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스팜은 어떻게 인권 중심 공급망 ESG 구축을 지원하는가
유럽 공급망 실사 규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다. 이에 인권 존중 원칙을 자사의 방침에 완전히 통합하거나 별도의 인권 정책을 채택하고 기존 정책과 협력 회사 표준에 '유엔 기업과 인권에 관한 이행 원칙(UN Guiding Principles on Business and Human Rights : UNGPs)' 등을 반영한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 인권을 중심으로 한 유럽의 규제 방향은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최근 지속가능성 보고 표준을 제정하고 보급하는 GRI는 2021년 개정판 표준을 통해 지속가능 경영 및 ESG 성과 공시에서 기업이 사업장과 공급망에서의 영향을 포괄적으로 파악하고 그 영향의 심각도에 따라 보고의 중요 주제를 결정하는 접근 방식을 별도 표준으로 만들며 구체화 한 바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실사(Due Diligence)를 통한 부정적 영향의 파악을 매우 강조하고 있다.
유럽의 공급망 실사 규제화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2022년 '고위험 분야의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인권 침해를 방지'하고 '글로벌 공급망의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을 식별'하기 위한 '기업 지속가능성 실사를 위한 지침(Directive on Corporate Sustainability Due Diligence : CSDD)'을 법사위 통과시켰다.
이 지침은 유럽 기업의 글로벌 공급망에서 강제 노동, 아동 노동, 불안전한 보건 안전의 이슈와 온실가스 배출, 오염, 생물 다양성과 생태계 파괴 같은 환경 위반이 일어나지는 않는지 점검할 의무를 요구한다. 지침이 규제화되면 1만 3000여 개 EU 기업과 역외 27개 국가의 4000여 개 기업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무역협회 산하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의 '2023년 주목해야 할 EU 주요 환경 규제와 대응 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CSDD는 국내에 가장 큰 부담이 될 규제 중 하나이며 110여 곳에 달하는 국내 중소기업이 영향을 받는다.
유럽을 비롯한 글로벌 고객사의 공급망에 속한 한국 기업들에게 인권 리스크 관리를 포함하는 기업 지속가능성 실사 관련 규제는 첨예한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더 나아가 국제 엠네스티 등의 국제 인권 단체들은 해당 법안과 국제 인권 표준 사이에 격차가 있다며 더 강력한 법안으로 개정하라고 요구하고 있어 관련 규제화 동향은 지속적으로 강화될 전망이다.
이에 최근 한국을 방문한 클레어 리사만 영국 옥스팜 비즈니스 자문 서비스(Oxfam Business Advisory Services : OBAS) 책임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유럽의 관련 규제화 동향과 방향성에 대해 짚어 보고 공급망 실사, 그중에서도 인권 분야의 공급망 실사 요구 강화 추세에서 한국 기업의 선제적 대응 방향에 대한 조언을 얻어 보았다.
클레어 리사만 옥스팜 비즈니스 자문 서비스(OBAS) 책임자 인터뷰
옥스팜 비즈니스 자문 서비스(OBAS)는 글로벌 공급망에서 기업이 자사의 영향을 개선하는 것을 돕기 위해 인권 문제에 대한 실용적 지침과 조언을 제공하고 있다. 클레어 리사만 책임자는 2021년 옥스팜에 합류했으며 이전에는 20여 년간 윤리적 거래(Ethical Trade), 공정 무역 및 기업 사회 책임 분야를 중심으로 기업 및 비정부 기관에서 활동했다.
윤리적 패션 그룹(Ethical Fashion Group)의 콘텐츠 및 영향 부문 책임자로 근무했으며 패션 산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공동 목표(Common Objective) 플랫폼을 설립하기도 했다. 경력의 초기에는 중국과 홍콩에서 수출 관련 산업 및 자선 단체에서 근무한 바 있다.
- 유럽집행위원회가 최근 기업의 책임 있는 비즈니스 관행을 촉진하기 위해 공급망 실사 관련 법안을 발의하고 법사위를 통과했다는 보도가 있다. 관련 법안의 제정 현황, 목적과 취지에 대해 간략히 소개를 부탁한다
"2023년 6월 유럽 의회는 기업의 사회적, 환경적 영향에 대한 책임을 촉구하기 위해 새로운 EU 법안인 '기업 지속가능 실사 지침(Corporate Sustainability Due Diligence Directive : CSDDD)'에 합의했다.
