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견을 듣는다] "韓경제 위기 반복되는 구조… 외환위기서 교훈얻지 못해 아쉬워"
위기는 극복하면 득 되는 '위기의 효용'… 평소 못 고치던 구조적 문제 해결 계기
쟁쟁한 경제학자들 토론하자 갔더니 '질문같은 질문' 안나와… 문제의식이 없더라
외환위기는 '신뢰의 위기'… 구제금융 신청 번복사태로 초긴축·초고금리로 악화돼
[]에게 고견을 듣는다 김인호 시장경제연구원 이사장·前청와대 경제수석
"우리는 여전히 26년 전 외환위기에서 제대로 된 교훈을 얻지 못했습니다. 백제가 망한 것이 계백장군이 패해서입니까? 백제가 멸망할 수밖에 없었으니 계백장군이 패했고 백제가 망한 겁니다. 단군 이래 가장 큰 경제 사건이라는 외환위기는 극복만 잘 했다면 선진국 진입도 더 빨랐고, 지금 숙제로 남아 있는 노동개혁도 이룰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치적 후진성과 지도자의 사심, 위기를 대하는우리 국민의 불합리한 태도가 교훈을 얻지 못하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기로 한 게 11월 19일(IMF 캉드쉬 총재와 합의한 건 11월 16일)이니 외환위기 발생 26년이 지났다. 현 시점에서 새삼 외환위기를 환기하는 이유는 한국경제가 늘 구조조정과 체질전환의 갈증을 벗어나지 못해온 와중에 현 상황도 엄혹하기 때문이다.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장관급)으로서 외환위기의 본질과 배경에 대해서는 김인호 전 수석만큼 꿰뚫고 있는 분이 없다. 김 전 수석으로부터 외환위기의 원인, 대응, 극복 과정 등에 대해 고견을 들었다.
김 전 수석은 김대중 정부에서 위기 대응을 잘못했다는 소위 '환란 주범'으로 몰려 기소돼 재판을 받기도 했다. 1· 2·3심 모두 무죄판결이 났지만 정책적 판단에 대한 형사처벌 시도가 과연 온당한가라는 의문을 던지는 계기가 됐다.
사실 김 전 수석은 위기의 전조가 이미 드리웠던, 외환 위기 발생 9개월 전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들어가 금융개혁과 이를 통한 기업 부실 해소를 위해 뛰었다. 대량실업, 초고금리, 초긴축재정 등 국민 대다수가 기억하는 외환위기는 이후 IMF와 협상을 잘못 벌인 결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겪지 않아도 될 고초를 국민들이 겪게 된 데는 국가지도자와 정치인들의 책임 방기와 단견이 자리잡고 있다.
김 전 수석은 외환위기에서 교훈을 얻으려면 지금이라도 객관적 실증적 학문적 연구를 통해 그 본질, 원인과 배경, 대응의 적절성, 책임소재를 명명백백히 밝혀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경제가 '위기의재생산구조'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다. 인터뷰는 지난 9일 서울 용산 철도회관에서 가졌다.
대담 = 이규화 논설실장
-매년 이맘때가 되면 장관님 소회가 여느 때와 다를 것 같습니다.
