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주심의 ‘국참’ 결정···“성범죄 피고인 무죄 길 열어줘” 평가받는 이유[뉴스 깊이보기]

이혜리 기자 2023. 11. 15.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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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대법관 재직 때 쓴 결정문 논란
“성범죄 재판, 피해자 반대해도 국참 진행”
피고인 측 ‘피해자 다움’ 편견 이용 가능성
법조계 “배심원 판단, 강간통념 작용할 수도”
조희대 대법원장 후보자가 1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과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성동훈 기자

최근 몇 년간 미투(#MeToo·나도 고발한다) 운동, 텔레그램 N번방 사건 등 젠더 이슈가 사회적 논쟁거리로 떠올랐습니다. 자연히 사법부 영역에서도 ‘성폭력 범죄를 어떻게 바라보느냐’는 질문이 대법원장·대법관 후보자의 주요 검증 기준이 되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법원장으로 지명했다 국회의 임명동의안 부결로 낙마한 이균용 후보자의 경우, 성범죄 피고인에 지나치게 관대한 판결을 했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여성단체들은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표명하기도 했죠.

윤 대통령이 지난 8일 새 대법원장 후보로 지명한 조희대 후보자(전 대법관)는 어떨까요?

경향신문은 조 후보자가 대법관으로 재직하던 2016년 3월 주심으로 내놓은 대법원 결정 하나에 주목했습니다. 조 후보자가 당시 결정문에 써놓은 의견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성범죄 재판은 피해자가 반대하더라도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조 후보자의 이같은 판단 이후 성범죄 피고인(가해자)이 국민참여재판을 무죄를 받아내는 ‘통로’로 국민참여재판을 활용하는 길이 열렸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대법원 “성범죄 국민참여재판 배제 신중”…주심은 조희대

해당 사건의 피고인은 14세 지적장애인인 피해자를 강제추행해 기소됐습니다. 이 피고인은 재판을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해달라고 신청했습니다. 직업 법관이 심리·판결하는 일반 재판과 달리 국민참여재판은 시민 배심원이 심리·평결합니다. 법관은 이들의 평결 결과를 주요하게 고려해 선고합니다.

1·2심 법원은 피고인의 국민참여재판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국민참여재판법이 성범죄 피해자가 원하지 않으면 법원이 국민참여재판 ‘배제’ 결정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기 때문입니다. 1·2심 법원은 피해자가 국선변호사를 통해 국민참여재판을 원하지 않는다고 명백히 밝힌 점, 심리 과정에서 2차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는 점 등을 고려해 “국민참여재판이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대법원도 국민참여재판 배제 자체는 합당하다고 봤습니다. 그런데 대법원은 이 결정문에 ‘단순히 성범죄 피해자가 국민참여재판을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국민참여재판 배제 결정을 해서는 안 된다. 배제 결정은 신중하게 해야 한다’고 적시합니다. 대법원은 결정문에서 “국민참여재판 배제 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성범죄 피해자나 법정대리인이 국민참여재판을 원하지 않는 구체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피고인과 피해자의 관계, 피해자의 나이나 정신상태, 국민참여재판을 할 경우 피해자에 대한 추가적인 피해를 방지하기에 부족한지 등 여러 사정을 고려해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대법원은 그 이유로 사법의 민주적 정당성과 신뢰를 높인다는 국민참여재판의 도입 취지, 국민참여재판을 받을 피고인의 권리를 들었습니다. 이 결정의 주심이 조 후보자였습니다.

대법원이 만취 상태의 여성을 모텔로 데려가 강간하려다 미수에 그친 남성에게 무죄를 확정한 지난 4월27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준강간 사건의 정의로운 판결을 위한 공대위 관계자들이 판결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 사건은 1심에서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해 무죄가 선고됐고 2·3심에서 그대로 확정됐다. 연합뉴스

성범죄 사건 재판을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할 때 피해자가 배심원들 앞에서 피해사실을 증언하고 피고인 측 추궁을 받는 과정에서 2차 피해를 입을 소지가 있습니다. 피고인 측이 ‘피해자다움’에 대한 편견을 이용해 법원의 왜곡된 판단을 끌어낼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됩니다.

