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지오센트릭 '도시유전사업' 첫 삽 떴다

김민성 2023. 11. 15.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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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ARC 착공…폐플라스틱 화학적 재활용 기술 3가지 모아
석유화학에서 친환경 에너지 사업으로 전환…글로벌 진출
/그래픽=비즈워치
"한국의 화학산업은 이미 '서든 데스(Sudden Death)'에 직면해 있다" 

나경수 SK지오센트릭 사장이 14일 열린 울산ARC(Advanced Recycling Cluster) 기공식 사전 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1972년 대한민국 최초의 나프타 분해공정이 설립된 이후 국내 석유화학 사업은 '탄탄대로'를 달려왔다. 하지만 석유화학 사업의 영광은 이제 옛날 일이 됐다. 중국 석유화학 업체들이 대규모 증설을 단행하면서 시장 경쟁이 치열해졌다. 또 고금리와 글로벌 인플레이션 현상에 따른 수요 감소까지 겹치면서 국내 석유화학 업체들은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의 석유화학사업 자회사 SK지오센트릭은 신사업으로 폐플라스틱을 주목했다. 그동안 플라스틱 쓰레기는 재활용이 어려워 소각·매립 방식으로 처리하는 탓에 '환경오염의 주범'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SK지오센트릭은 폐플라스틱 화학적 재활용 설비인 울산ARC를 시작으로 석유 중심의 사업 포트폴리오에서 벗어나 친환경 에너지 사업으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이다.

사업 포트폴리오 대전환 첫걸음 '울산ARC'

SK지오센트릭은 울산광역시 플라스틱 화학적 재활용 공장 울산ARC의 기공식을 15일 개최했다고 밝혔다. 이날 기공식엔 한덕수 국무총리, 김두겸 울산시장, 박성민 국회의원, 환경부 금한승 국립환경과학원장, 산업통상자원부 이승렬 산업정책실장, 김준 SK이노베이션 부회장 등 관계자 250여명이 참석했다.

(왼쪽 여섯번 째부터) 나경수 SK지오센트릭 사장, 김두겸 울산광역시장, 한덕수 국무총리, 김준 SK이노베이션 부회장, 박성민 국회의원이 15일 울산시 남구 SK이노베이션 울산콤플렉스(CLX)서 ‘대한민국 순환경제 미래를 열다’ 주제로 열린 세계 최초 플라스틱 재활용 단지 울산 ARC 공사의 첫 시작을 알리는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 사진=SK이노베이션

울산ARC는 SK지오센트릭이 총 1조8000억원을 투입해 세계 최초의 폐플라스틱 재활용 종합단지를 구축하는 대형 프로젝트다. 부지 크기만 총 21만5000㎡로, 축구장 22개 넓이다. 이 공장은 오는 2025년말 완공돼, 2026년부터 상업 생산에 돌입한다. 

울산ARC의 연간 폐플라스틱 처리량은 총 32만톤(t)이다. 국내에서 한해동안 소각·매립되는 폐플라스틱(350만t)의 약 9.1%에 해당한다. 태평양 한가운데 위치한 '쓰레기 섬'에 모인 쓰레기의 양이 약 8만t인데, 울산ARC에선 이를 단 3개월만에 처리할 수 있다. 

지난 9월 부지정지공사가 진행 중인 울산ARC 부지 모습 / 사진=김민성 기자 mnsung@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날 축사에서 "순환경제는 새로운 경제질서이고 플라스틱은 순환경제 전환의 핵심 가운데 하나"라며 "정부는 플라스틱 폐기물 증가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줄이고 산업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탈플라스틱 사회의 기반을 구축해 나가고자 한다"고 말했다. 