"IMF 위기가 우리 사회 국가, 좀 좁게는 경제에 갖는 의미는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 생각하는 바가 많겠지만, 크게 세 가지로 좀 줄여서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누구나 다 인정하는 것 같이 단군 이래 최대의 경제적 사건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나는 의구심이 좀 있어요. 그렇게 중요한 사건이었느냐, 결과론적 이야기지만 우리가 그 문제를 제대로 정확하게 파악을 못하고 대처를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큰 사건이 돼버린 것이지, 사실은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는 것 자체는 그렇게 대단한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 대다수 국민들은 구제금융 자체를 위기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IMF로부터 구제금융 받은 나라가 한두 나라입니까? 영국도 두 번이나 받았단 말이에요. 어떤 나라든지 경제를 운영하다가 잘못했었을 수도 있고 별로 잘못하지 않았지만 어떤 국제적인 환경에 휩쓸려 일시적으로 외환 부족 상황이 올 수가 있단 말이에요. 그때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신청해서 사용하고 갚으면 그걸로 끝이에요.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는 것이에요. 원래 그거 하자고 IMF 만들어 놓은 거야. 그럴 가능성이 없다면 IMF는 존재할 가치가 별로 없는 기구란 말이에요. 우리는 그걸 단군 이래 최대의 역사적 사건이었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만 굉장히 의미를 부여하고 있을 뿐이지 사실 그보다 더 의미를 부여해야 될 부분이 있단 말이에요. 이것이 두 번째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인데, 왜 IMF 위기라는 사태를 맞게 됐는가, IMF가 발생하게 된 배경, 또 그 당시의 상황 이런 것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갖고 있느냐 하는 데 대한 문제의식이 사실은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라는 말씀입니다."
-위기를 철저히 객관화 해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씀인가요.
"세 번째 중요한 IMF 위기의 의미는 '자원의 위기'는 아니라는 인식입니다. 위기라고 하는 건 항상 양면이 있어요. 어려운 측면이 있지만 또 그 위기를 잘 극복하면 그것이 득이 되는 거란 말이에요. 그래서 나는 이걸 '위기의 효용'이라고 합니다. 일본 경영의 신이라고 하는 마쓰시타 고노스케라는 사람은 '불황의 효용'이라는 말을 썼어요. 불황의 효용이 뭐냐 하면, '호황은 좋다 그러나 불황은 더 좋다'는 의미입니다. 불황이 왜 더 좋냐 하면, 사람은 호황 때는 잘 나가니까 자기를 되돌아봐야 할 필요가 없죠. 불황에 닥치면 왜 어려움을 당하게 되는가라는 반성을 하게 되고 거기서 문제점을 발견합니다. 특히 구조적인 문제는 평소에는 못 고치는데, 이제 정말 고치지 않으면 우리가 안 되겠구나 하는 걸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고노스케는 불황의 효용이라는 말을 썼어요. 같은 맥락에서 나는 위기의 효용이란 말을 씁니다. 위기 자체는 나쁜 겁니다. 그러나 위기를 잘 극복하는 동시에 거기서부터 제대로 된 교훈을 얻으면 그 위기는 오히려 큰 도움이 될 수가 있다는 겁니다. 나는 이제 이 세 가지 측면에서 우리가 IMF 전모랄까, IMF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우리 국민들이 그저 '단군 이래 최대의 경제 사건이었다'는 걸로, '엄청 고생했다'는 기억만 남아 있을 뿐이지 왜 위기가 왔느냐 하는 걸 진지하게 반성한 적이 있는가, 또 그 위기를 통해서 우리가 어떤 교훈을 얻을 건가 하는 것에 대해선 부족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개인이 됐건 기업이 됐건 사회나 국가, 정부가 됐건 위기의 원인, 배경, 교훈을 얻는데 정말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였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우리가 위기에서 배우지 못하다는 지적은 아마 많은 국민들도 공감할 것 같습니다.
"그때 그 상황에서 왜 그런 정책을 썼느냐 또는 다른 정책 수단이 있는데 왜 그건 안 썼느냐 이렇게 분석하고 (교훈을 얻었더라면) 그 후에 (2003년 카드사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위기를 좀 쉽게 이겨내거나 안 맞을 수도 있지 않았겠나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토론을 통해 '그때 그런 수단이 있는 걸 우리가 미처 몰랐다' 그러면 그건 우리가 잘못한 것이라고 인정하고 배울 텐데, 그런 과정 없이 감사원이니 검찰이니 법원에서 외환위기의 원인과 배경, 책임을 다룬다는 건 사실은 말이 안 된다고 봅니다."
