쇄국시기 일본이 네덜란드와 교역할 수 있었던 비결은
작은 인공섬, 그곳에 네덜란드가 들여온 것은 ‘세계’ 야코프의>
데이비드 미첼의 역사소설 <야코프의 천 번의 가을>(이하 <가을>)의 배경은 1799년 일본 나가사키 앞 작은 인공섬 데지마(出島)입니다. 데지마는 ‘바깥으로 향한 섬’이란 뜻으로, 당시 일본이 서양과 교역하던 유일한 접점인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상관(商館)이었습니다. 무역선 셰넌도어호를 타고 신임 상관장 위니코 포르스텐보스와 함께 온 야코프 더주트가 주인공입니다. 더주트는 직무에 충실하고 꼼꼼하며 지적인 젊은 사무원으로 시작해서 상관장으로 승진해 5년간 예정됐던 임무를 훨씬 넘겨 18년간 일합니다. 이 시기 실제 상관장이던 헨드릭 두프를 모델로 했습니다.
포르투갈이 떠난 자리에 찾아온 네덜란드
이 소설은 상관에 근무하는 네덜란드인, 동인도회사와 거래하는 일본 상인, 양쪽을 연결하는 통역관, 배후에서 이들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막부 권력자, 세상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일본 지식인과 비밀 종교집단의 행보로 구성됐습니다. 무엇보다 이 책을 통해 쇄국 시기 일본이 네덜란드와의 교류로 어떻게 세계사 속에 나아갔는지를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습니다.
1497년 리스본에서 출발한 바스쿠 다가마가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을 돌아 인도 항로를 개척한 이래, 유라시아 대륙 남쪽의 해양 항로를 지배한 것은 포르투갈이었습니다. 이들은 아프리카, 중동, 인도, 동남아 연안 항구를 함포를 앞세워 정복하고 교역을 독점했습니다. 하지만 중앙집권화 국가인 중국과 일본에서는 이런 방식이 통하지 않자, 현지 정부와 협력해 교역을 가능하게 합니다. 데지마는 1579년부터 포르투갈인들과의 교역 창구로 출발했습니다. 하지만 포르투갈 선박에 실려온 것은 물건만이 아니었습니다.
이베리아반도의 가톨릭 선교사들은 일본에 들어와 적극적으로 포교 활동을 벌였습니다. 일본 내 기독교인 인구가 급증하면서 막부 정부는 긴장하고 탄압에 나섭니다. 1637년 가톨릭교도를 중심으로 일본 역사상 최초의 대규모 봉기인 ‘시마바라의 난’이 벌어지자, 도쿠가와 막부는 기독교를 완전히 금지합니다. 이 여파로 1639년 포르투갈인들은 추방됐고 교역이 금지됐습니다.
이 틈을 파고든 것이 네덜란드입니다. 16세기 말부터 종교에 대한 관용, 과학기술과 상거래 진흥을 추진한 저지대인들은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과 공화국 수립을 선언한 뒤 급속히 발전합니다. 이들은 1602년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로 평가받는 동인도회사를 설립하고 유라시아 해양 전체에서 포르투갈·스페인과 경쟁했습니다. 네덜란드인들은 선교 없는 교역을 내세워 막부를 설득하고 1641년 포르투갈이 떠난 데지마에 네덜란드 상관을 차립니다. 이후 일본의 유럽인과의 교역은 네덜란드가 독점했습니다.
두 세계에 걸쳐 있는 ‘가장 긴’ 다리
데지마는 9천㎡의 작은 인공섬으로 축구장보다 조금 더 큰 면적에 불과합니다. 나가사키와는 짧은 ‘홀란드 다리’로 연결됐습니다. 하지만 이 다리로 일본은 세계 상품을 교역할 뿐 아니라 시대를 앞선 학문과 정보를 접하니 그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가을>의 주인공 중 한 명인 통역관 오가와 우자에몬은 처음 데지마에 올 때 스승이 ‘이 다리는 두 세계 사이에 걸쳐 있으니 네가 건넌 것 중에서 가장 긴 다리다’라고 했던 가르침을 깊이 새기고 있습니다.