또 "정부는 R&D와 산업 육성을 지원해 플라스틱이 화학산업의 원료로 재활용되기 위한 환경을 마련하고, 순환경제 구축에 앞장서는 기업들에게 든든한 동반자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엔환경계획(UNEP)에 따르면 2040년 전 세계적에서 약 1억톤에 이르는 폐플라스틱이 발생할 전망이다. 폐플라스틱 발생량이 지속 증가하면서 플라스틱 재활용 시장은 지속 성장이 기대된다. 전 세계적으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확산되면서 재활용 플라스틱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도 시장 전망을 밝게 하는 요인이다. 시장조사업체 맥킨지는 재활용 플라스틱 시장 규모가 2050년 600조원까지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 유럽연합(EU)은 플라스틱 포장재에 재활용 소재를 30% 이상 반드시 쓰도록 법제화 했고, 미국에서는 캘리포니아 등 일부 주에서 재생 원료를 2030년까지 50% 이상 사용하도록 하는 규정 도입을 앞두고 있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글로벌 소비재 업체들도 재활용 플라스틱 사용 비율을 높여가겠다고 발표했다. 

SK지오센트릭은 울산ARC가 가동된다면 매년 매출 7000억원, 영업이익 2000억~3000억원 수준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김준 SK이노베이션 부회장은 "울산 ARC는 환경에 기여하는 사업으로 혁신(Green Transformation)을 추진 중인 SK이노베이션에 매우 상징적이면서도, SK그룹의 핵심가치인 지속가능성을 관통하는 프로젝트"라며 "폐플라스틱이 자원으로 재탄생할 것이며 대한민국 울산은 미래 플라스틱 순환경제의 중추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준 SK이노베이션 부회장이 15일 울산시 남구 SK이노베이션 울산콤플렉스(CLX)서 열린 세계 최초 플라스틱 재활용 단지 울산 ARC 기공식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 사진=SK이노베이션

아울러 SK지오센트릭은 향후 급증할 재활용 플라스틱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뿐만 아니라 유럽, 아시아 등 다양한 국가에 플라스틱 재활용 공장을 건설할 계획이다. 

나경수 사장은 지난 14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SK지오센트릭은 울산ARC를 시작으로 파트너 3사와 전 세계로 사업을 확대하는 등 재활용 시장에서 대한민국 리더를 넘어 글로벌 리더가 되는 것이 목표"라면서 "울산ARC 사업 추진과 동시에 이미 유럽, 중국, 아시아 등에서 다른 재활용 공장을 짓기 위한 논의가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화학적 재활용 트리오' 다 모였다

폐플라스틱 재활용엔 물리적 재활용과 화학적 재활용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물리적 재활용은 오염이 덜 된 폐플라스틱을 선별해 잘게 쪼갠 다음 다시 플라스틱으로 재활용하는 기술이다. 공정이 단순한만큼 비용이 적게 들지만, 오염도가 심한 플라스틱은 재활용할 수 없고 색깔이 비슷한 플라스틱끼리 분류해야하기 때문에 재활용 비율이 낮다. 

반면 화학적 재활용은 플라스틱 재활용 비율이 높다. 오염도나 색상과 상관없이 폐플라스틱 대부분을 재활용할 수 있다. 플라스틱을 녹여 석유화학 원료를 생산하거나 다시 플라스틱으로 제조하기 때문에 '도시유전'으로도 불린다.

울산ARC가 주목받는 이유는 전 세계 최초로 플라스틱 화학적 재활용 기술들을 한 곳에 모았기 때문이다. 울산ARC엔 △고순도 PP(폴리프로필렌)추출 △PET 해중합 △열분해·후처리 공정 등 총 3종류의 공정이 들어서 예정이다. 

울산ARC 내 들어설 화학적 재활용 공정 3가지 설명 / 자료=SK이노베이션

SK지오센트릭은 글로벌 파트너사들과의 협업을 통해 기술을 개발했다. 14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선 SK지오센트릭과 협력한 글로벌 플라스틱 재활용 업체 3곳(루프 인더스트리·퓨어사이클테크놀로지·플라스틱에너지)의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화학적 재활용 기술을 소개했다. 

우선 PET 해중합 기술은 캐나다의 루프 인더스트리(LOOP Inderstries)와 기술 협력을 통해 개발했다. 해중합은 유색 페트(PET)병이나 폴리에스터 섬유 등 플라스틱 분자를 화학적으로 분해하는 기술이다. 쉽게 설명하면 화학 분해를 통해 플라스틱을 원료 단계로 되돌리고, 이후 순도를 높이기 위한 정제 과정을 거친 뒤 재활용 플라스틱으로 다시 탄생한다. 