-원인 규명하려는 게 아니라 사태에 대한 책임을 어디로 돌리려는 의도가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당시 '이러 이러한 이유 때문에 정책이 제대로 실행이 안 됐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 무슨 문제가 있구나, 정치와 정부에 무슨 문제가 있구나' 이렇게 인식하고 그건 그것대로 정리를 하고 거기서부터 교훈을 얻어야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나라에 그 많은 연구소 그 많은 대학이 있고 경제학과가 없는 대학이 없지 않은데, 또 언론기관도 많은데, 내 기억에 (당시 경제팀을 이끈) 강경식 전 부총리나 나를 초청해, 뭐 초치라고 해도 좋습니다만, 이야기 좀 하자는 곳이 별로 없었어요. 물론 저나 강경식 씨가 강연도 많이 했지만요. 토론이 없었어요."
-그게 우리의 국민성이 아닌지 자조하기도 합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볼게요. 외환위기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대한민국 최고 수준의 대학 경제학부라는 곳에서 날 초청해 IMF 위기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교수들과 토론을 좀 하자는 제의를 받았어요. 그 대학에는 당시 30여명의 쟁쟁한 경제학자들이 있었어요. 대한민국 최고의 경제학자들이 모인 곳인데, 다들 엄청난 관심이 있을 거고 질문들이 쏟아져 나오겠구나 생각했어요. 잘못하다간 창피당하는 거 아닌가, 단단히 마음 준비를 하고 나갔단 말이에요. 질문이 많을 거라 생각해서 1시간 30분 강연할 걸 줄여서 1시간 정도 이야기를 하고 질문을 받겠다고 했는데, 참 놀랐던 건 질문다운 질문이 하나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지금 기억이 하나도 안 나요. 도대체 IMF 위기라는 단군 이래 대한민국 최대의 경제적 사건이라고 하는 것인데도 말이에요."
-상식인이 봐도 의외입니다.
"그런 큰 사건이라면 모든 경제학자들의 분석의 대상이 되는 게 아니겠어요? 적어도 경제학을 한다는 사람이 IMF 위기가 왜 왔지? 그것이 한국 경제에 무슨 의미가 있지? 또 그것을 통해 한국 경제는 앞으로 어떤 영향을 받을 것인지? 또 IMF 대응은 잘했는지? 이런 데에 관심이 없다면 경제학자가 아니죠. 그런데 강연 후 질문다운 질문이 하나도 없었어요. 한국 최고 수준의 대학이 이렇다면 다른 대학들도 불문가지 아니겠습니까. 바꿔 말하면 한국 학자들이 머리가 나쁘지는 않을 거고, 첫째 문제의식이 없다는 겁니다. 두 번째는 공부를 안 한단 말이에요. 질문을 제대로 할 수 있어야 공부가 되는 거 아닙니까. 제대로 알면 제대로 된 질문이 나오게 됩니다. 잘 모르면 질문이 안 나오죠. 서양의 공부 방식은 항상 질문하고 받고 대답하고 하는 것이지 우리같이 일방적으로 강의를 하고 듣고 노트하는 식이 아니란 말이에요."
-그렇습니다. 토론 기피 사회인 것 같습니다.
"우리 한국 사회의 지적 수준이 얼마나 쇠미한가 하는 걸 나타내는 거예요. 언론도 그렇지 않습니까. 사실 IMF와 관련해, 안 할 얘기로, 미국 같은 나라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면) 우리(당시 정부 경제팀)는 사방에 불려 다니면서 이야기하고 뭐 설명하느라고 한 10년간 바쁘게 살아야 했을 겁니다. 그러나 잠깐 한 것 외에 없었거든요."
-장관님이 1997년 2월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에서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들어오셔서 파악한 당시 한국경제 상황은 어땠나요.