박기쁨 사법정책연구원 연구위원(판사)은 지난해 연구보고서를 통해 배심원 판단에 ‘강간 통념’이 작용한다는 점을 밝혔습니다. ‘밤늦게까지 같이 술을 마셨거나 모텔에 자발적으로 간 이상 피해자가 성관계를 허용한 것’, ‘연인관계에는 강간이 있을 수 없다’ 식의 통념이 국민참여재판에 작동한다는 것입니다. ‘피해자다움’에 맞지 않으면 배심원들이 무죄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고, 피고인이 번듯한 직업을 가진 경우 등 ‘가해자다움’에 맞지 않으면 성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편견도 존재한다고 했습니다. 통계적으로도 성범죄의 국민참여재판 무죄율은 일반 형사사건보다 높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대법 결정이 성범죄 가해자 국참 악용 계기”

조 후보자가 주심이었던 대법원 결정은 성범죄 피고인들이 국민참여재판을 적극 활용하는 계기가 됐다는 비판이 일찍이 제기됐습니다. 홍진영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017년 논문에서 이 결정에 대해 “향후 최소한 성인 간 강간 사건에 대해 피해자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민참여재판이 열리게 될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고 분석했습니다. 홍 교수는 “사회에 만연한 잘못된 통념으로 인해 배심원의 판단이 적정하지 않은 결론을 낳을 가능성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배심원 평결을 존중해야 한다면 피해자에게 심적 부담을 가중시키는 반면 실체적 진실에 부합하는 정의로운 결론을 보장할 수 없게 된다”며 “결국 성범죄 피해자의 수사기관·재판 절차의 참여를 위축시키게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성폭력 피해자들과 연대해 사법시스템 감시 활동을 해온 연대자D(활동명)는 지난 3일 법원 내 ‘현대사회와 성범죄 연구회’가 연 공개토론회에서 “현장에서는 성범죄 사건에서 국민참여재판의 신청을 피고인들이 적극적으로 하게 된 시기를 2016년 이후로 보고 있다”며 대법원의 해당 결정을 비판했습니다.

연대자D는 “대법원 결정을 들어 일명 성범죄 전담·전문 법인들이 무죄 또는 선처를 받아내는 전략 중 하나로 국민참여재판 신청을 독려했고, 성범죄 가해자들의 온·오프라인 관계망을 통해 실제 성범죄 국민참여재판의 과정 및 결과가 알려졌다”면서 “국민참여재판이 성범죄 피해자 공격에 효과적이라는 판단을 한 성범죄자들과 조력자들은 피해자를 괴롭히기 위한 목적까지 포함해 국민참여재판을 악용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대법원 대법정과 로비. 경향신문 자료사진

이 토론회에서 ‘성범죄 국민참여재판의 현안과 과제’를 주제로 발제한 신윤주 청주지법 영동지원장은 대법원 결정에 대해 “결정 중 일부 판시 부분은 성범죄 사건에서 국민참여재판의 실시를 독려하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다”면서 “그러나 이 결정은 성범죄 사건의 경우에도 일정한 고려요소를 검토해 배제결정을 하라는 취지로 해석해야 하고, 무조건적으로 배제 결정을 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해석돼서는 안 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습니다.

성범죄 피고인들이 국민참여재판을 악용한다는 지적이 계속 제기되자 국회에선 ‘피해자가 원치 않으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국민참여재판을 배제토록 한다’는 취지의 법률 개정안이 발의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법 개정안에 대해 사법행정기구인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의견을 낼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대법원장 후보로 지명된 조 후보자의 입장은 중요합니다. 최근에는 대법원장 자문기구인 사법행정자문회의가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형사사건에서 배심원과 법관의 판단이 같을 경우, 판결문에 판결 이유를 적지 않도록 예규를 개정하겠다”고 한 것도 논란이 되고 있는 터입니다.

조 후보자는 15일 서울 서초구에 마련된 인사청문회준비팀 사무실에 처음으로 출근하면서 성범죄에 감형 판결을 했다는 지적에 대해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정한 대원칙에 따라 늘 재판해왔다”고 답했습니다.

조 후보자는 16일 경향신문에 “(해당 대법원 결정은) 국민참여재판 배제 결정의 원칙적 기준을 제시한 것이지 피해자의 의사나 상황을 고려할 필요없이 무조건 참여재판으로 진행하라는 취지가 아니다”라며 “대법관들의 합의에 의해 도출된 결론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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