지침에 따르면 기업은 자사의 활동이 인권과 환경에 미치는 실질적이고 잠재적인 부정 영향을 식별하고 이를 예방하거나 완화하기 위한 의무를 지게 된다. 기업은 자사의 사업장과 자회사 운영뿐 아니라 직간접적인 비즈니스 관계를 맺고 있는 공급사와 협력 회사 등 가치 사슬 내 다른 조직의 활동에 대해서도 사전 조사와 필요한 경우 개선 조치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바로 가기 : '기업 지속가능 실사 지침(Corporate Sustainability Due Diligence Directive : CSDDD)'에 대한 옥스팜의 보도 자료)
- EU에서는 CSDDD 이전에도 이미 프랑스와 네덜란드를 시작으로 독일과 노르웨이까지 실사 의무화법을 통과시켰다. 특히 독일의 실사 의무화법은 법안이 구체적이고 규제가 강력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영국에서의 공급망 실사 의무화법 혹은 유사한 규제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으며 옥스팜은 관련 분야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가.
"유럽의 공급망 실사법과 같은 맥락에서 영국은 2015년 '현대판 노예 방지법(Modern Slavery Act)'을 제정, 연 매출 3600만 파운드(약 600억 원) 이상 기업들에 대해 자사 사업장 및 공급망에서 발생할 수 있는 현대판 노예제와 인신매매 같은 인권 리스크를 파악하고 각각 '이를 예방하기 위해 어떤 조치를 취했으며 리스크와 관련된 활동이 없다'라는 성명서를 보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법안은 '현대판 노예'라는 개념에 한정되어 있고 위험과 영향을 해소하기 위한 조치를 강제하지는 않으며 인권 리스크의 발생을 예방하지 못한 경우에도 기업에 책임을 묻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옥스팜은 관련 이슈의 해결에 앞장서고 있는 기업 정의 연합(Corporate Justice Coalition)의 일원으로서 영국 정부에 새로운 법안인 '비즈니스, 인권 및 환경법(Business, Human Rights and Environment Act)'의 도입을 촉구하고 있다. 이는 기업들이 인권 리스크를 예방하기 위해 조치를 취하도록 독려하는 것은 물론 인권 관련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에는 기업에게 책임을 묻자는 내용의 법안이다.
옥스팜은 관련 정치적 활동과 캠페인을 통해 기업들이 인권 의무와 자사의 약속을 준수할 수 있도록 촉구하고 있으며 나아가 기업들과 파트너십을 통해 옥스팜의 캠페인이 집중하고 있는 권고 사항을 기업들이 실천할 수 있도록 관련 지원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비하인드 더 바코드(Behind The Barcodes)' 캠페인에서는 슈퍼마켓 채점표(Supermarket Scorecard)를 활용해 대형 마트들의 공급망 인권 정책과 실행 현황을 평가하고 4년간의 진척도를 측정하기도 했다. 이 캠페인을 통해 옥스팜은 기업들이 인권 관련 약속, 정책과 관행을 개선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도록 독려하는 한편 관련 조치를 위한 구체적 체계도 제시했다.
옥스팜은 막스&스펜서와 유니레버 같은 글로벌 기업들과도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그들이 자사의 인권 영향을 파악하도록 도왔다. 옥스팜 비즈니스 자문 서비스(OBAS)를 통해 축적된 경험, 전문성과 글로벌 네트워크를 기업이 보다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제공했다.
주요 서비스로는 전략 및 정책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견지하는 자문 서비스(Critical Friends), 고충 처리 메커니즘 또는 성 평등 개선 실무 가이드 및 지침 개발, 인권 영향 평가 및 생활 임금 현장 실무 접근 등을 들 수 있다."