"공정거래위원장에 있다 2월 말에 청와대에 들어갔어요.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면 사실상 위기의 전조적 상황들은 그때 이미 있었어요. 대표적인 게 한보 사태(한보철강이 부실화되면서 특혜 부정 대출이 드러난 일)입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소위 대마불사라고 큰 기업은 쓰러지지 않는다는 통념이 있었어요. 왜? 쓰러지면 그것이 바로 국가 전체에 문제가 되고 엄청난 사회적 정치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에요. 어떻게 하든 대기업은 안 죽일 거라고 하는 그런 생각들이 널리 깔려 있었단 말이에요. 그랬는데 대기업도 쓰러진다는 게 구체적으로 드러난 게 한보사태였단 말이에요. 그 뒤에 한 달에 한 번꼴로 부실기업이 쭉 생기고 있었고 급기야 기아사태라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자동차 기업이 부실화되는 데까지 이르게 되죠. 하지만 이것 때문에 IMF로 갈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없었고요. 그런 과정에서 사실은 우리(김 장관과 강경식 전 부총리) 들어가기 전부터 이미 금융개혁을 하기로 돼 있었단 말이죠. 대통령(김영삼 대통령)이 그해 연두 회견에서 발표를 했단 말이에요."
-국민들은 위기가 오고 있는데, 정부가 정책을 잘못 쓴 게 아니냐고 생각합니다.
"개혁을 위해서 자문기구도 설치됐습니다. 경제부총리 자문기구가 아니고 대통령의 자문기구입니다. 그러니까 경제 금융개혁의 주체는 대통령이에요. 강경식 부총리가 금융개혁의 주체였던 걸로 생각하는데 그건 잘못 알고 있는 겁니다. 금융개혁안과 자문기구라는 이 두 기구를 갖고 기업 부실화에 대처하기로 한 겁니다. 기업이 부실화되는 것은 결국 그동안 너무 방만한 경제 운용, 너무 확장 위주의 기업 경영을 한 데서 찾을 수 있고, 그러려면 자연히 돈을 많이 빌릴 수밖에 없잖아요. 국내에서 못 빌리면 해외에서 빌려오는 거고요. 그런데 돈은 갚으면 돼요. 못 갚을 정도의 확장이 되면 그게 부실화 된단 말이지. 그걸 사전에 감지하고 막아줘야 하는 역할이 금융감독 기능이에요. 금융감독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고 은행이 여신 관리 기능을 제대로 했다면 그런 사태가 안 생기는 거지요.당시 국제 금융이 돌아가는 것을 봤을 때 우리가 정말 금융개혁을 제대로 해야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됐어요."
-잘 진행이 됐습니까.
"사실은 그 당시 정부 차원에서 한쪽은 기업 부실 대응을 해나가면서 다른 한쪽은 금융개혁을 추진하는 두 가지가 경제정책의 최대의 과제였습니다. 처음엔 잘 진행이 됐어요. 부실을 정리해 나가기 위해서는 소위 부도유예협약이라는 걸 만들어 가지고 대응을 했습니다. 당시 그걸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부도내 버리면 되지 무슨 부도유예협약이냐며 비난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죠. 나름대로 다 괜찮은데 일시적 자금 순환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구조적으로는 얼마든지 다시 되돌릴 수 있는 그런 사업을 일시적 자금 어려움 때문에 바로 부도내 기업을 없애버리는 건 최선이 아니에요."
-기아차의 경우는 어땠습니까.
"급기야 기아라고 하는 상당히 비중 있는 기업이 부실을 당하게 되면서부터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어요. 처음에 기아를 부도내자는 사람도 있었지만, 일단은 부도유예협약을 맺었습니다. 그러면 구조조정 계획을 내야 될 거 아니에요? 그런데 하나도 안 내고 사방에 정치권 찾아다니면서 '우리는 국민 기업이니까 무조건 돈 퍼부어가지고 살려내라' 이렇게 하고 다녔습니다. 그랬더니 당시 대표적인 정치인인 김대중 이회창 씨가 그걸 지지하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기아에 돈을 퍼붓지 않는다고 '강경식 바꿔야 된다'고 사설로 주장하는 언론사도 있을 정도였단 말이에요."
-'국민 기업'이란 아우라에 시장원리가가 묻힌 거네요.
