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테리어 열풍은 ‘결핍’ 때문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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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현대 인류문명을 불시에 마비시킨 바이러스의 습격은 인류의 시간을 그 전과 그 후로 나눌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팽창하는 인테리어 열풍이 정말 공간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된 것일까.
실내의 편리함을 위해 우리가 기꺼이 선택한 단절과 고립은 인테리어, 가구, 소품, 전자제품이라도 자주 바꾸지 않으면 그곳에서 견뎌내기 힘든 '심리적 결핍상태'로 우리를 내몬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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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틱]
[크리틱] 임우진│프랑스 국립 건축가
2020년 현대 인류문명을 불시에 마비시킨 바이러스의 습격은 인류의 시간을 그 전과 그 후로 나눌 것이다. 포스트 코로나시대에 인류는 어떤 변화를 겪을까. 그중 특히 관심을 받은 분야가 ‘공간’이다. 타인과 단절되어 자신의 집에서 전례 없이 긴 시간을 보내다 보니 많은 이가 자신의 공간을 전과는 다른 눈으로 보고 그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집과 공간에 관심이 커지면서 수혜를 입은 산업 중 하나가 인테리어 업종이다. 인테리어는 영어로 ‘내부’를 의미하니, 정확히 표현하면 ‘인테리어 디자인’이나 ‘실내건축설계’가 맞겠지만, 국내에서는 주택 등 건축물 내부공사를 그렇게 부른다.
여기에는 인테리어 설계와 시공 분야만 있는 게 아니다. 인테리어 관련 미디어와 다양한 자재시장 등 그 범위와 규모는 상상을 훌쩍 뛰어넘는다. 매일 생산되는 인테리어 관련 기사 페이지뷰는 스포츠, 패션은 물론이고 정치, 사회 이슈를 웃돌기도 한다. 미디어, 에스엔에스(SNS)에서는 멋지고 특별한 공간, 계절마다 유행하는 스타일, 새로 나온 가구와 소품 등을 소개하기 바쁘고, 인스타그램을 채운 절대다수의 사진도 바로 이 멋진 공간들에 관한 것들이다. 한식과 모던, 클래식 정도로 구분되던 게 오늘날에는 미니멀, 젠, 로체, 스칸디나비안, 로맨틱, 오리엔탈, 앤틱, 네오클래식, 엘레강스 스타일 등으로 다양화되어 소비된다. 이렇게 종류도 많고 관심도 다양하니 유행도 빠르고 매년 가구를 교체하거나 심지어 2~3년마다 아예 집 인테리어 자체를 바꾸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런데 이렇게 팽창하는 인테리어 열풍이 정말 공간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된 것일까. 유독 빠르게 유행이 바뀌는 한국의 인테리어 문화가 사실은 오늘날 우리 집들에 숨겨진 어떤 결핍에서 비롯된 반작용이라는 학자들의 보고는 언뜻 낯설게 다가온다. 독일 주거심리학자들 연구에 의하면, 공원이나 나무 같은 외부 풍경이 집안에서 보일 때 사람들은 굳이 실내를 멋지게 꾸밀 욕구를 느끼지 못하지만, 집과 연결된 마당이나 정원, 하다못해 발코니마저 없고, 거기다 실내에서 외부 자연이 보이지 않거나 외부환경과 단절될 때 거주인들은 인테리어에 과할 정도로 집착을 보인다고 한다.
오늘날 한국 인구 절반이 사는 아파트에서 발코니 확장공사를 하지 않는 집을 찾아보기 힘들다. 잘못된 단어 선택 때문에 인식의 오류가 발생하는 많은 예 중에는 발코니 ‘확장’이란 표현도 포함된다. 실내면적 확장을 위한 발코니 ‘포기’가 옳은 표현일 게다. 입식 문화 정착으로 소파, 침대 같은 덩치 큰 가구를 놓으려다 보니, 좁아진 기존 실내면적을 늘리기 위해 발코니가 희생되어 사라졌다. 예전에는 다른 아파트 뒷면이라도 보이는 외부 풍경이었는데, 그나마 주어졌던 한줌의 외부공간 발코니마저 사라지자 창은 커튼과 블라인드로 막혀 바깥 볼 일이 없어졌고 집은 외부와 차단된 채 내부공간으로만 남았다. 그렇게 우리의 집은 옆집뿐 아니라 외부환경으로부터도 완벽한 단절을 택했다.
실내의 편리함을 위해 우리가 기꺼이 선택한 단절과 고립은 인테리어, 가구, 소품, 전자제품이라도 자주 바꾸지 않으면 그곳에서 견뎌내기 힘든 ‘심리적 결핍상태’로 우리를 내몬 셈이다. 발코니에 놓였던 꽃 화분과 작은 분재 한그루가, 창밖으로 보이던 감나무 한그루가, 앞마당에 떨어지던 첫눈 같은 자연이 주는 세상에서 가장 값싸고 효과적인 ‘인테리어’를 포기하지 않았으면 겪지 않았을 그 결핍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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