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전세, 레몬마켓 되지 않으려면

2023. 11. 15.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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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억원.

최근 발생한 '수원 전세사기' 피해 액수다.

전세사기 피해자 대다수가 사회 초년생 또는 평범한 서민들이다.

정부 차원에서 전세사기 피해지원 특별법을 시행하는 등 피해 구제 방안을 다각도로 내놓고 있으나, 사고 예방책에 대한 진전은 더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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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억원. 최근 발생한 '수원 전세사기' 피해 액수다. 약 671가구가 피해를 입었다. 회사 직원이 자신의 지인도 이번 사건으로 피해를 봤다며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극심한 취업난을 뚫고 대기업에 입사했지만 그 기쁨도 잠시, 전세자금대출을 받아 들어간 집에서 사기를 당했다고 한다. 전세사기 피해자 대다수가 사회 초년생 또는 평범한 서민들이다. 어렵게 모은 전 재산이, 갚아야 할 대출금이 하루아침에 사라진 그 고통을 어찌 상상할 수 있으랴.

정부 차원에서 전세사기 피해지원 특별법을 시행하는 등 피해 구제 방안을 다각도로 내놓고 있으나, 사고 예방책에 대한 진전은 더딘 것 같다.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것을 우려한 세입자들이 최근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에 가입하는 사례도 폭증했다고 한다. 전세보증금 반환 보증 규모가 2년 만에 80조원에서 120조원으로 늘어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하지만 HUG의 부실 우려도 덩달아 커지는 상황에서, 공공기관의 대위변제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제도의 문제점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필자는 특히 정보의 비대칭성에 주목한다. 전세 시장은 목돈이 오가는 엄연한 금융거래임에도, 개인 간 거래라는 한계에 갇혀 정보 활용의 폭이 매우 좁다. 임장(臨場) 또는 부동산 등기부등본으로 주택은 어느 정도 파악을 한다 해도, 전세보증금 리스크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임대인의 신용상태 파악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을'인 임차인은 '갑'인 임대인의 동의 없이 신용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임대인이 사업가인지, 회사원인지조차도 임차인으로서는 알기 어렵다.

그래서 '을'인 임차인이 '갑'인 임대인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물론 개인정보 보호와 상충된다는 측면에서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피해 발생이 워낙 빈번해지고, 피해 구제도 아직은 역부족인 상황이라면 임차인 보호를 비롯한 사고 예방으로 무게 추를 옮겨야 하지 않을까. 부동산 등기부등본과 토지대장 등 거래 부동산에 대한 정보를 비롯해, 임대인의 직장 및 소득정보, 재산내역, 주택 보유 현황 등의 정보도 미리 확인할 수 있다면 피해는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신용정보 조회 업무를 하는 CB(Credit Bureau)사들이 이러한 정보 비대칭을 해소하는 데 노력을 보태고 있다. 임대인의 동의를 전제로 세금 체납, 채무 불이행 여부 등 임대인의 신용정보를 임차인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다만 임대인이 동의를 거부하는 경우를 감안하여,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 임대인의 동의가 없어도 신용정보 제공이 가능하도록 하는 방안도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흔히 중고차 시장을 비유하는 경제 용어로 '레몬마켓(Lemon market)'이라는 단어가 있다. 고객들이 상품에 대한 정보를 얻기 힘든 상황에서, 우량 재화가 사라지고 품질이 낮은 상품만 거래되는 시장을 뜻한다. 지금의 전세 시장은 과연 레몬마켓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사회적 약자의 피해를 막고, 계약 당사자 간 공정한 계약을 위해서도 전세 시장에는 충분한 정보가 공유되어야 한다.

[이호동 KoDATA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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