"그렇게 되면서 이 문제가 단순히 국내만 문제가 아니라 국제적인 문재가 됐습니다. '한국이라는 나라 참 이상한 나라다'라는 인식이 퍼질 수밖에요. 기업이 잘못해가지고 부실화됐으면 그에 대해 적절하게 대응해 나가야 되는데, 온 나라가 통째로 일어나서 기업을 '무조건 살려내라, 돈 퍼부어라' 이런 나라가 된 겁니다. 그러지 않아도 빚이 많아서 걱정이었는데, 한국이 문제를 인식하고 처리하는 방식을 보니까 안 되겠다는 인식이 국제 금융사회의 일반적 인식이 되어버린 겁니다. 한국에 대해 굉장히 회의적인 눈으로 보기 시작해 '신뢰의 위기'가 생기게 됐단 말이죠. 이럴 때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정도로 가는 길밖에 없어요."
-1997년 7월 이후 기아 사태가 급속도로 악화됐는데, 한보사태가 1차 도화선 이게 2차 도화선이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까.
"기아를 부도내는 대신 채권을 자산화 하는 구상이 알려지자 해외에서는 이걸 국유화로 받아들였어요. 부실기업을 국가가 국유화하는 것으로 인식이 되기 시작 한 겁니다. 기아 사태가 그런 상태에 빠진 단계에서 태국이 7월에 외환위기가 왔고 인도네시아 등도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해야 될 정도의 위기에 들어가게 되니까 한국도 그렇게 되는 거 아니냐는 의구심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2월 말 현재 외환보유고가 한 300억불 가지고 있었는데 계속 그 수준이 유지가 됐어요. 10월까지도 그 수준이 유지가 돼, 와환에는 큰 문제가 없었어요. 외환 문제는 위기라고 생각을 안 한 거죠. 근데 11월에 들어가면서부터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한 거예요.하루가 다르게 돈이 빠져나가는데 들어와야 되는, 다시 말해 롤오버(차입연장)가 돼야 하는데 그게 다 막혀 버린 겁니다."
-한국경제 실물 지표는 어땠습니까.
"11월 들어 내가 재무부하고 당시 재경원하고 한국은행 간부들 다 모아놓고 쭉 점검을 해보니까 큰 틀에서 우리 경제의 거시 지표라고 하는 펀드멘털은 괜찮았어요. 물가도 괜찮았고. 다만 문제는 기업의 불씨를 갖다가 처리를 해야 되는데 돈이 롤오버가 안 돼 이대로 가다가는 한두 달 내 진짜 문제가 오겠다, 이렇게 결론을 냈습니다. 그러면 방법이 뭐냐 생각해 볼 수 있는 모든 걸 다 한번 해보자고 했습니다. 일본에 돈 빌려오려고 하고 별거 다 해보자 했는데 그것도 안 됐습니다. 그래서 IMF로 갈 수밖에 없지 않냐 결론을 낸 겁니다. 그건 아까도 말했지만 경제를 아는 사람에겐 상식에 속하는 거예요."
-IMF 체제로 가면서 특히 초긴축 재정과 초금리 정책을 요구했습니다. 나중에 IMF나 세계적 경제학자들도 시인한 것이지만, 한국에는 잘못된 처방이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실은 그것 때문에 우리 국민들이 엄청난 고통을 당하셨고 그 트라우마로 IMF를 기억하는 분들이 많아요. 나와 강경식 부총리는 IMF로 간다는 결정을 내리고 당다 깡드쉬 IMF 총재와 협상의 얼개를 다 만든 다음 사임했습니다. 그후 협상은 임창열 경제부총리가 담당했어요. 이듬해 2월 김대중 정부가 그 바통을 이어받았고요. 우리가 처음 깡드쉬에게 금융 구조조정을 하겠다, 부실기업 정리하겠다, 문제 많던 금융회사도 우선 정리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밀었습니다. 그랬더니 깡드쉬는 '바로 내가 권하려고 하는 건데, 당신들이 다 준비하고 있네. 그럼 우리는 할 게 없네. 돈만 대주면 되잖아' 이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왜 IMF는 나중에 그렇게 강력한 긴축으로 돌변한 건가요.
