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석 칼럼] 언어순화 통해 혐오정서 극복하자

2023. 11. 15.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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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석 아름다운서당 이사장·前 노동부차관

현대는 '혐오의 시대'라 할 만큼 온갖 거친 표현이 난무한다. 혐오의 언어는 멸시, 모욕, 위협 등 부정적인 표현으로 나타난다. 대개 극단적인 혐오의 표현을 공개적으로 남발하는 것은 정치인들인데 지금은 혐오의 표현이 언론과 SNS 등을 통해 광범위하게 유포되면서 일반인들의 언어가 되고 혐오의 정서가 형성된 것 같다. 인간의 본성은 원래 악하다는 성악설이 맞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우울한 현실이다. 과연 해결책은 없는가.

보통의 인간이 강한 권위에 직면하면 맹목적으로 복종하는가 여부를 실험하기 위해 예일대 심리학 교수인 스탠리 밀그램이 1961년 실시한 전기충격 실험은 너무도 유명하다. 밀그램은 이 실험을 토대로 합리화할 수 있는 명분 있는 상황이 생기면 이성적인 사람이라도 통상의 윤리 규범을 무시하고 잔혹한 행위를 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밀그램 실험은 실험대상 학생을 의자에 묶어 놓고 기억력 검사를 해서 오답을 내면 그 벌칙으로 전기충격을 가한다는 규칙으로 시작했다. 오답이 반복되면서 전기충격이 점차 강화되자 실험대상자들은 고통을 호소하며 실험 중단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실험시행을 맡은 교사들은 학생들의 고통 호소를 보면서도 이를 무시하며 전기충격을 극단적인 수준까지 강화하는 충격을 가했다는 것이다.

이 실험의 핵심 관심사는 실험을 맡은 교사들이 학생의 상황에 따라 어떤 행태를 보일 것인지였다. 교사들이 실험대상 학생의 극심한 고통을 눈앞에서 목격하면서도 전기충격을 계속 올려간 것은 인간의 무자비한 성격, 악한 성격을 대변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교사들이 이런 행태를 보인 것은 이것이 명문대의 이름을 내세운 과학 실험을 돕는다는 명분이 주어졌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자기에게 부과된 과학실험을 완수해야 한다는 선한 의도와 명분이 있었기 때문에 일부의 고통, 가혹한 행위라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실험을 계속했다는 것이다.

밀그램 실험은 인간이 무자비하며 악한 본성이 있다는 것을 심리실험을 통해서 입증했다는 의미에서 오랫동안 명성을 유지했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에서는 그 실험이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는 선입관을 갖고 그런 방향으로 실험을 유도한 결과라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네덜란드의 저널리스트인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최근 발간한 '휴먼카인드'라는 책에서 이런 심리학 실험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있다. 브레흐만은 인간의 본성이 원래 선하고 협조적이라는 것을 수많은 실제 사례를 통해 입증하고 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는 이론은 잘못된 추론이거나 의도적으로 그런 측면만을 부각시킨 결과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필자는 지금 여기에서 인간의 본성이 악한가, 선한가를 새로 따지자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학설이 대립할 정도로 확실하지 않은 것을 우리는 미리 단정해놓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고 생각하고 보면 다른 사람의 행동이 대개 불순하게 보이고 그에게 좋은 감정을 갖기 어렵다. 이때 나오는 언어는 미워하는 감정, 심하면 혐오의 표현이 나오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혐오 정서를 극복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할 일은 우리의 언어를 순화하여 대화함으로써 선한 인간 본성에 충실해지는 것이다. 과거에는 TV나 신문에 나오는 언어 표현을 점검하고 다듬는 기능이 있었는데 최근에는 그런 기능이 약화된 것 같다. 표준어가 아닌 언어나 혐오감을 주는 표현이 언론에 여과없이 노출되어 어린이나 청소년, 심지어 어른들에게도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정치인들이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며 마치 선을 위해 혐오나 악을 행하여도 마땅하다고 호도하면 사람들이 따르는 경향이 있다. 여기에서 갑자기 정치의 품격을 높이자고 강조한들 소용이 있겠는가. 차라리 막말을 금지하고 정제된 언어만 사용하자는 소박한 제안이 더 효과가 있을 것이다. 사회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은 우리의 언어생활에서부터 시작하고 그것은 우리 모두가 쉽게 참여하여 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이제부터라도 의견이 다른 사람도 자주 만나 대화하면서 깨끗하고 절제된 표현을 많이 사용하여 국민의 감정을 정화하고 남을 배려하고 신뢰하는 마음을 강화하자고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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