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아기 판다 푸바오에게 주는 작은 할아버지의 선물

용인/구아모 기자 2023. 11. 15.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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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경기 용인 에버랜드에서 만난 송영관 사육사가 세 살 자이언트판다 푸바오 앞에서 웃고 있다. 송 사육사는 "푸바오는 아주 높은 자존감과 엄마와 아빠에게 물려받은 탁월한 유전적 능력을 가지고 있으니 중국에 가서도 잘 지낼 것이라 믿는다"고 했다. /이태경 기자
누군가 8월의 댓잎 새순을 하나하나 모아서 너의 입에 넣어준다는 건 너를 아주 많이 사랑한다는 거야. 너를 아주 많이 응원한다는 거야. 너의 엄마는 그렇게 힘을 내서 세상에서 가장 큰 행복을 찾았단다. 지치고 힘들 땐 너를 사랑하고 응원하는 가족들이 있다는 걸 꼭 기억하렴.
전지적 푸바오 시점 본문 중

자이언트판다 푸바오의 삶을 담은 책 ‘전지적 푸바오 시점’이 15일 출간됐다. 이 책은 푸바오의 ‘큰할아버지’라고 불리는 강철원(54)씨와 함께 푸바오를 기르는 ‘작은할아버지’ 사육사 송영관(44)씨가 푸바오 시점에 ‘빙의’해 글을 썼다.

송씨가 판다와 관련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2020년 국내 최초 자연 임신으로 푸바오가 태어나면서다. 송씨는 본인의 소셜미디어와 온라인 카페 ‘주토피아’ 등에 판다와의 일상을 글로 남겨왔다. 송씨는 판다를 누구보다 가까이 지켜보고, 판다와의 일상을 더 잘 기록하고 싶은 욕심에 2022년 문예창작과까지 진학해 글쓰기를 공부하고 있다.

책엔 20년 차 사육사인 송씨가 동물들을 돌보며 느낀 사육사로서 고민, 동물원의 역할에 대한 고민도 담겼다. 출간을 앞둔 지난 6일 경기 용인 에버랜드 판다월드에서 송씨를 만났다.

대나무로 각종 장난감 만들어내는 ‘금 손’

송영관 사육사가 직접 만든 대나무 안경./에버랜드

-대나무로 만든 칫솔·안경·기타·우산 등등 창의적인 장난감을 만드는 것으로 판다 팬들 사이에서 유명합니다.

“글도 그렇고 장난감 아이디어도 그렇고, 일상에서 생활하다 보면 느끼고 생각나는 것들을 바탕으로 만들게 되는 것 같습니다. 사육사들은 내가 돌보는 동물들이 지금 뭘 하고 있을 지, 행동 패턴을 항상 생각하게 됩니다. 일상에서 보이는 물건들과 제가 돌보는 동물을 연관 짓는 식으로 만들게 됩니다. 예를 들어 칫솔질을 하다가 문득 대나무로 칫솔을 만들어 볼 수도 있겠다 이런 식이지요.”

-다른 장난감들은 어떻게 아이디어를 얻었나요.

“대나무 안경 같은 경우는, 판다들이 시력이 안 좋은 편입니다. 엉뚱한 상상이기도 한데, 내가 안경을 만들어줘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나무 기타 같은 경우는 제가 기타를 배워보고 싶었는데, 불현듯 세상에 기타를 치는 판다가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발휘해서 만들어 보게 됐습니다.”

-만드는 데 어렵지는 않나요?

“어렵지 않아요. 그리고 즐겁고 재밌게해서 어렵다는 생각은 하나도 안드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이런 장난감들이 동물의 ‘행동 풍부화’를 해주는 역할도 합니다. 새로운 장난감을 주면 호기심이 자극이 되고, 활동성도 높아지고 평소에 보이지 않는 상황판단 능력을 개발할 수 있어서 꼭 해줘야하는 면도 있습니다. 그래서 힘들다기 보단 즐겁습니다”

늦깎이 문예창작학도

송영관 사육사가 자이언트판다 푸바오를 등에 업은 모습./에버랜드

-판다와의 일상을 기록하려고 문예창작학과까지 진학했습니다.

“영장류와 유인원 등을 주로 담당할 때부터 글을 적고 모아왔습니다. 판다를 가까이 지켜보면서 동심이 있고, 판다만의 순수한 매력들이 있다고해야할까요? (웃음) 가까이 있는 사육사만 볼 수 있는 것들이 있는데 그것을 글로 재미있고 유쾌하게 더 잘 전달하고 싶은 마음에 공부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책까지 내게 됐는데요.

“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책을 내는 것에 대한 동경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책이 나오니 설렙니다. 사육사로서 겪은 것들을 언젠가 책으로 꼭 내보고 싶었거든요. 책의 실물을 봐야 실감이 날 것 같습니다.”

-푸바오의 시점에 ‘빙의’해서 쓴 이유는 무엇인가요?