"처음엔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한국이 기대했던 것보다 너무 상황도 괜찮을뿐더러 개혁도 스스로 하겠다고 하니까 말이에요. 근데 당시는 15대 대통령 선거의 해잖아요. IMF는 우리한테 차기 대통령 당선자도 협상내용을 인도스(지지)해야 한다는 겁니다. 당시 유력한 후보 세 사람에게 모두 사인을 받으라는 겁니다. 이 조건만 빼고는 쟁점 없이 클리어가 다 됐던 겁니다. 그대로 갔으면 IMF 위기는 IMF 힘을 빌려 구조개혁을 할 수 있는, 소위 말해서 위기를 최대한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다음 단계에서 다 깨져버리게 된 거예요."
-왜 그리 됐나요.
"후임 부총리인 임창열 씨가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것입니다. YS(김영삼 대통령)에게도 다 보고가 돼 있었어요. 그 발표에 워싱턴과 IMF가 야단이 났습니다. 사실상 IMF는 미 재무성의 통제 아래 있다고 봐도 무방해요. 최대 주주가 미국이니까. 미 재무부 차관보가 날아오고 야단이 났지요. 이틀 후에야 다시 IMF로 간다고 발표를 했어요. 물론 임창열 당시 부총리는 어떻게 해서든지 IMF에 안 가려고 최후의 노력을 기울여 보겠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일본과 다시 양자 협상을 했지만 안됐어요. 그 전에 강경식 부총리도 해봤지만 허사였습니다. 일본은 IMF 틀 내 아니면 별도로 양자협의의 지원을 할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이후 IMF와 미국의 한국에 대한 신뢰가 크게 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진짜 불리해진 건 바로 초긴축 재정과 초고금리 정책입니다. 남미나 태국 인도네시아 이런 나라들은 다 재정에 문제가 생겨서 위기가 왔던 나라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재정은 전혀 문제가 없었단 말이에요. 기업이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기업에 재정자금을 넣어서 살릴 수 있어요. 금융도 마찬가지입니다. 초고금리로 멍쩡한 기업들이 다 죽게 된 거죠. 대량의 실업 사태가 생겼고요. 그게 소위 한국인들이 경험한 IMF 위기인 겁니다. 다시 말해 간단히 외환의 위기로 끝날 수가 있었는데, 조금 더 해봐야 금융위기로 끝날 수 있었던 위기를 경제 전반의 위기로 확대시켰단 말이에요. 외환위기는 신뢰의 위기입니다."
-작은 위기에 잘못 대처한 것이 실제 더 큰 위기를 불렀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외환위기를 우리 국민들이 지금 잘 모르고 있는 측면이 너무 많아요. 몇 년 전 '국가부도의 날'이라는 영화가 상영됐는데 외환위기에 대한 왜곡된 정보가 많았습니다. 매우 무책임한 행위입니다. 앞서 말씀한 것처첨 IMF 구제금융은 이 위기가 국가부도로 발전하지 않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그때 부도 가능성은 기업과 금융에 있었지 국가 또는 재정의 부도 가능성은 없었습니다. 외환이 부족해서 위기가 온 게 아니라 위기가 와서 외환이 부족해진 겁니다. DJ(김대중) 정부에서 소위 '환란 주범'으로 나와 강경식 부총리를 감사원 감사와 검찰 수사 및 기소로 재판까지 갔지만 1·2· 3심 모두 무죄가 나왔습니다. 아까도 말씀했지만, 위기에서 교훈을 얻으려면 위기의 본질(Know What), 근본 원인과 배경(Know Why), 위기 대응과 극복방안(Know How)를 규명한 다음에 누구 때문에 생겼으며 해결은 누가 할 것인가(Know Who)를 밝혀야 되는데, 이런 프로세스가 전혀 없었고 국민적 고통과 울분의 해소 출구로 희생양만을 먼저 찾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외환위기에서 제대로 된 교훈을 얻지 못한 겁니다. 백제가 망한 것이 계백장군이 패해서입니까? 백제가 멸망할 수밖에 없어서 계백장군이 패했고 백제가 망한 겁니다."
