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또 은행만 돈 번다?”…‘울며 겨자먹기’로 은행에 손 벌리는 중소기업 [머니뭐니]
‘우량채권’ 수요에 저신용 회사채는 ‘한파’
중소기업, 은행 대출수요 늘어나지만
건전성 우려에 문턱 높이는 은행들
[헤럴드경제=김광우 기자] 길어지는 고금리와 경기둔화에 따라 다수 중소기업의 자금 수요가 계속되는 가운데 회사채시장에도 ‘한파’가 불며 은행 대출을 찾는 중소기업들이 늘고 있다. 이에 정부까지 나서 은행권에 중소기업 자금 공급을 독려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경기회복이 더뎌지고 있어 무작정 자금 지원을 늘렸다가 되레 부실 규모를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은행권 또한 건전성 유지를 위해 중소기업 대출을 더 엄격히 볼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15일 금융투자협회 채권정보센터에 따르면 지난 10월 중 국내 채권시장 은행채 순발행액은 7조5393억원으로, 전월(4조6800억원)과 비교해 3조원가량 급증했다. 은행채 순발행액은 이달 들어서도 보름 새 순발행액 5조9660억원을 기록하며, 10월보다 더 빠른 속도의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상반기까지 순상환 기조를 유지하던 은행채는 하반기 이후 순발행 규모를 늘려가고 있다.
‘자금 블랙홀’로 꼽히는 은행채의 발행량이 늘어날 경우, 가장 우려되는 문제는 회사채시장 경색이다. 자금이 우량 채권에 쏠리기 때문에 비교적 신용이 낮은 중소기업 회사채의 자금 조달이 어려워질 수 있다. 실제 지난 10일 기준 3년만기 회사채 AA- 등급과 A+ 등급 간 금리 차(스프레드)는 0.619%로, 0.1~0.2% 수준이었던 지난해 11월과 비교해 대폭 확대된 상태다. 그만큼 비우량 회사채에 대한 수요가 적다는 의미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자금 조달이 급한 중소기업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은행을 찾고 있다. 한국은행 대출행태서베이에 따르면 오는 4분기 중소기업 대출수요지수 전망치는 28로, 전분기(17)와 비교해 60%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대기업과 가계주택 수요지수가 줄어든 것과 반대 양상을 보인 셈이다.
실제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중소기업 대출 규모는 지난달 말 기준 약 627조원으로, 전월 대비 3조6000억원 증가하는 등 하반기 들어 매달 3조~6조원가량 큰 폭의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가계대출 확대를 막으려는 정부 방침에 따라 은행들이 비교적 수익률이 높은 중소기업 대출 규모를 늘려 이익을 유지해나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은행권은 최근 중소기업 대출 확대에 따른 부담이 크다는 입장이다. 경기둔화에 따라 중소기업 대출의 위험성이 커진 상황인데 되레 정부에서 자금 수요가 높은 중소기업·소상공인 등에 대한 자금 지원을 유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종노릇’ 발언과 함께 금융당국의 압박이 이어지며 은행들은 중소기업 지원을 포함한 각종 지원방안을 내놓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건전성 관리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8월 말 기준 중소기업대출 연체율은 0.55%로, 전월(0.49%)과 비교해 0.06%포인트 증가했다. 같은 기간 대기업대출 연체율이 0.12%에서 0.13%로 0.01%포인트 상승에 그친 것과 비교하면 큰 폭의 증가세다. 경기둔화와 고금리가 이어지며 향후 전망도 불투명하다. 법원통계월보에 따르면 올 3분기까지 법인 파산 신청 건수는 총 1213건으로, 통계 작성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은행들은 지난 1년간 중소기업 대출 수요와는 별개로 대기업 대출 영업에 더 큰 공을 들였다. 5대 은행의 지난달 말 기준 대기업 대출 잔액은 137조3492억원으로, 전년 동월(107조1266억언) 대비 28.2% 늘었다. 반면 중소기업 대출은 같은 기간 4.9% 상승에 그쳤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은행의 대출태도지수 또한 대기업(0)이 중소기업(-6)보다 높은 수준이다.
은행들이 중소기업 대출 문턱을 높이자 금리 수준 또한 눈에 띄게 높아졌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9월 신규 취급액 기준 예금은행의 중소기업 대출금리는 5.34%로, 전월 대비 0.1%포인트 오르며 대기업 대출금리 상승폭(0.01%포인트)을 상회했다. 은행권 관계자는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 상승 등으로 늘어난 건전성 관리비용 등이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다만 은행권에서는 정부의 상생금융 압박이 이어지며, 저신용 중소기업 등 취약차주에 대한 자금 공급 규모가 늘어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무리한 자금 공급에 따른 부실 위험을 경고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근본적으로 중소기업 등 어려운 차주들의 상환능력이 회복돼야 하는데 경기둔화가 이어지며 시기가 불투명한 상황”이라며 “무작정 자금 공급을 늘리기보다는 제대로 된 현황 파악과 이에 따른 지원 및 출구전략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w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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