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잡힐 듯 생생해"…가상 현실에 찾아온 K팝 걸그룹 [긱스]
'에스파' 콘서트 공연 VR로 구현
가상 아이돌 오프라인 무대 올라
K팝 시장 현실·가상 경계 흐려져
AI로 방송인 덱스와 가상 대화
개별 아티스트 IP로 사업화 나서
"기술 발달로 셀럽 IP 가치 커질 것"
SM엔터테인먼트 소속 K팝 아이돌그룹 에스파의 율동을 바로 눈앞에서 본다. 공연장은 아니다. 티켓 가격이 수십만원인 콘서트장 맨 앞자리보다 더 가까운 곳에서 공연을 즐긴다. 서울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상영 중인 ‘링팝: 더 퍼스트 VR(가상현실) 콘서트 에스파’를 통해서다. VR 기기에서 에스파 멤버 카리나가 내미는 손이 내 얼굴에 닿을 듯 생생하다. 이 콘텐츠는 스타트업 어메이즈VR이 SM엔터와 손잡고 제작했다.
현실·가상 경계 흐려지는 K팝 공연
VR, 인공지능(AI) 등 첨단 정보기술(IT)이 국내 엔터테인먼트산업을 혁신하고 있다. 엔터테인먼트 아티스트가 일종의 지식재산권(IP)으로 활용되는 추세다. IT가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지우면서 엔터테인먼트산업의 범위가 크게 확장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국내 스타트업이 이런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어메이즈VR은 SM엔터 자회사인 스튜디오리얼라이브와 에스파의 VR 콘서트를 지난달 메가박스에서 개봉했다. 관객은 극장에서 메타의 최신 VR 기기인 퀘스트3로 VR 영상을 보면서 극장 스피커로 노래를 즐길 수 있다. 퀘스트3의 혼합현실(MR) 기능을 활용해 가상 응원봉을 흔드는 것도 가능하다. 관람객의 관람 평균 평점은 10점 만점에 9.8점에 달한다.
이승준 어메이즈VR 대표는 “극장에 K팝 아티스트 VR 전용관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다른 VR 스타트업 벤타브이알도 최근 오마이걸과 가수 이채연의 VR콘서트 ‘걸스 인 원더랜드’를 CGV에서 상영했다.
유명인 IP를 음성으로 활용한 서비스도 나왔다. AI 스타트업 배리어브레이커스는 지난 9월 생성형 AI 기술을 활용한 음성 채팅 서비스인 민트톡을 출시했다. 우선 인기 방송인 덱스와 가상 대화를 할 수 있는 콘텐츠를 내놨다. 배리어브레이커스가 개발한 AI 거대언어모델(LLM)이 덱스의 음성과 말하는 방식, 덱스 관련 정보 등을 학습해 덱스를 소리로 재현했다. 민트톡은 출시 첫날 한국 일본 미국 대만 브라질 등 50여 개국에서 1만여 명이 이용했다. 김정근 배리어브레이커스 대표는 “덱스가 출연한 TV 프로그램, 유튜브 등의 내용을 계속 업데이트하고 있다”며 “다른 아티스트의 IP도 추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팬덤 커지는 버추얼 아이돌
IP 자체가 가상인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도 인기를 끌고 있다. 버추얼 아이돌이 대표적이다. 모션캡처 등 첨단 그래픽 기술과 AI로 만들었다. 버추얼 IP 스타트업 블래스트가 제작한 버추얼 보이그룹 플레이브는 지난 3월 첫 번째 싱글 앨범 아스테룸을 발매하고 데뷔했다. 게임 개발 엔진 기술을 활용해 실시간으로 애니메이션 수준의 라이브 공연이 가능하다. 올 9월 플레이브가 등장한 서울월드컵경기장의 ‘아이돌 라디오 라이브 인 서울’ 공연에 2만여 명이 몰렸다.
같은 날 인천 달빛축제공원에서 열린 ‘이세계 페스티벌’에선 버추얼 걸그룹 이세계아이돌이 첫 오프라인 콘서트를 열었다. 입장권 1만 장이 예매 시작 8분 만에 매진됐다. 버추얼휴먼 스타트업 펄스나인이 제작한 가상 아이돌 이터니티도 8월 경기 광명시 아이벡스스튜디오에서 첫 단독 공연을 열었다.
버추얼휴먼 엔터테인먼트 기업 메타버스엔터테인먼트는 AI를 활용해 버추얼 아이돌을 고도화하고 있다. AI 스타트업 업스테이지와 일명 ‘페르소나 AI’를 개발 중이다. 페르소나 AI는 특정 아티스트의 캐릭터와 정체성을 학습해 팬과 아티스트가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것과 같은 경험을 제공하는 AI 기술이다. 메타버스엔터테인먼트는 버추얼 아이돌그룹 메이브에 페르소나 AI를 적용할 계획이다. 메이브는 팬의 질문에 기계적인 답변이 아니라 과거 대화 내용을 기억하고 각 멤버의 정체성과 말투로 1 대 1 맞춤형 대화를 하게 된다. 김성훈 업스테이지 대표는 “버추얼 아이돌과 대화할 수 있는 페르소나 AI를 업계 최초로 구현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목받는 IP 엔터테인먼트 시장
이런 IP 엔터테인먼트 상품이 최근 잇달아 나오는 건 여러 이유에서다. 우선 VR, AI의 기술 수준이 높아져 관련 제품을 시장에서 판매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승준 어메이즈VR 대표는 “이제 VR 콘서트를 돈 받고 판매할 정도가 됐다”고 말했다. 아티스트나 아티스트를 보유한 엔터테인먼트사도 새로운 먹거리가 필요하다. 업계 관계자는 “아무리 인기가 많은 아티스트도 몸이 하나이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덜한 상품 개발에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메타는 셀럽 AI 챗봇에 IP를 제공한 유명인에게 2년간 500만달러(약 66억원)를 제공할 것으로 알려졌다.
버추얼 아이돌은 일종의 캐릭터 사업으로 볼 수 있다. IP 확장이 쉽다는 게 장점이다. 웹툰, 게임 등 팬덤을 활용한 각종 IP사업에 캐릭터를 적용할 수 있다. 열애설 등 사생활 문제에서 자유롭고 멤버들의 외모 관리 필요성이 없는 것도 스타트업이 앞다퉈 버추얼 아이돌 사업에 뛰어드는 이유다.
AI 기반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크게 성장할 전망이다. 시장조사업체 리서치&마케츠는 관련 글로벌 시장 규모가 지난해 107억4000만달러(약 14조2788억원)에서 2027년 348억6000만달러(약 46조3463억원)로 커질 것으로 예상했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AI가 존 레넌의 1970년대 목소리를 학습하고 해당 음원으로 비틀스 신곡을 내놨는데 54년 만에 영국 음악 순위에서 1위에 올랐다”며 “첨단 기술 발달로 유명인의 IP 가치는 더 커지고 관련 시장은 예상보다 크게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주완/고은이 기자 kjw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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