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나온 내용인데"…뒤늦게 꿰맞춘 '1조 청년정책' [관가 포커스]
지난 14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4층 브리핑실에선 ‘청년층 노동시장 유입 촉진방안’에 대한 사전 브리핑이 진행됐다. 다음날 열리는 비상경제장관회의 핵심 안건인 해당 방안에 대해 기자들에게 세부 대책을 설명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이날 참석한 기획재정부와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되는 ‘쉬었음’ 청년을 노동시장으로 유입하기 위한 단계별 지원 대책을 마련했다”고 강조했다.
‘쉬었음’ 인구는 중대 질병이나 육아, 가사, 통학 등 특별한 이유 없이 무직으로 지내고 있지만 딱히 구직 활동을 하지 않기 때문에 통계상 실업자로 분류되지도 않는다. 특히 통계청에 따르면 올 1~9월 청년(15~29세) ‘쉬었음’ 인구는 월평균 41만4000명으로 전체 청년 인구의 4.9%에 달했다.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청년 ‘쉬었음’ 인구는 전체 청년 대비 2%대 수준이었다.
기재부는 지난 7월부터 10월까지 4개월간 청소년정책연구원에 설문조사를 맡겨 18~29세 청년을 대상으로 ‘쉬었음 이행 과정·전망과 정책 수요 등에 대한 실태조사’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조사한 2896명 중 ‘쉬었음’ 청년 45명을 뽑아 심층 면접도 진행했다.
기재부와 고용부는 실태조사를 통해 ‘쉬었음’ 청년을 직장 경험 및 구직 적극성, 개인적 특성에 따라 5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이 같은 특성을 고려해 재학부터 재직, 구직 등 단계별 맞춤형 정책을 이날 공개했다. 기재부에 따르면 ‘쉬었음’ 청년을 노동시장으로 유입시키기 위해 마련한 이번 대책에 드는 예산은 1조원에 육박한다. 실태조사 결과를 토대로 이번 대책을 마련했다는 것이 기재부와 고용부의 설명이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기재부와 고용부가 이날 발표한 1조원가량의 ‘쉬었음’ 청년 대책은 지난 8월 말 발표된 2024년도 예산안에 모두 포함된 내용이었다. 기재부 설명과 달리 이날 공개된 청년 대책은 실태조사 결과와 상관없이 부처별로 지난 8월에 모두 확정됐고, 이에 따른 예산도 모두 국회에 제출된 것이다.
반면 설문조사는 지난 7월부터 10월까지 진행됐다. 부처별 소관 예산안이 지난 7월에 기재부 예산실에 제출됐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청년 대책이 모두 만들어진 후에서야 설문조사가 시작됐다는 뜻이다. 부처별로 미리 만들어진 정책임에도 설문조사가 나온 후 마치 해당 설문을 토대로 이번 정책을 만든 것처럼 포장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기재부가 이날 강조한 대목은 재학-재직-구직별로 단계별 맞춤형 정책을 마련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역시 기존에 만들어진 대책을 사후에 나온 설문조사 결과에 억지로 꿰맞춘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번 대책에 드는 예산 중 절반에 달하는 K-디지털 트레이닝 사업(4732억원)이 대표적이다. 기재부는 디지털 첨단 산업 인재 양성 확대 및 돌봄 서비스 훈련 강화를 위해 이 사업을 추진한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앞서 고용부는 지난 8월29일 예산안 제출 직후 열린 브리핑에서 관련 예산을 올해 4136억원에서 내년에 4732억원으로 늘린다고 이미 발표했다.
또 기재부는 취약 청년층을 위해 연 200만원 상당의 가족돌봄청년 자기돌봄비를 신설하고, 자립수당을 월 40만원에서 50만원으로 인상하는 대책도 소개했다. 특히 가족돌봄청년 자기돌봄비는 ‘쉬었음’ 청년을 위해 새롭게 마련된 정책이라고 홍보했다. 하지만 이 역시 지난 9월 열린 당정 협의회를 통해 발표된 ‘청년 복지 5대 과제’에 포함된 내용이다.
이에 대해 기재부 청년정책과 관계자는 “오래전부터 ‘쉬었음’ 청년의 노동시장 유입 촉진 방안을 준비하고 있었다”며 “실태조사가 늦어지면서 부득이하게 이제서야 관련 정책을 발표하게 됐다”고 해명했다.
더욱이 정부가 이날 발표한 대책은 ‘쉬었음’ 청년에 대한 노동시장 유입 촉진 방안이라기보다는 전체 청년층의 취업 기회 확대를 위한 방안과 다를 바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날 발표된 고용서비스나 일 경험 지원, 취업역량 강화 등의 대책은 모든 청년층에 해당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기재부 관계자는 “‘쉬었음’ 청년에 대한 지원 대책을 기존에 진행하던 청년정책과도 연계해 추진하기 위한 취지”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니트(NEET·학업이나 일·구직을 하지 않는 무직자) 특화형 일 경험 프로그램, 청년 이직자 대상 경력 재설계 서비스 등은 새로 도입되는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강경민/곽용희 기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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