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일의 세상만사]'보수 대법원장'이 필요한 게 아니다

노동일 2023. 11. 15.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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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법원'의 신뢰상실
보수 진보 중요하지 않아
사법 권위 세울 수장 필요
"우리에게는 오바마 판사도, 트럼프 판사도 없다."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민정책에 제동을 건 판사를 '오바마 판사'라고 비난하자 존 로버츠 미국 연방대법원장이 반박한 말이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2005년 공화당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임명한 인물이다. 보수적 입장을 견지하지만 민주당이 추진한 '오바마케어' 판결에서는 합헌 의견에 동참했다. 정파에 관계없이 적극적인 비판에 나서는 경우는 사법부 독립을 침해하는 권력자의 언행에 대해서이다. 대한민국에도 그런 사표(師表), 롤 모델이 있다. 초대 김병로 대법원장이다. 건국 초기 이승만 대통령은 김 대법원장 임명을 주저했다. 정치 성향 차이가 큰 걸림돌이었다. 취임 후 두 사람은 사법권 독립을 두고 종종 대립각을 세웠다. 1950년 3월 '국회 프락치 사건' 재판에서 법원은 '프락치'로 지목된 국회의원들에 대해 가벼운 형을 선고했다. 정권의 관심 사건에 대한 잇따른 무죄 선고도 이 대통령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이 대통령은 1956년 국회에서 "우리나라 법관들은 세계에 유례가 없는 권리를 행사한다"며 비판을 쏟아냈다. "이의가 있으면 항소하시오." 김 대법원장의 응수였다.

김명수 전 대법원장을 '역대 최악의 대법원장'이라고 평하는 의견에 상당 부분 동의한다. 진보 대법원장이어서가 아니다. 이른바 진보 인사들로 법원 구성을 바꾸어서도 아니다. 후보 시절 언론과의 첫 대면에서 대중교통 이용 '쇼'로 시작한 위선부터 문제였다. 김 대법원장은 탄핵을 추진하는 민주당을 의식해 임성근 판사의 사표 수리를 거부했음에도 거짓 해명을 내놓았다. 적극적·소극적 거짓말로 거짓에도 등급이 있다는 전원합의체 판결은 최악의 판결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본인의 거짓말은 어디에 해당하는지 궁금하다. 이른바 '사법행정권 남용' 문제에 대해 필자는 당시 법원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김 대법원장은 "수사에 필요한 협조를 마다하지 않겠다"며 숱한 법관들을 재판정에 세웠다. 2018년 사법부 70주년 행사는 상징적 장면이었다. 법원의 생일 잔치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정권의 사법농단 의혹은 반드시 규명돼야 한다"며 질책했고, 김 대법원장은 "적극 협조하겠다"고 호응했다. 본인은 물론 아무도 예상 못한 인물을 발탁해준 정권에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하겠다는 다짐이었다. 특정한 재판은 한없이 늘어지고, 법원을 농락하는 피고인 앞에서 한숨이나 쉬는 판사가 국민 눈에 비친 사법부의 현주소이다. 국민의 신뢰를 잃고도 권력에 굴신하며 자리를 지킨 수장 탓에 사법부 전체의 권위가 덩달아 땅에 떨어진 것이다.

"한평생 법관 생활을 하면서 좌나 우에 치우치지 않고 항상 중도의 길을 걷고자 노력했다." 조희대 대법원장 후보의 첫마디이다. "우리의 두 눈은 좌우를 가리지 않고 본다"고도 했다. 이른바 '보수 대법원장' 우려에 대한 답변이다. 섣부른 단정은 이르지만 이 시점에서 국민이 요구하는 대법원장의 모습이 무언지 명확한 해답을 제시했다고 본다. 전임자의 행적을 돌아본 이유가 있다. 그것만 일별해도 신임 대법원장 자격에 대해 긴 설명을 요하지 않을 것이다. 보수 정권의 보수 대법원장이 필요한 게 아니다. 진보나 보수가 아니라 사법부를 '바로 세울' 대법원장이 필요한 시점이다. 추락한 사법과 법정의 권위를 되찾기 위해 지금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대법원장다운 대법원장'이다. 보수냐 진보냐는 그다음이다. 아니, 사법부 권위를 바로 세우는 데 이념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단 하루를 하더라도 진심과 성의를 다해서 헌법을 받들겠다"는 조 후보자의 인식은 그래서 반갑다. "재산이나 여러 가지 경력관계 또 가족관계, 병역, 세금 하나도 흠잡을 바가 없습니다. 어쩌면 오래전부터 대법관이 되기 위해서 꿈을 꾸신 분이 아닌가." 2014년 조희대 대법관 후보 인사청문회에서 나온 민주당 박범계 의원의 극찬이다. 야당이 새삼 인준을 거부할 명분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조 후보자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헌법과 법률 그리고 양심의 명령에만 따르는 대법원장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dinoh7869@fnnews.com 노동일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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