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치곤란’서 새 먹거리로 떠오른 ‘폐플라스틱’…사업 전환에 속도

이진주 기자 2023. 11. 15.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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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자원순환센터에 가득 쌓여있는 플라스틱. 연합뉴스

그동안 환경오염 주범으로 지목됐지만 ‘처치 곤란’해 쌓여가던 폐플라스틱이 미래 먹거리로 떠올랐다. 정유·화학 기업들은 기업 이미지 전환에도 도움되자 폐플라스틱 재활용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탄소중립’이 글로벌 화두가 되면서 플라스틱 관련 정책이 강화되면서다. 유럽연합(EU)은 재활용이 불가능한 플라스틱에 세금을 부과하고, 미국은 일회용 제품 제조 시 재활용 소재 사용 의무를 확대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의 석유 화학물질 부문 자회사인 SK지오센트릭은 국내 최초로 플라스틱 재활용 클러스터를 구축한다고 15일 밝혔다. SK지오센트릭은 이날 울산 남구 SK이노베이션 울산콤플렉스(CLX) 내 21만5000㎡ 부지에서 ‘울산 ARC(Advanced Recycling Cluster)’의 기공식을 개최했다.

1조8000억원이 투입된 울산 ARC는 3대 화학적 재활용 기술인 열분해, 고순도 폴리프로필렌(PP) 추출, 해중합을 한 곳에서 구현하는 복합 재활용단지로 구축된다. 이들 기술을 활용하면 비닐이나 복합재질 플라스틱, 오염된 소재, 유색 페트(PET)병 등 기존에 재활용이 어려웠던 플라스틱도 원료와 동등한 수준으로 재활용할 수 있다. 또 재활용 가능 횟수도 제한되지 않아 플라스틱을 사실상 무한하게 재활용하는 수준에 이를 수 있다고 SK지오센트릭은 설명했다.

상업생산이 본격화되는 2026년부터 매년 폐플라스틱 32만t이 재활용된다. 이는 국내에서 1년간 소각·매립되는 폐플라스틱(350만t)의 약 10% 수준이다.

앞서 SK지오센트릭은 대한석유공사 시절인 1972년 국내 최초의 납사 분해설비(NCC)의 가동을 중단한 바 있다. 나경수 SK지오센트릭 사장은 전날 기자간담회에서 “글로벌 경기에 따른 수익성 변동이 큰 사업에서 벗어나 우리 힘으로 미래를 만드는 새로운 사업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며 “견고한 매출을 내던 공장을 끄는 두려움이 있었지만, 그보다 변화에 대한 확신이 컸기에 내린 결정”이라고 말했다.

LG화학은 지난 8월 삼화페인트와 폐플라스틱 기반의 화학적 재활용 원료 공급에 대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LG화학이 친환경 재활용 페인트 원료를 공급하면 삼화페인트에서 모바일용 코팅재를 만들어 휴대폰 제조사에 공급한다. LG화학은 폐플라스틱의 화학적 재활용 제품을 지속 확대하기 위해 충남 당진에 2만t 규모의 열분해유 공장을 건설 중이다.

롯데케미칼은 지난 9월 리사이클 소재와 바이오플라스틱 소재를 ‘에코시드’ 브랜드로 통합해 론칭했다. 2030년까지 리사이클소재(PCR) 100만t 공급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국내 최대 페트(PET) 생산기지인 울산공장을 34만t 규모의 화학적 재활용 페트(C-rPET) 생산라인으로 전환한다는 계획이다.

나경수 SK지오센트릭 사장, 김두겸 울산광역시장, 한덕수 국무총리, 김준 SK이노베이션 부회장, 박성민 국회의원 (왼쪽 여섯번 째부터 순서대로) 이 15일 울산시 남구 SK이노베이션 울산콤플렉스(CLX)에서 열린 울산 ARC 기공식을 기념해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SK지오센트릭 제공

이들 기업이 추진하는 폐플라스틱 재활용은 열분해를 이용해 플라스틱을 원재료 상태로 되돌리는 화학적 방식이다. 기존의 플라스틱 재활용은 폐플라스틱의 선별·세척·파쇄 등의 가공 과정을 거쳐 새로운 플라스틱 제품으로 만드는 물리적 방식이 주로 쓰였다. 하지만 플라스틱 종류나 불순물 유무 등에 따라 재활용이 어려운 경우가 많고 공정 과정에서 품질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지적됐다.

한국환경연구원의 ‘폐플라스틱 열분해 추진여건 및 정책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열분해는 폐플라스틱을 무산소 조건의 기계에 넣고 400~600도 사이의 중고온에서 가열해 기름을 추출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을 통해 고체인 폐플라스틱이 석유 유사물질로 바뀐다.

폐플라스틱의 열분해 방식은 물리적 재활용이 어려웠던 폐플라스틱 처리와 석유화학 원료 대체물질 확보, 소각 대비 온실가스 감축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업계 안팎에서 주목받고 있다. 특히 복합 재질의 혼합 폐플라스틱 처리가 가능하다. 이에 쓰레기 분리 수거도 용이해진다. 앞서 환경부는 폐플라스틱 열분해 비율을 2020년 기준 0.1%에서 2030년 10%로 높이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플라스틱이 가지고 있는 독성과 폐플라스틱 재활용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환경 오염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 11일 스웨덴 예테보리대 베타니 알름로트 교수가 이끄는 국제연구팀은 국제학술지 ‘데이터 요약(Data in Brief)’에서 13개국에서 수거한 재활용 플라스틱 펠릿에서 살충제와 의약품 성분 등 독성 화학물질 수백 가지가 검출됐다고 밝혔다.

알름로트 교수는 “플라스틱 재활용은 폐플라스틱 오염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돼 왔지만, 포함된 독성 화학물질은 재사용과 폐기를 복잡하게 만들고 플라스틱 재활용에도 방해가 된다”고 말했다.

특히 모든 플라스틱 제조에는 독성 화학물질이 사용되고, 플라스틱 사용 중에도 다른 화학물질을 흡착하기 때문에 안전하거나 순환 가능한 플라스틱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재활용 플라스틱은 대부분의 용도에 적합하지 않다고도 밝혔다. 연구팀은 “플라스틱 업계가 재활용을 통한 폐플라스틱 문제 해결보다 먼저 유해 화학물질 자체를 제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재활용 플라스틱의 안전성에 대해 SK지오센트릭 관계자는 “물리적 재활용은 독성이 남을 수 있지만 열분해 등을 통한 화학적 재활용 과정에서 폐플라스틱의 독성과 불순물이 모두 사라지고 플라스틱의 기초 성분만 남게 된다”고 주장했다.

이진주 기자 jinj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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