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재활용으로 화학산업 부흥"…첫삽 뜬 울산ARC
열분해·고순도PP 추출·해중합 등 '3대 최신기술' 적용
생산 시작 전 이미 30% 선판매…"글로벌 브랜드 관심 커"
(서울=연합뉴스) 임기창 기자 = SK지오센트릭이 울산에 세계 최초 플라스틱 재활용 클러스터를 건설하는 첫 삽을 뜨며 탄소중립 시대 화학산업의 일대 전환에 선제적으로 나섰다.
SK지오센트릭은 15일 오후 SK이노베이션 울산콤플렉스(CLX) 내 21만5천㎡ 부지에 플라스틱 재활용 클러스터 '울산ARC(Advanced Recycling Cluster)'를 조성하는 기공식을 개최했다.
화학산업이 글로벌 경쟁 격화로 수익성을 담보하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고품질 재활용 플라스틱 생산을 미래 핵심사업으로 삼아 국내 화학산업의 '르네상스'를 이끌겠다는 게 SK지오센트릭의 포부다.
선진기술 활용해 폐플라스틱 재활용 '무한루프' 구현
오는 2025년 말 완공 목표인 울산ARC는 국제 규격 축구장 22개와 맞먹는 면적에 지어진다.
총 1조8천억원이 투자되는 울산ARC가 완공되면 매년 32만t 규모의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할 수 있게 된다. 국내에서 1년간 소각 또는 매립되는 폐플라스틱(약 350만t)의 9%를 이곳에서 처리할 수 있다.
태평양의 거대 '쓰레기 섬'에 떠다니는 폐기물이 약 8만t으로 추정되는데, 이 정도 분량의 폐플라스틱을 울산ARC로 보내면 3개월 만에 새로운 자원으로 재탄생시킬 수 있는 셈이다.
울산ARC의 플라스틱 재활용에는 '세계 3대 화학적 재활용 기술'로 꼽히는 최신 기술이 적용돼 재활용 이전의 범용 플라스틱에 뒤지지 않는 고품질 제품을 생산한다.
기존의 플라스틱 재활용은 폐플라스틱의 선별, 세척, 파쇄 등의 가공 과정을 거쳐 새로운 플라스틱 제품으로 만드는 물리적(기계적) 방식이 주로 쓰였는데, 플라스틱 종류나 불순물 유무 등에 따라 재활용이 어려운 경우가 많고 공정 과정에서 품질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지적됐다.
울산ARC에는 현존하는 플라스틱 재활용 기술 중 가장 앞선 기법 3가지가 투입된다.
플라스틱을 고온으로 가열해 인공 원유로 되돌리는 열분해 및 후처리 기술, 플라스틱을 용매에 녹여 고온에서 높은 압력을 가한 뒤 오염물질을 제거하고 순수한 폴리프로필렌(PP)만 추출하는 고순도 PP 추출, 플라스틱을 이루는 분자 덩어리를 해체해 기초 원료물질로 되돌리는 해중합 기술이다.
이들 기술을 활용하면 비닐이나 복합재질 플라스틱, 오염된 소재, 유색 페트(PET)병 등 기존에 재활용이 어려웠던 플라스틱도 원료와 동등한 수준으로 재활용할 수 있다.
또 재활용 플라스틱의 높은 품질을 담보할 뿐 아니라 재활용 가능 횟수도 제한되지 않아 플라스틱을 사실상 무한하게 재활용하는 수준에 이를 수 있다고 SK지오센트릭은 설명했다.
3대 기술을 한 곳에서 구현하는 복합 재활용 단지는 울산ARC가 최초라고 한다.
SK지오센트릭은 앞선 재활용 기술을 보유한 해외 업체들과의 협업으로 울산ARC에 필요한 기술을 확보했다. 열분해 기술은 영국 플라스틱에너지, 고순도 PP 추출은 미국 퓨어사이클 테크놀로지(PCT), 해중합 기술은 캐나다 루프사와 각각 협업했다.
나경수 SK지오센트릭 사장은 전날 열린 사전 기자간담회에서 "전 세계 기술을 모두 서치했고, 3개 파트너사는 각자 최고의 기술력과 경쟁력을 지닌 기업들"이라며 "울산ARC에서 이 기술을 모두 구현하고 시너지 효과를 창출해 효율성과 경쟁력을 계속해서 강화해 나갈 것을 기대해 달라"고 말했다.
