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온 겨울···'전염병 공포'에 떠는 戰場(가자지구·우크라이나)

고광본 선임기자 2023. 11. 15.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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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감염병의 역사]
유럽 3분의 1 숨지게 한 흑사병
5000만명 앗아간 스페인 독감
전쟁과정서 전염병 크게 번져
열악한 위상상태·의료 붕괴에
우크라전 콜레라·이질 등 확산
가자지구서도 감염병 창궐조짐
15일(현지 시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칸유니스의 병원에서 한 엄마가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다친 자식들을 껴안은채 치료를 기다리고 있다. AP연합뉴스
[서울경제]

제1차 세계대전(1914~1918년) 말기 전장에 급속히 퍼진 ‘스페인 독감’은 1918~1919년 팬데믹으로 변한다. 당초 미국 캔자스에서 시작해 1918년 프랑스 주둔 미군 사이에 확산된 뒤 유럽의 전쟁터 곳곳으로 퍼진다. 위생이나 영양 상태가 좋지 않고 사람이 몰려 있다 보니 감염병이 번진 것이다. 노인과 어린이가 많이 걸리는 일반 독감과 달리 젊은이들이 많이 걸렸다. 전후 군인들이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더 빠르게 확산돼 미국에서는 한 달 만에 약 50만 명이 목숨을 잃을 정도였다. 1918년 조선총독부 통계연감에는 한반도에서도 총인구 1670만 명 중 44%가 독감에 걸려 14만 명이 숨진 것으로 나온다. 독감에 걸린 한국인과 일본인의 치사율은 각각 1.88%, 0.71%로 한국인의 피해가 훨씬 컸다. 이처럼 스페인 독감은 세계로 퍼져 세계 3분의 1가량의 인구를 감염시키며 약 50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뒤에야 종식됐다.

앞선 크림전쟁(1853~1856년)에서도 감염병이 창궐해 수많은 희생자를 낳았다. 자원해 부상자를 돌본 영국의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은 수십만 명의 사망자 중 총·칼보다 전염병으로 숨지는 경우가 훨씬 많다는 것을 간파했다. 야전병원의 비위생적 환경과 오염된 물로 인해 부상자들이 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이러한 통계를 바탕으로 ‘더 타임’지에 야전병원의 참상을 전한다. 결국 영국에서 조립 위생 병동을 개발해 야전병원 사망률을 42%에서 2%까지 획기적으로 낮추는 계기를 만든다.

크림반도는 14세기 유럽 인구의 3분의 1가량을 숨지게 한 흑사병(페스트)의 중간 전파 경로로도 거론된다. 쥐벼룩에 의한 흑사병은 치사율이 90%나 됐다. 몽골에서 시작된 이 병은 1347년 몽골 킵차크한국 군대가 이탈리아 제네바 식민도시인 카파(현 페오도시야)를 공격할 때 여의치 않자 감염된 시체들을 투석기로 성안에 던지면서 퍼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결국 제네바인들이 12척의 배를 타고 모국으로 피란했다가 유럽 전역으로 퍼졌다는 설이 나온다. 당시 흑사병은 유럽은 물론 러시아·인도·중국에까지 크게 번졌다.

역사적으로 전염병은 유럽인들의 아메리카 원주민 몰살이나 아프리카 식민 지배 확장, 명나라의 몰락,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과 북아메리카 식민지 팽창 실패 등에도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팔레스타인 언론인인 아이만 알알룰씨(왼쪽)가 ‘아이스 버킷 챌린지’를 응용해 건물 잔해를 뒤집어쓰며 가자지구의 참상을 알리고 있다. /러블 버킷 챌린지 동영상 캡처

우리나라에서도 한국전쟁(1950~1953년) 당시 영양실조로 인한 면역력 취약과 열악한 위생 환경 등으로 결핵, 수인성 감염병, 신증후성 출혈열 등 감염병에 걸리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지난달 7일 시작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도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들 사이에 감염병이 늘고 있다. 이스라엘이 하마스 척결을 이유로 물·식량·전기·의약품 공급을 차단한 데 이어 병원까지 무자비하게 공격해 의료 시스템이 붕괴되고 위생 상태가 열악해졌기 때문이다. 가자지구를 봉쇄한 채 토끼몰이식으로 제노사이드(대량학살)를 벌인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더욱이 겨울철로 접어들며 우기가 시작돼 추위가 몰아닥치는 점도 감염병을 키울 요인으로 꼽힌다. 가자지구 난민 주에이디 씨는 AFP에 “옷·매트리스·담요 모두 물에 젖었다. 개도 이렇게 살 수는 없다”며 “갈아입을 옷도 없고 잘 곳도 없다. 사흘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고 하소연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달 중순 이후 가자지구에서 5세 미만을 중심으로 3만 3500건 넘는 설사 사례가 보고됐다고 밝혔다. 마거릿 해리스 WHO 대변인은 “수인성 감염병과 박테리아 감염, 유아 설사가 늘고 있다”며 “우기철로 접어들며 고통이 가중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침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감염병 우려가 끊이지 않는다.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의 남동부 마리우폴에서 지난해 부패한 시신과 쓰레기로 인해 식수가 오염돼 콜레라·이질 등 수인성 감염병이 발생했다. 올 6월 카호우카댐 파괴로 침수됐던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에서도 수인성 감염병이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인류의 전쟁이 뒤바꾼 의학 세계사’를 펴낸 황건 국군수도병원 교수(인하대 의대 명예교수)는 “20세기까지 수많은 전쟁에서 전염병으로 숨진 경우가 훨씬 많았다”며 “가자지구와 우크라이나에서도 감염병 우려가 많다”고 지적했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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