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글로벌 진출이 SW가 메이저 산업으로 거듭날 마지막 관문이다

2023. 11. 15.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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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준희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장

“가장 먼저 우리를 찾아 주십시오.”

10월 두바이에서 개최된 '한-중동 디지털 이노베이션 포럼' 현장에서 아부다비 투자청 모하메드 알 호사니가 필자에게 한국의 글로벌 스타트업 진출을 기다린다며 건넨 말이다. 국제행사에서 의례적 인사치레로 치부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는 확신이 든다. 그들은 진심으로 한국의 디지털 산업과 협력하기를 바라고 있다.

올해 우리나라 SW산업을 대표하는 단체의 회장을 맡은지 3년째를 맞아 여러 나라를 방문하고 우리 기업의 해외 진출 활로를 모색하는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아무리 고민해 봐도 복잡한 내수 시장 생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글로벌 공략이 답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활동을 시작하면서 걱정부터 했던 것도 사실이다. 글로벌 시장은 기술패권을 거머쥐고 있는 강대국에게 점령당해 한국 기업들이 소외당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선입견이 다소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매달 발품 팔아가며 만난 유력 해외인사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그들은 한국이 자국의 디지털 대전환을 함께할 유력한 잠재적 파트너라는 인식이 강했고, 또 함께 참여한 한국 기업은 그들의 기대에 부합할만한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중동과 동남아 등지에서 한국의 디지털 산업을 주목하고 있는 요인들은 무엇일까

우선, K-컬쳐로 한껏 높아진 한국의 위상과 친근함이 무엇보다 위력적이다. 6월 방문한 베트남은 오랜 기간 K-컬처에 친숙한 국가였던 만큼 이미 자리잡은 우리나라 기업들이 많았고, 현지인들은 한결 같이 문화 강국인 한국이 디지털 분야에서도 강국이라는 인식을 내비치고 있었다.

이는 세계적 투자 파워를 과시하고 있는 두바이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기에 한국 정부의 적극적 협력 의지도 기회의 폭을 넓히고 있다. 9월 협정체결을 위해 방문한 뉴욕대에서도 대통령이 직접 나서고 있는 한국 정부의 의지를 높게 사며 국내 기업의 미국 동부지역 진출에 적극 협력하겠다고 입을 모으는 것을 목격한 바 있다.

극복해야 할 것들이 여전히 많이 남았지만 환경은 예전에 비해 좋은 조건으로 갖춰지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특히 우리는 중동시장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동은 이제 오일머니를 쌓아두고만 있지 않고 국가 경쟁력을 'Only Oil'에서 첨단 디지털 산업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아낌없는 투자를 할 태세를 갖췄다. 특히 인구구성 자체가 '영 앤 리치'들이 다수 포진하고 있어 자연스럽게 새로움을 추구하는 성향이며, 이들의 관심사는 디지털이 될 수 밖에 없다. 이를 반영하듯 지난 해 중동국가의 정보기술(IT)예산 규모는 133억달러에 달하였으며 IT서비스와 SW의 예산이 전년대비 (2022년 기준) 각각 9.6%와 8.0% 증가했다. 이들 국가들은 특히 금융, 물류, 헬스케어, 에너지 분야의 디지털 전환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으며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비전 2030과 네옴시티 건설 등 대형 프로젝트를 앞세워 막대한 투자를 예고하고 나선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은 그 어느 국가보다 눈에 띄는 파트너라는 것이 현지에서 만난 사람들 전언이다. 미·중 패권 경쟁에 휘말리지 않고 자국의 미래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지역 사정을 고려하면 한국만큼 매력을 갖는 나라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10월 두바이에서 개최된 'Expand North Star 2023' 전시회 한국공동관에는 혁신 스타트업 60개가 모였고, 오마 술탄 알 올라마 UAE 인공지능·디지털경제부 장관을 비롯한 수많은 방문객이 인산인해를 이루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또, 이달 20일에는 사우디아라비아 유명 국영기업 아람코와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가 오픈이노베이션을 통해 선발한 기업이 현지 투자자에게 경쟁력을 선보일 기회를 갖는다. 이는 아람코와 우리나라 기업이 갖는 첫 번째 협력사례다.