2050년 시장 규모 600조원 전망…"당분간 수요가 공급 크게 웃돌 것"
고품질 재활용 폐플라스틱은 플라스틱 소재를 활용하는 여러 제조업의 친환경 탄소중립 전환 추세를 고려할 때 당분간 수요가 공급을 훨씬 웃도는 유망 시장이 되리라는 게 SK지오센트릭의 전망이다.
컨설팅기업 맥킨지는 2050년 재활용 플라스틱 시장 규모가 600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측하기도 했다.
고순도 PP 추출 기술을 보유한 PCT의 더스틴 올슨 최고경영자(CEO)는 전날 간담회에서 "연간 약 2천억t의 플라스틱이 새롭게 생산되지만 그중 재활용되는 비율은 5∼10%에 불과하다"며 "플라스틱 재활용 시장은 수요가 공급을 훨씬 앞서는 상황이고, 이런 공급 부족은 100% 재활용 소재를 사용하겠다고 선언한 전 세계 브랜드 오너들의 수요가 충족될 때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울산ARC에서 생산될 재활용 플라스틱은 이미 30% 수준의 선판매가 완료된 상태이며, 2024∼2025년에는 70%까지 선판매가 이뤄질 것으로 SK지오센트릭은 예상하고 있다.
이미 글로벌 포장재 기업 암코 등 여러 주요 소비재 브랜드가 관심을 보이며 공급 협력 논의를 진행 중이다.
고도화된 신기술을 적용해 설비투자(캐펙스·CAPEX) 비용은 다소 높지만, 원료가 되는 폐플라스틱은 말 그대로 질 낮은 '폐기물'이어서 납사 등 기존 플라스틱 원료 대비 가격이 저렴하고 재활용 공정에서 이산화탄소와 열에너지 발생량도 적어 전체 생산비용 측면에서도 유리하다는 게 SK지오센트릭의 분석이다.
나경수 사장은 "추가 재무자원 조달을 통해 계획된 캐펙스를 모두 충당할 수 있어 울산ARC 사업과 관련해서는 재무적 문제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플라스틱 원료 생산 반세기…"화학시대 르네상스 열 것"
SK지오센트릭은 대한석유공사 시절인 1972년 국내 최초의 납사 분해설비(NCC)를 상업 가동하며 한국 석유화학 산업 발전을 이끌었다.
그러나 지난 수년간 중국 공장 증설 등으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국내 화학업계도 수익성 하락에 직면했고, 그 여파로 SK그룹의 상징 중 하나였던 NCC도 2020년 가동을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나경수 사장은 "글로벌 경기에 따른 수익성 변동이 큰 사업에서 벗어나 우리 힘으로 미래를 만드는 새로운 사업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며 "견고한 매출을 내던 공장을 끄는 두려움이 있었지만, 그보다 변화에 대한 확신이 컸기에 내린 결정"이라고 말했다.
NCC 가동 중단에 이어 2021년 SK종합화학에서 '지구를 중심에 둔다'(Geo Centric)는 뜻을 담아 사명까지 바꾼 SK지오센트릭은 폐플라스틱 재활용을 통한 순환경제 참여로 사업 모델을 전환한다.
반세기 동안 핵심 사업 분야였던 플라스틱이 이제는 환경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주범으로 지목됐지만, 플라스틱을 전혀 쓰지 않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고품질 재활용 플라스틱을 통해 더 적은 양의 플라스틱이 쓰이게 하는 방향으로 사업 구조를 바꾸겠다는 목표였다.
울산ARC가 가동되면 폐플라스틱을 인공 원유 등 새로운 플라스틱 원료로 반복 재탄생시켜 '세계 최대 도시유전'으로 플라스틱 순환경제의 핵심 축을 담당한다는 게 SK지오센트릭의 구상이다.
울산ARC가 울산을 포함한 국내 전반에 미치는 경제적 효과도 상당할 전망이다.
본 공사에 투입되는 상시 고용인력은 약 2천600명, 간접 고용효과는 3만8천명 규모이며, 울산지역 간접 생산유발 효과는 연 1조3천억원으로 추산된다.
완공 이후 예상되는 수출 증가액은 연 7억달러이며, 공장 운영에 필요한 폐플라스틱 확보를 위해 중소기업과 협력하는 등 산업 전반의 밸류체인(가치사슬)도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나경수 사장은 "인류에게 편리함과 환경 위험의 양면을 주는 플라스틱의 쓰임을 재해석하고, 쓰레기로 버려지고 태워지던 폐플라스틱을 새로운 자원으로 만들어 화학 시대의 르네상스를 그려가겠다"고 말했다.
puls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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