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DT인] 아날로그에 익숙한 물류에 DT 이식… "공급망 리스크, 데이터관리 필수죠"
물류업계 디지털혁신 포부로 창업… 화물 운송상태 실시간 모니터링
코로나사태때 사업 빛봐… "추가부담없이 영세업체 디지털전환 목표"
"물류는 언제라도 멈출 수 있습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등 거대한 국제 분쟁이 아니더라도, 갑자기 병목이 발생하거나 기후변화로 운하가 말라버리든가 하는 불확실성이 날로 커지고 있습니다. 이런 공급망 리스크에 시기적절하게 대처하려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T)'을 통해 상시 모니터링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13일 서울 강남구 사옥에서 만난 박민규(40·사진) 트레드링스 대표는 '왜 물류업계가 DT를 해야 하나'는 질문에 공급망 불확실성을 꼽았다. 수시로 빈발하는 공급망 리스크를 사전에 방지할 수는 없지만, 문제가 발생했을 때 즉각 대처하려면 실시간 데이터 관리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현대상선(현 HMM)에서 일했던 박 대표는 지난 2015년 트레드링스를 창업했다. 물류업계에 디지털 혁신을 가져오고, 이를 통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겠다는 포부에서였다. 직장을 그만두고 1년 정도 IT 기술에 대해 깊이 공부한 다음 공동창업자들과 의기투합해 회사를 차렸다. 지금도 물류업계는 디지털화가 미비하다는 지적을 받지만, 창업 당시에는 대다수의 업무가 전화와 팩스, 수기, 단순 엑셀 등으로 이뤄질 정도로 아날로그적이었다. 물류 대기업의 경우에는 그나마 내부 전사적 자원관리(ERP) 등의 제반 여건이 마련돼 있었지만, 영세업체로 갈수록 '사람을 갈아서 일을 하는' 행태가 만연했다.
"지금 저희 화물은 어디에 있나요?"
물류업계는 크게 세 주체로 구성된다. 물건을 보내거나 받는 '화주'와 운송 서비스를 제공하는 '선사(항공사)', 그리고 둘 사이를 중재하는 '포워더'다. 포워더는 하루에도 수십 통씩 이런 전화를 받는다고 한다. 화물을 제때 받아 공장을 돌려야 하는 화주는 수시로 화물 운송상황과 도착 예정시간이 궁금할 수밖에 없고, 이는 고스란히 포워더의 업무 부담으로 이어진다.
박 대표는 "수출 업무를 할 때 이러한 소통 이벤트가 30회 정도, 수입은 33회 정도라고 한다"며 "그때그때 서류를 작성하고, 또 보내고 하다보니 포워더들은 휴가를 가도 제대로 못 쉬는 일이 많다"고 말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트레드링스는 수출입 공급망 솔루션 '쉽고'를 서비스하고 있다. 쉽고는 위성 선박자동식별장치(AIS)와 선사, 터미널의 변동 스케줄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화물의 운송 상태를 예상해 해상부터 내륙까지 운송상태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게 해준다. 화물의 이동경로와 위치를 지도를 통해 확인할 수 있고, 딜레이가 예상되는 화물은 사전에 확인해 관리할 수도 있다.
트레드링스가 운영하는 또다른 서비스는 수출업 협업관리 솔루션 '짐고'다. 내 화물에 적합한 포워더를 찾아 견적을 요청하는 것부터, 각종 수출입 서류를 주고 받고 그 데이터를 관리하는 것까지 과정을 편하게 만드는 서비스다. 예컨대 수입할 때 세관당국에 제출하거나 주고받아야 할 서류가 60여종에 이르는데, 이런 서류들은 개별로 작성·관리하지 않고 '짐고'를 통해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것만으로 상당한 효율 개선이 이뤄진다는 게 고객들의 평가라고 한다. 어느덧 창업 9년차를 맞은 트레드링스는 현재 시리즈B 단계로 누적 투자액은 118억원에 이른다.
재미있는 점은 물류시장이 '너무 낡아서', 초기에 업무를 편하게 만들어주는 트레드링스의 솔루션에 거부감이 강했다는 것이다. 박 대표는 "주먹구구식 업무 방식에 담당자는 지쳐가는데, 관리자 쪽에선 사람이 하는 업무는 비용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관점이 있었다"고 했다. 오히려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에 대한 요구가 들어와서 난처하기도 했다는 설명이다. "'해외 물류 파업을 사전에 알 수 있냐', 혹은 '갑자기 항구가 폐쇄되면 이걸 해결해줄 수 있냐'는 등의 요구사항이 많이 들어왔습니다. 정부당국이나 돼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인데 말입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물류업계의 리스크 인식이 높아졌고 이는 트레드링스의 성장으로 이어졌다. 중국 항만에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해 물류가 일시에 꽁꽁 묶이거나, 미국에서 물류 대란이 일어나며 몇 주가 지나도록 입항도 못하는 등의 사건이 빈발했다. 그는 "사람의 힘으로 수시로 닥쳐오는 모든 불확실성에 대처할 수는 없다"며 "적은 인력으로 이러한 불확실성에 대처하려면 디지털 기술이 동반돼야 하는데, 이런 점에서 쉽고와 짐고 이용을 문의하는 발길이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트레드링스는 현재 화주와 선사, 포워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클라이언트를 보유하고 있다. 삼성전자 로지텍과 LX판토스와 같은 포워더부터 LG화학과 위메프, 현대와 같은 화주사들까지 다수 대기업이 트레드링스의 고객사다. 앞으로는 상대적으로 여건이 열악한 중소기업들로 영향력을 넓혀나가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박 대표는 "물류업계에는 디지털 전환이 불가능할 정도로 영세한 업체가 굉장히 많다"며 "우리 목표는 사람을 추가로 채용하거나 설비를 마련하지 않아도 영세 물류업체가 완벽하게 디지털 전환에 성공할 수 있는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상현기자
hyun@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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