이 뿐만 아니다. 카타르, 요르단, 바레인 등 대부분 중동 국가들이 한국과 협력하기를 원하고 있고, 특히 카타르의 경우 국왕이 직접 한국정부와의 소통을 통해 우리나라 혁신 디지털 기업과의 협력을 요청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듯 중동의 한국에 대한 호감과 기대는 날로 증폭되고 있으며 가장 먼저 자신들을 찾아달라는 중동 지역 투자청의 유력인사의 말은 단순한 인사치레가 아니었던 것이다.

환경이 호전되고 있다고 하여 앉아 기다릴 수는 없다.

우리는 면밀함과 동시에 능동적 자세로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해 나가야 한다. 가장 먼저 글로벌 진출의 방식의 변화가 급하다. 그간 우리의 IT 수출은 현지 프로젝트를 수주하거나 패키지SW를 현지화하여 라이선스 판매 계약을 맺는 방식이었다.

피땀어린 노력 끝에 성공적인 진출을 성공한 기업들도 적지 않았으나 고단한 여정이었다. 돈과 인력이 많이 들어가는 것은 물론 여전히 인지도 측면에서 열악한 한국 기업이라는 꼬리표가 큰 장애물이었다.

그러나 이제 클라우드와 서비스형소프트웨어(SaaS) 시대로 접어 들었다.

가치와 품질만 인정된다면 SW를 팔기 위해 현지에 사람을 보내지 않아도, 굳이 국적을 따지지 않아도 해외 고객들이 마케팅 플랫폼에서 클릭 몇 번으로 구매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그간 산업을 대표하는 단체의 회장을 맡으면서 끊임없이 클라우드 기반 SaaS가 대세가 돼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혀 온 이유도 글로벌 진출의 용이성이 주된 이유였다.

꼭 방법론적인 접근이 아니더라도 이제는 세계적으로 디지털 전환의 근간이 클라우드로 급속하게 전환되고 있어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가트너가 올해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에는 세계 퍼블릭 클라우드 서비스에 대한 최종 사용자 지출액은 약 5974억 달러 (약 793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이며 이는 2022년에 비해 무려 21.7%나 증가한 수치다.

특히 초거대 AI가 구현되기 위해서는 확장성이 뛰어난 컴퓨팅이 필요한 데 클라우드야말로 가장 적합한 AI친화형 플랫폼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여러 클라우드 분야 중 역시 SaaS가 최종 사용자의 지출을 가장 많이 유발할 것이라는 전망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가트너는 이같은 전망치를 내놓으며 2026년에는 세계 75%의 조직들이 클라우드를 기본 플랫폼으로 채택할 것이라는 예상했다. 그야말로 클라우드, SaaS가 아니고서는 글로벌 진출 자체가 불가능한 시대가 오고 있다는 말이다.

이에 따른 우리의 준비도는 어떠한가. 일단 최근 좋은 소식도 많이 들려온다.

야놀자 클라우드가 최근 중동과 유럽 등지에서 의미 있는 협정 체결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있고 페이지콜, 채널톡, 잔디 등 이미 우리나라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는 SaaS들이 해외 고객을 확보해 첨병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그러나 조금 더 힘을 모아야할 지표도 보인다. 한국클라우드산업협회가 올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해외 진출 실적이 있는 우리나라 클라우드 기업은 5.5%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2022년 우리나라 클라우드 기업의 해외 진출여부 및 활동 (자료 : 한국클라우드산업협회/클라우드산업실태조사) (2023년 2월)

인력과 자금 부족의 영향이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정부는 이에 대한 해소를 위해 적극적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하고, 기존 SW 기업도 지속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SaaS化와 글로벌을 향한 도전에 나서야 한다.