“푸바오가 태어나고부터 차곡차곡 글을 모았는데, 사실 푸바오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별이 예고된 관계잖아요. 이런 이별이 슬프지 않았으면 좋겠고, 그동안의 시간이 슬픔이 아닌 행복으로 남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푸바오와 ‘바오 가족’을 사랑해 주시는 분들에게 선물처럼 줄 수 있길 바라며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꼭 푸바오가 쓴 것 처럼 생동감 있는데요, 어떻게 푸바오 입장에 몰입할 수 있었나요

“푸바오와의 기억들이 저축하듯이 많이 쌓여있어서 가능했던거 같습니다. 푸바오의 실루엣, 체취, 감정 등이 성장하면서 차곡차곡 쌓이니까, 이제 척하면 척 저 친구가 뭘 하는지 읽어낼 수 있으니 푸바오 입장에서 쓸 수 있었습니다.”

-말로는 대화가 통하지 않는 동물의 마음은 어떻게 읽어내는 지도 궁금합니다.

“동물원의 동물들이 야생동물인 것은 분명하니, 반려동물처럼 가까이서 만져보고 시선을 주며 관찰하는 것보다 이 친구들의 본연의 패턴과 행동을 보기 위해서는 한 발짝 거리를 두고 숨어서 보는게 오히려 효과적입니다. 시간을 오래 두면서 관찰해야합니다. 수수께끼를 발견하듯 관찰해보세요. 그러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게 됩니다. 판다를 매일 보러 오시는 분들은 사육사들이 놀랄정도로 관찰하고 저희에게 판다들에 대해 귀띔해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끝까지 행복을 주는 보물이기를”

쌍둥이 판다 루이바오·후이바오가 엄마 아이바오의 품에서 지내는 모습/에버랜드
아이를 돌보는 일은 과거와 현재, 또 미래를 연결해 주는 타임머신 같다고요. 아이바오가 푸바오를 바라보는 눈동자에서 기억과 시공간으로 연결되는 감정이 느껴지죠. 그건 자신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엄마의 마음이었고, 자신의 엄마를 기억하는 아이의 마음이었습니다.
전지적 푸바오 시점 본문 중

-누군가 8월의 댓잎 새순을 하나하나 모아서 너의 입에 넣어준다는 건, 너를 아주 많이 사랑한다는 거야. 너를 아주 많이 응원한다는 거야. 이 부분이 판다 팬들 사이에서 널리 회자 됐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썼나요.

“푸바오가 4살이 되기 전에 자신의 짝을 찾아서 중국으로 돌아갸아 하는데, 그 이후의 짝을 맞고 새끼를 낳는 과정들을 계속 볼 수 없는 아쉬움이 크죠. 동물이든 사람이든 출산의 순간이 쉽지 않은데, 푸바오도 아이바오처럼 짝을 만나고 출산을 하는 그 순간에 도움을 줄 수 없는 상황이 아쉽습니다. 그런 순간에 제가 도움을 주진 못하지만 푸바오의 어미 아이바오처럼 잘 해내길 바라는 마음이 담겼습니다”

-어미 아이바오와 푸바오, 최근 쌍둥이 판다 자매를 기르고 있는데요.

“쌍둥이를 기르며 푸바오의 어릴 적 모습이 많이 생각납니다. 사육사 일을 하면서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어렸을때 부터 기른 동물이 잘 자라고, 또 잘 자라나서 새끼를 낳고 하는 순간인입니. 야생동물의 눈에서는 사람들의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눈빛들이 있어요. 사실 생존에 쫓기는 친구들이고, 그런 와중에 번식을 하는 것은 치열한 과정에서 이뤄진 것인데 초조하고 긴장감도 있는 과정입니다. 그래서인지 동물의 눈에서 형용하기 어려운 눈빛들이 보여요. 그럴 땐 아이바오가 자신의 어린시절, 자신의 어미를 생각하는 것도 같고 그 기억을 가지고 본능으로 아이를 돌보는 느낌이 듭니다.”

-‘야생의 판다가 행복한가요, 동물원의 판다가 행복한가요’ 에 대한 대답을 찾은 거 같다고 책 말미에 쓰기도 했습니다. 계기가 있었나요.

“‘바오 가족’을 통해서 사육사의 일상, 역할과 책임, 동물원이 멸종위기종을 위해서 하는 프로그램들이 좀 더 알려진 것 같습니다. 동물원이 야생동물을 보존하고 보호하고 그런 업무들이 투명하게 공개를 하다보니 공감도 얻고, 이제는 답을 드릴 수 있게 됐습니다.”

-강철원 사육사는 푸바오가 중국에 갈 때를 대비해 중국어도 공부하고 있다고 하는데. 사육사님도 중국어를 공부하고 있나요?

“저는 중국어보다 한국어 공부, 글쓰기를 더 열심히 하는 중입니다.(웃음) 그래도 교양 과목으로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푸바오가 중국에 돌아갔을 때 혼자 찾아갈 정도는 되면 좋지 않을까 해서요.”

‘전지적 푸바오 시점’ 마지막 부분엔 푸바오를 향한 송씨의 마음이 담긴 미공개 편지가 담겼다.

송씨는 “제일 하고 싶은 말을 적기 위해 편지를 5분 안에 빠르게 적어냈습니다. 이별이 예정된 관계이지만, ‘행복을 주는 보물’이라는 이름 뜻처럼, 떠나고 나서도 기억할 행복한 이야기들을 (책에) 많이 실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름처럼 푸바오가 끝까지 여러분들에게 행복을 주는 보물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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