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기교는 감동없어 예기치못한 개성에 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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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세대 전까지만 해도 피아노 연주엔 정답이 있는 듯 보였다.
오늘날의 연주자들은 남들과 똑같아선 안 된다.
그런데 개성 혹은 창의력은 가르칠 수 있는 것인가?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다고 해서 창의력 있는 연주가 튀어나오진 않는다.
현대 피아노의 형태가 완성된 19세기 후반, 수많은 대가가 독창적인 연주를 남긴 건 이들이 타인의 연주를 접하지 않은 채 자기 믿음에 근거한 개성 있는 해석을 시도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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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경 명예기자 리포트 ◆
한 세대 전까지만 해도 피아노 연주엔 정답이 있는 듯 보였다. 1937년 소련 출생의 아이슬란드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아시케나지는 그런 표본의 대표주자였다. '완벽한 연주'란 악보에 적힌 대로, 작곡가의 의도를 잘 구현한 규범적인 연주라고 여겨졌다.
그러나 사회 변화에 따라 관객의 요구도 새롭게 생겨났다. 요즘 관객은 흐름이 예측되는 연주엔 큰 감흥을 느끼지 않는다. 대신 청자를 놀라게 하고 그로부터 감동을 끌어내는 연주에 기립박수를 친다. 오늘날의 연주자들은 남들과 똑같아선 안 된다.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할 독창성, 즉 강한 개성이 필수 요소다. 1962년생인 내가 피아노를 배우고 칠 때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요구다.
10여 년 전 한 콩쿠르 심사위원으로 참여했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 공교롭게 한국 출신 남자 연주자 네 명이 연달아 연주했는데, 모두 검은색 옷에 같은 머리 스타일을 하고 비슷한 연주 스타일을 보여줬다. 같은 한국인이 보기에도 다름이 느껴지지 않는데 세계 각국의 심사위원과 청중이 보기엔 어떨까. 불현듯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선생인 나부터 아이들의 실력을 정원의 나무 조경하듯 가지런히 자르는 걸 교육이라 생각하지 않았던가. 이제는 학생들이 최대한 돋보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할 때다.
그런데 개성 혹은 창의력은 가르칠 수 있는 것인가?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다고 해서 창의력 있는 연주가 튀어나오진 않는다.
가장 중요한 건 연주자 본인의 관심과 노력이다. 창의성을 거론할 때마다 '융합'이란 단어가 주목받지만, 음악 외 다양한 요소를 받아들인 후 음악 재능과 융합해내는 것은 본인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지난해 미국 밴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최연소로 우승한 피아니스트 임윤찬도 단테의 '신곡'을 외우다시피 읽었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사회 분위기도 관객의 요구, 연주자의 성향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 최근엔 유튜브라는 매체가 연주 환경을 뒤바꿔놨다. 다양한 콘텐츠를 접할 수 있는 통로가 돼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미디어에 노출된 이들의 관점이 엇비슷해지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현대 피아노의 형태가 완성된 19세기 후반, 수많은 대가가 독창적인 연주를 남긴 건 이들이 타인의 연주를 접하지 않은 채 자기 믿음에 근거한 개성 있는 해석을 시도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개성을 키워주는 교육과 심사·경쟁의 틀 안에서 진행되는 콩쿠르는 상극이다. 물론 콩쿠르에서 압도적인 기량을 보여주는 연주자도 있지만, 평가자에겐 호불호가 있게 마련이다. 특히나 많게는 10여 명의 심사위원이 모여서 점수를 부여하기 때문에 뛰어난 개성보다 무난한 실력이 입상할 가능성도 생긴다.
아직 교육자의 역할에 대해 해답을 찾지는 못했다. 몇몇이 콩쿠르 참가를 거부한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닐 것이다. 아주 사소하게는 학교의 실기평가 방법을 바꾸고, 입시제도 개선 등을 조금씩 시도해야 한다. 확실한 건 연주자의 실력을 도약시키는 계기는 많은 무대 경험이란 점이다. 학교에선 어떤 식으로든 무대 위에 설 기회를 자주 만들어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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