글로벌 진출에 있어 또 한가지 제안하고 싶은 전략은 조인트벤처 (이하 JV) 방식이다. 창의성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구성한 서비스를 보유한 우리나라 기업들이 최근 현지 기업과의 합작법인을 만들어 성공하고 있는 사례들이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다.

그간 자금력이 충분한 대기업들이 주로 JV 영역을 이끌어왔다면 전도유망한 스타트업들과 중소기업도 고부가가치의 서비스를 인정받아 현지 투자유치와 JV설립 사례를 양산하고 있는 모양새다.

베스핀글로벌이 일본 기업과 설립한 '지첸'은 설립 1년만에 현지 고객사 100곳을 확보하는 등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었고 토스, 지니마켓, 오늘의 집, 아트앤가이드 등 국내 스타트업들은 동남아와 북미에 JV를 설립, 글로벌라이징 태세를 갖추어 가고 있다.

JV설립은 마케팅과 현지화에 있어 최적의 환경을 갖출 수 있음은 물론 까다로운 현지 규제를 비교적 손쉽게 타파해나 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바늘구멍 뚫기보다 어렵다는 현지 투자를 유치하기 유리한 조건이라는 점도 JV설립이 매력적인 이유다.

고려해야할 점은 JV를 설립하더라도 클라우드 환경을 기반으로 한국에서 대부분 서비스를 제공해 기술과 인력의 국내 축적을 도모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 기업들의 도전의식과 정부의 전방위적 지원이 요구된다.

지난 해 MOU를 체결하며 만나 지금까지도 각별한 관계를 가져가고 있는 세계적 사모펀드 '비스타에쿼티파트너스'의 로버트 F. 스미스 회장은 올해 필자와 함께 무바달라 CEO, 임원들과 가진 만남에서 이런 얘기를 했다.

“한국은 디지털 대전환 시대에 가장 주목받을 만한 나라다.” 특히 해외에서 일할 수 있는 인재들이 많이 있다는 것이 가장 큰 경쟁력이라는 말도 덧붙혔다.

사실 필자는 현재 브루나이에 머물고 있다. 정부, 전문기관들과 함께 디지털플랫폼 정부 추진에 관심이 있는 현지 고위관료들에게 양국의 협력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방문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도 재경부 장관이 직접 나서 한국의 디지털 산업에 큰 관심을 보이는 것을 주저하지 않고 있다.

다시 되짚어보지만 이렇듯 우리나라의 디지털은 이제 변방에서 점점 중심으로 움직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우리나라를 선진국 대열 합류를 견인했던 산업은 반도체와 배터리 등 최첨단 제조산업과 문화산업이었다. 이 산업들은 그간 축적한 국내 경쟁력을 바탕으로 부단히 글로벌화를 시도한 끝에 이젠 K라는 접두사가 앞에 붙는 것이 자연스러운 메이저 산업으로 자리잡았다.이제 디지털·SW산업이 바통을 이어 받아 공격적인 글로벌 진출을 통해 선진국을 넘어 세계 초일류 국가로 발돋움 시키자.

우리는 이미 충분한 준비를 해왔고, 또 그럴만한 역량이 있다.

조준희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장

〈필자〉2001년 유라클을 창업해 23년 동안 대표이사직을 수행하고 있는 소프트웨어(SW) 기업가이다. 2021년 2월 법정단체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 제18대 회장으로 취임, 올해 2월 19대 회장으로 연임하며 SW산업 발전과 생태계 개선을 위해 앞장서고 있다. 또, 벤처기업협회 수석부회장, 재단법인 이노베이션아카데미 사외이사로 있다. 지난해 9월 대통령직속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 산업생태계분과위원장직을 맡은데 이어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한국공학한림원 회원,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부회장, 국무총리실산하 데이터기반행정활성화위원회 위원으로도 위촉돼 SW와 정보통신기술(ICT) 산업 발전을 위한 정책 수립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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