네덜란드인들은 유럽의 신물품, 중국의 실크, 인도의 면직물 등을 일본에 수출했습니다. 그 대가로 일본인들로부터 칠기와 자기, 구리와 은 등을 샀습니다. 일본과의 교역은 수익성이 높아, 한때 동인도회사 총이익의 70% 이상이 일본과의 거래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특히 구리는 일본이 전세계에 대량 공급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였기에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일본산 구리의 영향을 기술할 정도로 중요한 물품이었습니다. 구리의 주요 수입국은 상거래에서 구리 주화를 사용한 아시아 국가들이었는데,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유럽-아시아 무역뿐 아니라 아시아 역내 무역에도 적극 참여했습니다.
도쿠가와 막부가 1715년 구리 수출을 제한하면서 구리 확보는 사활이 달린 문제가 됐습니다. <가을>은 일본으로부터 구리 수입량이 1790년 8천피컬(약 480t)에서 10년 만에 3200피컬로 곤두박질친 상황에서, 신임 상관장 포르스텐보스가 나가사키 부교(행정을 담당하는 최고위직 중 하나) 시로야마와의 대담한 담판을 통해 9600피컬로 할당량을 늘리는 장면을 실감 나게 묘사합니다. 하지만 그는 본사에 이를 2600피컬로 축소 보고하고 7천피컬을 횡령합니다. 부상관장으로 승진할 예정이던 더주트는 이에 항의하다 승진이 취소됩니다.
실제 각국의 동인도회사 직원들은 적은 봉급을 보충하거나 큰 재산을 형성하기 위해 회사 물품을 횡령하거나 회사에 손해를 끼치는 개인 거래를 하는 일이 빈번했습니다. 1609년부터 동인도회사 공식 보고서에 ‘선장, 선원 그리고 회사에 근무하는 모든 사람이 고용계약 조항을 위반하고 도자기, 칠기, 그 밖의 귀중품을 운반해서 매각하고 있다’는 경고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오랑캐 학문’에서 ‘홀란드 학문’이 되다
데지마와 나가사키를 연결하는 다리로 상품만 오간 것이 아닙니다. 네덜란드인들이 선교를 내세우지 않았기에 막부는 데지마를 통해 발달한 서양 학문을 수입하더라도 위험한 기독교 사상이 유입되지 않으리라 기대했습니다. 에도 막부의 8대 쇼군 도쿠가와 요시무네가 서양 서적의 수입 금지를 완화하면서 다양한 학문 분야의 서적들이 데지마를 통해 폭발적으로 전해졌습니다. 그 이유로 서양 학문을 가리키는 말이 ‘남만학’(남쪽 오랑캐의 학문)에서 ‘난학’(홀란드 학문)으로 바뀌었고, 이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지란당’이라는 학술단체를 만들어 정보를 교류했습니다.
난학 도입 초기에 특히 중요한 것은 의학이었습니다. 교역이 허용된 네덜란드인이라 해도 상관장과 부상관장이 아니면 데지마를 벗어나 일본에 발 딛는 일이 드물었습니다. 일본인 역시 통역사와 창녀 등 제한된 인원만 데지마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네덜란드 의사는 때때로 홀란드 다리를 건너 일본 고위층의 진료에 참여했고, 일본인 의사도 데지마에 와서 의학을 배웠습니다. <가을>의 여주인공 아이바가와 오리토는 산파로 정기적으로 데지마에 들어와 동인도회사 소속 의사 뤼카스 마리뉘스로부터 의학을 배웠습니다. (더주트, 오가와, 아이바가와 사이의 엇갈리는 애틋한 사랑 이야기는 지면 사정으로 아쉽지만 생략하겠습니다.)
