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인접한 삼각형 땅에···이정표처럼 스며든 작은집 [건축과 도시]
가용면적 62㎡ 모서리진 자투리땅 위에
층층이 부엌·거실·침실 유기적 배치
오픈구조 설계로 공간 효율성 극대화
외부는 파주석 쌓아 주변경관과 조화
도심과 무등산 자락 자연스럽게 연결
‘건축은 삶을 바꿀 수 있다.’ 임태형 건축사사무소 플랜 대표의 오랜 믿음이다. 크고 웅장한 랜드마크도 멋있지만 매일 거주하는 집이나 회사, 생활 가운데 마주치는 평범한 건축물의 소박한 존재감이 때론 사람들에게 영감을 준다. 무등산 국립공원과 활기찬 광주 도심 사이에 지어진 작은 지산돌집은 그의 바람을 온전히 담아낸 집이다.
2023년 한국건축문화대상 주택 부문 본상(국무총리상)을 받은 지산돌집은 이제 막 새로운 가정을 꾸린 젊은 건축주 부부로부터 시작됐다. 현재 지산돌집이 들어선 대지는 당시 뚜렷한 주거 환경도 아니고 본격적으로 활성화된 상업가로도 아니었다. 형태도 삼각형인 데다 도로가 정비되는 과정에서 땅 일부가 도로로 편입돼 설계 가용 면적도 62.72㎡에 불과했다.
협소하고 반듯하지 않은 모양의 땅이었기에 저렴한 가격으로 젊은 부부가 사들일 수 있었다. 부부는 건물 외관에 석재를 사용하는 것부터 집의 소재나 공간에 대한 느낌 등 구체적인 기호들을 임 대표에게 제시했다. 임 대표는 건축주가 누리고자 하는 삶에 대한 다양한 밑그림들에 건축가의 상상력을 더해 보다 깊이 있는 공간으로 구체화했다. 지산돌집의 입지는 도시의 가장자리, 그 경계에 위치한 하나의 작은 점에 불과했지만 다양한 해석을 통해 거주의 안락함과 풍부한 공간 경험을 두루 이끌어 낼 수 있었다.
임 대표는 먼저 단단한 파주석으로 건물 저층 외관을 둘러쌓아 마치 원래부터 풍경의 일부인 양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했다. ‘자연으로 들어가는 입구’, 광주 도심이 끝나고 여기서부터 무등산 자락이 시작된다는 일종의 이정표처럼 보이기도 한다. 낮게 낸 창문은 모퉁이를 돌아서는 보행자들이 서로를 인식하게 하려는 작은 배려다. 보행 구간은 콘크리트 폴리싱으로 마감해 보행자들이 별도 담장 없이도 집의 경계를 인식할 수 있게 한다.
현관 문을 열면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한 집 내부가 한눈에 들어온다. 외관에 거칠게 붙은 자연석의 미감이 이어져 자연스러운 느낌을 준다. 가구도 진한 색의 목재 소재로 제작해 외부의 자연이 실내까지 이어진 듯한 분위기를 구현했다. 1층은 요식업을 하는 남편의 아지트인 작은 부엌이다. 핀 조명이 비추는 중앙 수전은 임 대표가 지산돌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다. 마치 경건한 종교 의식을 치르기 전 과정 같기도 하고 이제부터 다른 세계가 펼쳐질 것이라는 기대를 주기도 한다. 2층에는 메인 부엌과 다이닝룸, 거실과 실내 중정을 조성해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3층에는 침실만 배치해 프라이버시를 확보했다. 계단은 1층에서 4층을 연결해 옥상과 취미 공간을 선택적으로 개방할 수 있다.
임 대표는 협소한 대지의 약점을 최소화하기 위해 느슨한 경계를 추구했다. 가용 면적이 절대적으로 작고 땅 모양이 삼각형이라 버려지는 공간이 많은 만큼 좁은 공간을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복도와 세면·세탁 공간 등은 모두 계단으로부터 바로 이어지는 오픈 구조로 설계하고 거실과 내부 정원 사이는 벽 대신 개폐되는 유리문을 설치했다. 다소 답답할 수 있는 좁은 공간은 층고를 높여 해결했다. 이와 함께 계단을 반 층씩 올라가면 공간이 펼쳐지는 스킵 플로어(skip floor) 구조다.
사계절 정취가 아름다운 무등산이 인근에 있다는 점도 고려했다. 세상 모든 것이 그렇듯이 집도 도시적 ‘맥락’ 속에서 구현돼야 한다는 게 임 대표의 철학이다. 아무리 멋지고 웅장한 건축물이라도 주변 경관이나 이미 들어선 다른 건물들과 어울리지 않으면 어색한 풍경이 된다. 맥락상 ‘자연으로의 이정표’를 표방한 지산돌집은 집안 어느 곳에 있어도 자연과 연결되는 감각을 느낄 수 있다. 아래층은 프라이버시 확보에 주력하고 3층 이후로는 창과 옥상을 활용해 은행나무 가로수 풍경과 무등산 원경을 끌어들였다. 현관을 들어서면 동굴 속에 들어온 것처럼 고적하다가 계단을 올라가면서 점점 자연에 몰입되고 옥상 캐노피에 다달아 하늘과 산을 바라보며 자연과 연결되는 일상을 의도했다.
건축주 부부는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짜여진 공간을 누리며 하루하루를 ‘스테이(감성 가득한 숙소)’에 머무르듯 살고 있다고 했다. 지산돌집이 준공된 해 태어난 아들과 함께 햇빛이 쏟아지는 거실에서 여유를 부리고 옥상에서 자연을 만끽한다. 지인들과 어울려 부엌에서 요리를 하는 취미 생활도 마음껏 누리고 있다. 이들 가족의 생활과 취향에 완벽하게 맞춘 집인 만큼 일상의 만족도가 높아졌다고 전했다.
임 대표는 지산돌집이 집에 대한 생각과 실행력을 평가받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고 회고한다. 점차 살기 좋은 집보다 팔기 좋은 집이 많아지는 시대를 살면서 주거의 본질적 가치가 시류에 민감한 가벼운 속성으로 변모해가고 있다는 고민에서다.
지산돌집이 계기가 돼 정형화된 아파트 대신 자신만의 열정과 영감을 담은 보금자리를 꿈꾸는 사람들이 늘길 바란다고 임 대표는 말했다. 건축을 통해 인생이 바뀔 수도 있고,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가까이 있다는 것을 알아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그가 그저 사람들에게 친숙하게 느껴지는 ‘동네 건축가’로 불리길 원하는 이유다.
김민경 기자 mkkim@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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