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늙으려면 팀이 필요하다 [김은형의 너도 늙는다]
[김은형의 너도 늙는다]
김은형 | 문화부 선임기자
6개월 전부터 필라테스를 하고 있다. 비뚤어진 어깨를 바로잡고 ‘꺾이지 않는 허리’를 갖자는 연초의 다짐을 실행한 것. 어제는 단체 강습에서 상체운동을 하다가 어깨가 아파 포기했더니 끝나고 강사가 와서 말했다. “어깨가 안 좋으시면 병원 가서 치료받고 운동을 하시는 건 어떨까요?”
맞는 말인데 마음이 쫄렸다. 나오지 말라는 이야기인가? 유연한 몸으로 난이도 높은 동작을 잘도 소화하는 젊은 수강자들 속에 내가 눈엣가시처럼 보였나? 요새 나 빼고 다 하는 것 같은 달리기를 시작해 볼까 생각하면서 당근마켓의 동네 달리기 모임을 수시로 체크하는데 선뜻 나서지 못하는 이유도 비슷하다. ‘늙은 아줌마가 왜 껴’라는 눈길을 받을까 봐. 달리기는 혼자 하는 운동 아니야? 라고 생각할 사람도 있겠지만, 나처럼 혼자 하는 모든 일은 영원히 ‘내일 하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불가능에 가깝다.
넷플릭스 화제작 ‘나이애드의 다섯번째 파도’는 64살에 쿠바 아바나에서 미국 플로리다까지 180㎞를 헤엄쳐 건넌 다이애나 나이애드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20~60대까지 탈진으로, 해파리의 공격으로, 태풍으로 4번 실패 끝에 성공한 나이애드는 이렇게 말한다. “첫째, 절대 포기하지 마라. 둘째, 꿈을 좇기에 늦은 나이는 없다. 셋째, 수영은 고독한 스포츠 같지만 팀이 필요하다.”
톱스타였던 아네트 베닝과 조디 포스터가 주름 가득한 얼굴을 꾸미지 않고 나와 늙지 않는 열정을 보여준 영화라는 평가를 받지만, 나는 이 영화의 핵심은 나이애드의 세번째 말에 있다고 생각한다. 나이 들어가는 건 고독한 일이지만 팀이 필요하다.
사실 영화 속 나이애드는 진상에 가깝다. 실력 있는 수영선수도 한때 이야기지 환갑 넘어 마라톤 수영에 도전하겠다고, 그것도 네번이나(!) 실패를 반복하며 주변 사람을 괴롭히는 걸 보노라니 “내가 (나이애드의 코치 겸 파트너인) 보니라면 국물도 없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뉴욕 타임스’ 평대로 나이애드는 자기 연민이 없었고, 영화도 그에게 연민을 보이지 않는다. 대신 나이애드와 싸우고 실망하고 지쳤지만 끝까지 그의 도전에 힘을 실어준 항해사 존과 보니에 더 공감을 싣는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데, 늙어가는 데도 온 마을이, 아니 온 마을까지는 아니어도 팀이 필요하다. 대가족 시절에는 가족이, 종종 가까이 사는 친척까지 한팀이 됐지만 지금의 1인 가족이나 3~4인 가족은 팀을 꾸리기에 부족하다.
다큐멘터리 감독의 엄마 치매 간병기(또는 관찰기)인 ‘치매니까 잘 부탁합니다’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고집스럽게 홀로 엄마의 수발을 들던 아버지가 마침내 두손을 들고 난 다음 열린 대책회의다. 지역포괄지원센터 담당자와 케어 매니저, 요양보호사, 데이케어센터 책임자 등 우리로서는 어떻게 다른지 모를 업무 담당자들과 아버지, 필자에 엄마까지 7명이 집에 모여 “왁자지껄하고 활기찬 분위기에서” 각자의 역할을 면밀하게 분담한다. 비슷한 한국 책들에서 흘러나오는 비극성이나 암울함이 이 책에서 전혀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늙음과 돌봄이 팀 작업이기 때문이다.
돌봄이 아니라도 나이 들수록 팀의 필요성은 더 커진다. 떨어져 가는 신체기능을 북돋고 고갈되는 에너지를 끌어올리려면 혼자 하는 달리기보다는 함께하는 달리기가 훨씬 덜 지루하고 힘도 날 거 같다. 그런데 왜 나는 이렇게 말하면서 동네 달리기 모임을 여전히 주저하고 있는가. 평생 인기녀였던 적이 단 한번도 없으면서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으면 어쩌냐며 고민하고 있는가 말이다.
나이애드의 미덕은 불굴의 도전정신이 아니라 자기연민이 없었다는 것이다. 늙은 여자라고 무시하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 대신 자신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을 찾고 또 찾았다. 부탁하고 또 부탁했다. 나이 들어 불굴의 도전정신을 갖기 전에 장착해야 할 건 ‘늙고 불쌍한 나’라는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 필요한 팀을 꾸리는 것. 나의 달리기는, 중년 이후 도전의 스타트라인은 여기가 되지 않을까.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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