더주트가 마리뉘스를 따라 지란당 모임에 참석해 당대 최고의 난학자 스기타 겐파쿠의 회고를 듣는 장면이 있습니다. 스기타는 30년 전 어렵게 구한 네덜란드어로 쓰인 해부학 책 <타펠 아나토미아>를 실제 인체와 대조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는 또 한 명의 난학자인 의사 마에노 료타쿠(그는 소설 속 오리토의 스승이기도 합니다)와 함께 막부의 허락을 받아 사형수를 직접 해부합니다. 인간의 육체가 음양오행설에 기반한 동양의학과는 전혀 다르고 <타펠 아나토미아>와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것에 충격받습니다. 그리고 난학자들을 모아 번역에 착수해 일본 최초의 해부학서인 <해체신서>를 발간합니다.
막부 역시 데지마를 무역 창구로만 쓰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네덜란드에 교역을 허용하면서 매년 서양 정세를 집대성한 <풍설서>를 작성해 보고하도록 요구했습니다. 1641년 처음 작성한 <풍설서>는 유럽 각국뿐 아니라 인도, 청나라, 미국의 정보도 기재돼 쇄국 기간 중 막부가 국외 사정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구실을 했습니다. <가을>에는 <풍설서>에 대한 대목이 몇 차례 나오는데, 젊은 난학자 요시다 하야토는 지란당 강연에서 <풍설서> 정보를 인용해 ‘새로운 힘을 가진 기계들이 세계를 변화시키는데, 이를 얻지 못한 민족은 잘해야 인도인처럼 정복당하거나 최악의 경우 밴디먼스랜드 원주민처럼 절멸당할 것’이라며 일본의 쇄신과 식민지 건설(!)을 촉구합니다.
같은 네덜란드인 하멜은… 한·일을 가른 운명
이 대목에서 ‘우리는?’이란 질문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19세기 후반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지만, 사실 이 시기에 이미 일본과의 격차는 뚜렷하게 벌어졌고, 열강의 틈에서 적극적이고 독자적인 개방과 발전을 도모하는 게 극히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17세기 인조와 효종 때 청을 공격하고 명에 대한 의리를 지키겠다는 시대착오적인 북벌론부터 문제였다는 인식이 있습니다.
국제문제 대기자인 김영희가 대표적인데, 그는 1653년 일본으로 향하다 폭풍으로 조선에 표착해 억류됐던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직원 하멜과 그의 동료들에 주목해서 <소설 하멜>을 썼습니다. 선박과 총포의 제작, 축성, 천문, 의학 등 다방면의 전문가들로 하늘이 내린 선물이었는데, 무능한 효종과 그의 신하들이 그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는 내용입니다. <가을>과 <소설 하멜>을 같이 읽으며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를 접한 조선과 일본의 모습을 비교하는 것은 가슴 아프지만 유익하리라 생각합니다.
신현호 이코노미스트·<나는 감이 아니라 데이터로 말한다> 저자
*소설로 읽는 경제학: 일반인이 경제현상에 쉽게 다가가고 동시에 경제와 금융 종사자가 소설에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소설 속에서 경제를 발견하는 연재. 격주 연재.
데이비드 미첼과 <야코프의 천 번의 가을>은
데이비드 미첼은 영국 소설가입니다. 1999년 <유령이 쓴 책>으로 데뷔한 뒤 여덟 권의 베스트셀러 장편소설을 발표했습니다. <야코프의 천 번의 가을>은 2010년 출간됐고 2018년 송은주가 한국어로 번역했습니다. 이 책으로 영연방 작가상을 받았고, 맨부커상 후보에 올랐습니다. <뉴욕타임스>는 ‘올해의 책’으로 선정했습니다. 미첼은 <타임스>가 2007년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중 한 명입니다. 소설가로 데뷔하기 전 8년간 일본 히로시마에서 영어를 가르쳤고, 일본인 아내와 살고 있습니다. 일본을 배경으로 한 미첼의 소설들이 현지 상황을 생생하게 담은 것은 이 경험을 기반으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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