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상민의 사진지문] 자이로스윙
# 아내랑 제가 처녀 총각이라 불리던 시절, 롯데월드를 함께 갔습니다. 스릴을 즐기는 저와 그렇지 않은 아내. 저는 아내와 꼭 자이로스윙을 타고 싶었습니다. 솔직한 마음으론 아내를 꼭 태워보고 싶었습니다. 어떤 반응일지 궁금했기 때문이죠.
# 배려심이라곤 1도 없는 구 남친인 남편. 안 탄다는 구 여친 아내를 조르고 졸라 자이로스윙에 함께 탔습니다. 불안해하는 아내에게 웃으며 이런 식의 농담을 던졌던 것 같습니다. "괜찮아. 안 죽어!" 다시 생각해 봐도 나란 녀석, 정말 한심한 놈이었네요.
# 아내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이로스윙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그네처럼 좌우로 움직이며 큰 폭으로 상승과 낙하를 반복합니다. 몸은 순간순간 무중력 상태가 됩니다. 동시에 타고 있는 의자는 가운데를 축으로 뱅글뱅글 돕니다. 바이킹과 뺑뺑이가 합쳐졌습니다. 한마디로 정신을 쏙 빼놓는 놀이기구입니다.
# 아내는 두려워서 꽥꽥 비명을 질러대고 저는 신나서 빽빽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탑승을 마친 아내는 덜덜 손을 떨면서 한마디 하더군요. "살아있는 동안 다시는 안 탈 거야!" 그 말이 예언이 된 걸까요? 거짓말처럼 십수년 지난 오늘까지 자이로스윙을 한 번도 타본 적이 없습니다. 고백하자면 이젠 저도 무서워서 못 탈 것 같습니다.
# 나무 사이로 우뚝 솟아 있는 조명탑입니다. 기억 속으로 사라졌던 그때 그 놀이기구를 해 질 무렵 신촌역에서 만났습니다. 똑바로 찍다가 대각선으로 바라보니 영락없는 자이로스윙 모습입니다. 가끔은 세상을 이렇게 삐딱하게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인 듯합니다. 오랜만에 사진을 보며 아내와 그날의 추억을 이야기해 봐야겠습니다. 다시 생각해 보니 이야기를 안 꺼내는 편이 좋을지도 모르겠네요. 손을 덜덜 떨테니까요.
사진·글=오상민 천막사진관 사진작가
studiotent@naver.com
Copyright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