다만 해중합은 플라스틱 중에서도 PET나 폴리아마이드(PA), 폴리우레탄(PU)만 재활용이 가능하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PP나 폴리에틸렌(PE) 등은 해중합이 어렵다.

지난 14일 종로타워빌딩에서 열린 울산ARC 기공식 기자간담회에서 SK지오센트릭과 재활용 전문 기업 사장들이 질의응답을 진행하고 있다. (왼쪽부터)더스틴 올슨(Dustin Olson) 퓨어사이클테크놀로지(Purecycle Technologies) 사장, 나경수 SK지오센트릭 사장, 다니엘 솔로미타(Daniel Solomita) 루프(Loop Industries) 사장, 잉 스테이튼(Ying Staton) 플라스틱에너지(Plastic energy) 부사장 / 사진=SK이노베이션

다니엘 솔로미타 루프 인더스트리 CEO는 "루프는 범용 플라스틱 제품과 동일한 품질의 페트(PET) 플라스틱 생산, 100% 재활용 소재로 만든 폴리에스터 섬유를 생산하는 획기적인 해중합 기술을 완성했다"며 "울산에 구현될 기술은 화석 연료 기반의 페트 플라스틱 대비 연간 20만t 이상의 이산화탄소 감축 효과를 지닐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는 8500만L의 휘발유 소비량, 내연기관 차량이 8억2800만km 이상 주행했을 때 발생하는 탄소량에 해당하는 양"이라고 부연했다.

고순도 폴리프로필렌(PP) 추출 기술 개발엔 퓨어사이클테크놀로지(PCT, Purecycle Technologies)가 참여했다. 고순도 PP 추출은 플라스틱을 일정한 용매에 녹여 높은 온도와 압력을 가한 뒤 순수한 PP만 뽑아낸다. 재활용 과정에서 플라스틱 쓰레기의 색깔, 오염물질, 냄새 등을 모두 제거하기 때문에 PCT 제품은 여러번 재활용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더스틴 올슨 PCT CEO는 "PCT의 공정은 용매 기반의 첨단 기술과 장비를 활용해 PP쓰레기에서 모든 불순물 제거가 가능하다"며 "PCT의 재활용 플라스틱은 기존 플라스틱 제품만큼 물성이 우수할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구별이 불가능할 정도의 품질을 갖췄다"고 자신했다.

열분해 기술은 기존 폐비닐 등을 300℃ 이상의 고온으로 분해해 재활용 원유를 제조하는 기술이다. 플라스틱을 고온으로 가열하면 탄화수소로 분해되는데 이 과정에서 가스나 기름 등이 생산된다. 열분해유는 플라스틱을 열분해해서 얻는 기름을 말한다. 열분해유는 석유나 천연가스처럼 사용하거나 석유화학제품 원료인 나프타를 추출할 수도 있다. 

다만 아직 국내 석유화학 관련 법은 열분해유를 석유화학 공정 원료로 사용하는 것을 규제하고 있다. 열분해유가 석유 유사물질로 석유 및 화학물질 원료로 활용되기 위해선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사업법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 △위험물안전관리법 △산업안전보건법 등의 적용범위에 대한 검토가 필요한 상태다. 

SK지오센트릭 측은 국가 차원에서 플라스틱 재활용 사업에 관심이 많은 만큼 향후 정부와의 긴밀한 협의을 통해 열분해유 사용을 법제화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나경수 SK지오센트릭 사장이 14일 SK그린캠퍼스(종로타워)에서 열린 울산ARC 기공식 기자간담회에서 세계 최초 종합 재활용 단지인 울산ARC의 비전을 발표하고 있다. / 사진=SK이노베이션

나 사장은 "르네상스(Renaissance)는 재생이라는 의미의 프랑스어지만, 저는 대한민국 화학 시대의 부흥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싶다"며 "울산 ARC를 시작으로 인류에게 편리함과 환경 위험의 양면을 가지고 있는 플라스틱 쓰임을 다시 해석하고, 쓰레기로 버려지고 태워지던 폐플라스틱을 새로운 자원으로 만들어 화학시대의 르네상스를 그려가겠다"고 밝혔다. 

김민성 (mnsung@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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