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편전쟁, 펜타닐, 그리고 샌프란시스코[베이징노트]
관계 악화로 중국 대응 미온적…'신아편 전쟁', '아편전쟁 복수' 비판도
미중 정상회담 열리는 샌프란시스코, 펜타닐 중독자로 '좀비랜드' 오명
중국 이민자 '아메리칸 드림'의 도시, 이번 정상회담 통해 옛 명성 되찾길
19세기 중국은 영국을 비롯한 서양열강들에게 '동양의 잠자는 사자'로 통했다. 광활한 영토와 풍부한 자원, 엄청난 인구를 보유한 중국은 서양열강들에게 건드려서는 안되는 은둔의 강자였다.
하지만 이같은 중국의 신비한 이미지는 아편전쟁을 계기로 산산이 무너졌다. 당시 영국은 중국에 면화와 모직물 등을 수출하고, 홍차와 비단, 도자기 등을 수입했다.
하지만 자급자족이 가능했던 중국에서 영국산 제품들은 큰 인기를 얻지 못했고, 반면 중국산 홍차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무역적자가 심해지자 영국은 의료용으로 쓰이던 아편을 밀반입하기 시작했다.
중국으로 유입된 아편이 수많은 중독자를 양산하며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자 중국은 아편을 몰수해 불태웠고, 영국은 이를 빌미로 1840년 중국과 전쟁을 벌이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아편전쟁이다.
전쟁이 영국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나면서 중국은 은둔의 강자가 아닌 종이 호랑이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이후 100여년간 중국은 영국 뿐만 아니라 프랑스와 미국, 러시아, 일본 등 열강의 놀이터로 전락하게 된다.
당시 미국 상인들 역시 중국으로의 아편 밀수에 적극 나섰는데 미국인이 세운 기창양행 등의 무역회사는 아편 밀수로 떼돈을 벌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의 외조부인 워런 델라노 주니어도 그 가운데 한명이었다. 미국과 중국이 맺은 불평등조약인 '왕샤조약'도 이즈음 체결됐다.
하지만 그로부터 2세기 가까이 지난 현재, 상황은 완전히 역전됐다. 중국에 마약을 들여와 막대한 이익을 챙겼던 미국은 지금 중국산으로 의심되는 원료로 만든 신종 마약 '펜타닐'로 신음하고 있다.
말기암 환자용 진통제로 개발된 펜타닐은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빠르게 확산됐고, 강력한 중독성 때문에 중독자를 걸어다니는 시체로 만든다고 해 '좀비 마약'으로 불린다.
특히, 쌀알 두개 분량의 복용 만으로도 사망에 이를 수 있어 연간 7만명이 넘는 미국인이 펜타닐 과다 복용으로 숨지고 있다. 교통 사고, 총기 사건, 자살, 암 사망자 수를 뛰어넘는 사망 원인 1위다.
미국에서 유통되고 있는 펜타닐은 주로 멕시코를 거쳐 불법 유입되고 있으며, 펜타닐 원료의 주 공급원이 중국이라고 미국은 의심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 법무부는 중국 화학업체 4곳과 이 회사 임원 등 중국인 8명을 미국과 멕시코에 펜타닐 원료를 불법 수출한 혐의로 기소하기도 했다.
현재 미국과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은 펜타닐 원료 공급 문제에 대해 미온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누가 타인을 칼로 찔러 죽였다면 원료인 철 생산이 불법인가"라는게 대표적인 중국의 대응 논리다.
이처럼 과거와 완전히 뒤바뀐 양국의 상황으로 인해 "21세기 신(新) 아편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중국이 2세기 만에 아편전쟁의 복수를 하고 있다"는 비판까지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5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정상회담을 연다. 회담 테이블에는 당연히 펜타닐 문제도 우선순위 의제로 올라와 있다.
주요 외신들은 양국 정상이 이번 정상회담에서 중국이 펜타닐과 그 원료 물질 유통을 막기 위해 화학 업체들을 추적한다는 내용에 합의할 것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실제로 합의가 이뤄진다면 미국 펜타닐 문제 해결의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를 두고 블룸버그는 "내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유권자들의 최대 관심사 가운데 하나인 펜타닐 문제에 있어 백악관의 승리가 될 것"이라고 평가할 정도다.
안타까운 사실은 정상회담이 열리는 샌프란시스코는 한때 미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불렸지만 지금은 펜타닐 등 마약 중독 문제로 쇠락을 길을 걷고 있는 대표적인 도시가 됐다는 점이다.
거리에는 약에 취해 마치 좀비처럼 걸어다니는 중독자로 넘쳐나며 '좀비랜드'라는 악명을 얻은 것은 물론, 그에 파생된 절도 등 범죄가 끊이지 않아 사람과 기업들이 하나둘씩 샌프란시스코를 떠나고 있다.
사실 샌프란시스코는 중국인들에게 '아메리칸 드림'의 역사가 깃든 곳이다. 1850년대 골드러시, 즉 캘리포니아에서 금광이 발견되면서 미국에서 가장 먼저 중국인들의 이주가 시작됐다. 샌프란시스코의 중국명이 '旧金山'(오래된 금광이 있는 산)인 것도 이 때문이다.
이후 동부에서 서부를 잇는 대륙횡단철도 건설이 시작되며 더 많은 중국인들이 샌프란시스코로 몰려들었고 현재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은 전세계에 퍼져있는 차이나타운 가운데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1985년 생전 처음으로 미국땅을 밟은 시 주석도 2세기 전 선조들 처럼 샌프란시스코를 가장 먼저 찾았다. 그가 관광 명소 '금문교'를 배경으로 찍은 기념사진은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중국 관영매체를 통해 공개됐다.
비록 경제.외교.안보 등 각종 현안을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은 냉전시대 못지 않은 대립구도를 형성하고 있지만, 펜타닐 처럼 사람의 목숨이 걸린 문제에 대해서는 양국이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찾아내야 한다.
2세기전 중국인들에게 기회의 땅이자, 38년 전 청년 시진핑이 보았던 아름다운 도시 샌프란시스코가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다시 돌아오길 기대해 본다.
- 이메일 :jebo@cbs.co.kr
- 카카오톡 :@노컷뉴스
- 사이트 :https://url.kr/b71afn
베이징=CBS노컷뉴스 임진수 특파원 jslim@cbs.co.kr
▶ 기자와 카톡 채팅하기▶ 노컷뉴스 영상 구독하기
Copyright © 노컷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불륜 관련 허위사실 유포' 박지윤 아나운서 유튜버 등 5명 고소
- 백악관 끄덕이자 이스라엘 탱크 가자병원 '돌격'
- '80대 건물주 살해' 주차관리인 구속…모텔 사장은 기각
- 갓 태어난 신생아에 주스 먹인 엄마 "너무 울어서…사레 걸려 죽더라"
- "세차해도 냄새가"…아파트 주차장 '분뇨테러' 전말
- "윤석열 대통령-기시다 총리, 16일 미국서 정상회담"
- 언론장악 점령군인가? 언론개혁 선봉장인가?[권영철의 Why뉴스]
- 아편전쟁, 펜타닐, 그리고 샌프란시스코[베이징노트]
- '수원~서울' 광역버스 경진여객 파업…수능일은 정상운행
- 수능 D-1, 긴장 반 설렘 반 수험생들 "응답하라 정답들아"(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