-장관님은 회고록('명과 암 50년 : 한국경제와 함께')에서 역사로부터 배우지 못한 국민은 위기를 반복해 겪을 수밖에 없고 '위기재생산구조'에서 살 수밖에 없다고 강조하셨는데요, 한국경제가 내외로 어려운 현 상황에서 국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특히 국가지도자의 자세에 대해 아쉬움을 피력하셨는데요.
"위기가 구체적으로 드러나기 훨씬 이전부터 국제금융사회에서 한국의 유력 차기 대통령 후보인 김대중이라는 야당 지도자의 '참 사상'에 대해 의문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가 대통령이 된다면 어떤 경제정책 기조를 유지할 것인지 궁금증의 대상이었어요. 그가 주장해 온 '대중경제론'의 사회주의적 성격에 대해 국제경제사회는 깊은 관심을 갖고 주목해 오고 있었어요. 외환위기의 진행 과정에서 그의 당선 가능성이 커질수록 위기적 상황은 증폭되었다고 볼 수 있어요. 게다가 선거 막바지에 느닷없이 IMF와의 '재협상론'을 들고 나와 IMF와의 관계를 결정적으로 금이 가게 만들었습니다. 국제금융사회의 불신과 불안을 불러일으켰던 겁니다. 그것을 지켜보면서 과연 한국을 신뢰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갖게 된 겁니다. 국제금융사회의 불신과 불안이 이후의 금융 상황과 협상에 고스란히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 때문에 IMF로부터 막대한 자금이 들어와도 환율의 안정 등 위기의 진화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종전의 '재협상론' 태도를 바꾸어 IMF의 모든 조건을 수락하고 그 방향에 따라 경제를 운영하기로 천명하고 그것을 국제사회가 인정하고 난 후에야 금융시장은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외환위기를 극복한 대통령으로 각인돼 있는데요.
"제가 지금까지 설명한 것은 우리 국민이 경험한 '진정한 의미의 외환위기'의 실체입니다. 그리고 그 배경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 중심에 김대중 씨가 있었다고 봅니다. 이에 대해서는 정치권은 물론 언론이나 학계도 제대로 연구, 분석, 평가한 적이 없습니다. 외환위기 극복은 김대중 정부의 치적이라는 일방적 홍보만 있었을 뿐이에요. 김대중 대통령의 위기의 악화 및 수습의 지연과 관련한 결정적 책임은 역사적 검증과 학문적 분석을 통해 언젠가는 반드시 규명돼야 할 것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노동·연금·교육 개혁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외환위기로부터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요.
"IMF는 우리에게 노동 공공 금융 기업 4개 분야의 개혁을 주문했습니다. 순서를 들자면 먼저 공공을 개혁해야 합니다. 정부가 먼저 하고 나서 그다음에 노동 개혁을 하면 금융과 기업은 저절로 됩니다. 그런데 정부는 거꾸로 했어요. 제일 만만한 게 기업이니 막 붙여다 뗐다 마음대로 '조졌습니다'. 금융 구조조정까지는 그런 대로 했어요. 그러나 노사관계, 노동은 한 건도 한 게 없어요. 공공 정부 개혁도 공무원 숫자 좀 줄인 거 외엔 없없습니다. 미안하지만 공무원 숫자는 제가 철도청장 할 때 제일 많이 줄였어요. 세상의 일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자기부터 개혁하고 남 보고 고치라고 해야지요. DJ가 노사개혁을 안 하고 정부개혁을 못 한 것은 대상이 지지층이기도 하지만, 사회주의적 성향의 사람은 본래 빅 거버먼트를 추구하지 않습니까. 정부는 절대 줄이지 않지요. 따라서 윤석열 대통령도 힘들겠지만 가까운 부문부터 개혁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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