- 저는 나이키 공인 제3자 심사원(Approved Third Party Auditor)으로서 다년간 공급망 실사를 진행했고, 최근에는 노르웨이 에너지 기업의 국내 협력사 선정을 위한 실사 준비에도 참여했다. 이 과정에서 나이키는 자사의 협력 회사 행동 강령(Code of Conduct)을 활용하고 북유럽 선주 회사들은 윤리적 무역 활동 지침(The ETI Base Code) 등의 표준을 실사에 활용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렇듯 현재 공급망 실사에 활용되는 표준과 기준이 다양한데 향후 CSDDD가 발효되면 이러한 표준이나 기업 자체의 공급망 관리 표준에는 어떤 영향이 있을지 궁금하다.
"인권 실사 접근 방식은 개념적으로나 목표와 범위에서나 기업이 활용하는 사회적 감사(Social Audit)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옥스팜과 이 분야의 전문 조직, 리서치 기관들은 기업의 행동 강령과 표준 등을 기반으로 하는 현재의 접근이 우리가 목표로 하는 긍정적인 사회 영향을 달성하는 데는 미흡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회적 감사와 컴플라이언스 기반의 접근에 대해 오랜 기간 비판적 관점을 견지하고 있다. CSDDD 같은 법률이 인권 위험을 관리하기 위한 기업의 감사 의존성을 줄일 수 있을 정도로 효과적일지도 좀 더 두고 보아야 알 수 있다.
다만 국제 공정 무역 기구(Fairtrade) 같은 일부 표준 관련 기관들은 이미 보다 폭넓은 인권 심사의 개념을 표준에 담아내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 지속가능 발전을 저해하는 방식의 기업 운영과 비즈니스 관계에서의 부정적 영향을 파악하고 그 중요도를 결정해 지속가능성과 ESG 성과를 관리, 보고하는 일련의 활동에서 기업의 실사가 핵심적 활동 중 하나다. 이러한 관점에서 CSDDD와 EU 기업 지속가능성 보고 지침(Corporate Sustainability Reporting Directive : CSRD)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관련해 우리 기업 대응에 도움이 될 수 있는 팁이 있다면 알려 주길 바란다.
"CSDDD에서 규정하는 바와 같이 인권 실사는 수행한 실사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지속가능성 및 ESG 정보 공시를 요구하는 유럽 규제인 CSRD 역시 기업이 지속가능성에 미치는 영향과 관련한 리스크와 기회에 대한 중요한 성과 정보를 공개하도록 요구한다.
따라서 CSDDD의 인권 실사 결과를 활용해 지속가능성 보고를 위한 기업의 영향과 중요 주제를 식별하고 통합 관리하면 자연스럽게 CSRD를 준수하는 보고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기업이 인권 관련 정책을 수립하고 리스크를 평가하며 위험을 예방, 완화 및 해결한 과정과 결과를 의사소통하는 과정, 즉 인권 실사의 전 사이클을 관리 체계로 실행하고 있다면 CSDDD
와 CSRD 규제를 준수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리스크 관리 넘어 인권에 대한 포괄적 경영 접근 필요
나이키는 과거 아동 노동 스캔들 이후 글로벌 패션 산업 공급망의 환경과 인권 문제 개선 논의와 관리를 위해 다양하게 노력해 왔다. 그러나 최근 캄보디아의 나이키 협력 회사 라마텍스 소유의 바이올렛 어패럴 공장 폐쇄 문제 등으로 노동 인권 이슈에 대한 관리를 더욱 강화할 것을 요구하는 이해관계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이러한 글로벌 공급망의 재무 안정성 문제는 비단 한 회사나 그 협력사만의 이슈가 아니게 되었다. 문제의 근본 원인은 어디에 있으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과거와 다른 어떤 접근이 필요할까.
옥스팜은 "기업이 인권에 대한 최고 경영진과 이사회 수준에서의 약속을 천명하고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위험을 파악하고 보여주며' 자사 공급망에서의 조치는 물론 다른 조직들과 협업, 정부와의 협력적 거버넌스 추진을 통해 공급망 관리의 수준을 뛰어넘는 포괄적 경영 접근을 도입할 것을 기대한다"라고 말하며 리스크의 변화 여부와 관계없는 기업에 대한 일관된 기대를 밝혔다.
* 위 칼럼은 최고 경영자를 위한 경영정보 지식 충전소 <CHIEF EXECUTIVE> 10월호에 실렸습니다.
[전민구 리브릿지 대표(rebridge202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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