 한도는 각 부처의 자율·책임행정을 뒷받침하고 국가 차원의 중장기 재원관리와 전략적 재원 배분을 위해 도입된 것으로 각 부처의 과다 요구 개선, 부처의 자율성과 책임성 강화, 사업구조조정의 촉진, 전략적 재원 배분 가능 등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분야별 지출 한도는 보건·복지·고용, 교육, 문화·체육·관광, 환경, R&D, 산업·중기·에너지, SOC, 농림·수산·식품, 국방, 외교·통일, 공공질서·안전, 일반·지방행정 등 국가재정운용계획의 12개 분야별 재원 배분 계획을 설정한다. 따라서 대통령, 국무총리 및 각 부처 장관들이 참여하는 국무위원 재정전략회의에서 미리 설정한 분야별, 부처별 지출 한도를 잣대로 각 부처가 사업별 예산편성 과정에서 지출 한도를 잘 준수했는지, 또 예산 사정기관인 기획재정부는 예산사정 과정에서 각 부처가 제출한 예산안을 얼마만큼 존중해 주고 있는지 등 꼼꼼하게 심의해야 한다.
기획재정부는 중앙관서별 지출 한도를 포함하여 보고해 달라는 국회의 요구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어 제출하지 않고 있다.
첫째, 정부는 중앙관서별 지출 한도가 사전에 공개될 경우 이익집단이나 언론의 압력으로 인해 예산편성의 어려움과 행정비용이 가중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기우(杞憂)에 불과하다. 오히려 지출 한도가 공개되지 않음으로써 예산 사정기관인 기재부에 예산편성 권한이 집중되어 불신과 불만 요인이 되고 있다. 둘째, 네덜란드 등의 국가의 경우에도 지출 한도를 비공개로 운용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 국가의 경우 정부가 예산안을 의회에 제출하기 이전에 재정정책 및 거시지표 등에 대한 전망을 의회에 제출하여 심사하는 ‘사전예산보고(pre-budget report)제도’를 채택하고 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셋째, 국가재정법 제29조 제2항은 “중앙관서별 지출 한도를 포함하여 통보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동 조항은 재량(임의)조항이지 의무조항이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동 조항은 “기획재정부 장관은 제7조의 규정에 따른 국가재정운용계획과 예산편성을 연계하기 위하여 제1항의 규정에 따른”이라고 전제하고 있어 국회 보고는 당연하다.
국가 안보에 중대한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니고, 국회가 국가 예산을 심의하는 데 필수 정보임에도 불구하고 예산편성 관련 재정전략회의에서 미리 설정한 분야별·부처별 지출 한도가 비밀문서가 될 수는 없다. 국회가 예산심의를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분야별, 부처별 지출 한도 공개를 의무화하는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 국회가 위원회 의결 등을 통해 제출하도록 강제하는 방향으로 관련 법 개정이 시급하다.
류근식 (사)입법정책연구회 상임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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