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철 칼럼] "禮를 잊고, 절대 자유의 경지에서 노닐다" …노자와 장자의 세계
생명과 자유 중시…"선악·시비·미추는 사람의 판단에 불과"
"바다를 봐야 자신이 보잘 것 없음을 알아"…무위'(無爲) 지향 '출세'(出世)의 철학
"현실을 조소하고 욕설을 퍼부은 다음 스스로 고상하다고 자랑하는 격" 비판도
동양 사상의 핵심은 흔히 '유·불·선'(儒·佛·仙, 유교 불교 도교)에 있다고 한다. 도교는 노자(老子)와 장자(莊子) 철학이 뿌리로, 유교와 함께 동양인의 정신세계와 생활에 큰 영향을 미쳐왔다. 노자가 추구한 것은 욕망이나 번거로움, 감각의 구별이 사라진 '허·정·담'(虛·靜·談)의 세계이며, 장자는 세속을 떠난 '절대 자유의 경지'를 노래했다.
노자는 '도덕경' 첫머리에 "말로 도를 논하면 진짜 도가 아니다. 말로 이름 붙이면 진짜 이름이 아니다"(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라며 진리의 상대성을 역설했다. 장자는 저서 '장자' 소요유편에서 다음과 같은 호탕한 글로 자유로운 정신에 대한 열정을 드러냈다. "북쪽 바다에 큰 물고기가 있으니, 그 이름을 '곤'(鯤)이라고 한다. '곤'의 크기는 그 길이가 몇천리나 되는지 알 수가 없다. 곤이 변신하여 새가 되는데, 그 이름을 '붕'(鵬)이라 한다. '붕'의 등덜미는 그 길이가 몇천리인지 알 수가 없다. 온몸에 한껏 힘을 주고 하늘을 나는데, 활짝 펼친 날개가 마치 하늘에 드리운 구름 같다. 이 새는 바다가 크게 움직일 때 남쪽 바다로 날아가려 한다. 남쪽의 깊고 검푸른 바다는 '하늘 연못', 즉 천지(天池)다."
◇"예(禮)는 어지러움의 첫머리"
유가가 세상으로 향하는 '입세'(入世)라면, 도가는 세상에서 나가는 '출세'(出世)의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노장 사상은 세상으로부터 숨은 중국 고대의 은자(隱者)인 접여, 장저와 걸익 등으로부터 비롯된다. 일본의 철학자인 가노 나오키(狩野直喜)는 "노자의 사상은 주나라때의 문(文) 숭상에 대한 반동으로 출현했다"고 말한다.
노자가 소를 타고 변방 함곡관을 지나 세상밖으로 숨으면서 남겼다는 5000여자 분량의 짧은 책 '노자 도덕경'에는 문제를 뒤집어 생각하는 사유방식이 잘 드러난다. 그가 생각하는 이상적 천하는 구제가 필요없는 세상이다. 다스림(治)은 필연적으로 혼란을 초래하며, 다스림 자체가 바로 혼란의 근원이다. 노자의 '도'(道)는 만물의 근본으로, 인위적 성격을 갖지 않는다. 인간 최상의 선은 천도(天道), 즉 자연의 법칙에 따르는 것이다. 노자는 "(유가에서 강조하는) 예(禮)는 어지러움의 첫머리"라고 말한다. 그래서 '무위'(無爲)가 중요하다. 무위는 과욕(寡慾·욕심 줄이기), 우민(愚民·정치적 관심 줄이기), 반지(反智·이성적 구별에 대한 반대), 부덕(不德·인위적 도덕에 대한 반대)으로 요약할 수 있다. 노자는 동(動)과 정(靜), 영(盈)과 허(虛),교(巧)와 졸(拙), 곡(曲)과 직(直), 다(多)와 소(少) 등 상반된 단어를 통해 진리의 상대성을 강조한다.
이에 비해 장자 철학은 미학적이다. 장자는 '세속 바깥에서 배회하고 무위의 업(業)에서 자유롭게 노니는' 세속을 떠난 인간을 지향했다.
그가 쓴 '장자'는 선악과 시비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난 정신의 절대적인 자유의 경지를 추구했다. 사람의 정신은 왜 자유롭지 못한가, 어떻게 해야 한계를 초월해 자유로운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가가 그의 화두였다. "자기를 비워 세상에 노닌다"(허기이유세·虛己以遊世), "삶과 죽음도 사계절의 변화처럼 끝없이 순환한다"는 게 장자의 생각이다. 천지가 나와 더불어 같이 살며, 만물은 나와 더불어 하나가 되는, 인간과 자연이 하나가 되는(인여천일야‧人與天一也) 게 최고의 경지다. 장자의 도는 우주의 생명을 의미하며, 이 도를 터득한 사람이 진인(眞人)이다. 도교가 이상화하는 신선(神仙)의 개념은 여기서 출발한다.
'장자'는 내편과 외편으로 이뤄져 있는데 '소요유'와 '제물론'이 핵심이다. 그는 인간은 '나'(我) '공'(功) '명'(名) 3가지 때문에 괴롭다며 쓸모없는 나무가 장수하는 '쓸모없음의 쓸모있음'(무용의 용·無用之用)을 외친다. 추수(秋水) 편에선 "바다를 보아야 자신이 보잘 것 없음을 안다"(망양흥탄·望洋興嘆)며 세속적 욕망의 헛됨을 비판한다. 장자는 중국 불교의 한 흐름인 선종(禪宗)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요약한다면 노장 사상의 특징은 △시간과 공간의 무한성 △모든 지식의 유한성에 대한 인식 △진리의 상대성 △형이상학적 독단론에 대한 반박 △사회 윤리규범의 본질적 의미에 대한 폭로 △자유로운 정신에 대한 열정 등으로 정리할 수 있다.
◇유가와 도가의 논쟁
도가는 유가와 대립하는 가운데 서로 보완 발전해왔다. 도가는 대범하고, 유가는 실제적이다. 도가는 천도(天道·하늘의 길)를 말하고, 유가는 인도(人道·사람의 길)를 얘기했다. 그래서 "사람됨은 도가를 배우고, 일을 할때는 유가를 배워야 한다"고 한다.
현대 중국의 작가이자 역사가인 이중톈은 유가와 도가의 논쟁점은 △구제할 처방전이 있는가 없는가 △천하를 구제할 것인가 자기를 구제할 것인가 △적극적으로 유위할 것인가 소극적으로 무위할 것인가라고 지적한다. 도가는 유가와 달리 천하를 구제할 처방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간주한다.
도가가 유가의 인의(仁義)를 인위적이라며 반대한 이유는 허위이고 인성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원을 그릴때 원을 그리는 도구인 규(規)가 없더라도 그릴 수 있고, 사각형을 그릴때 방형을 그리는 도구인 구(矩)가 없어도 되는데 왜 유가는 항상 규와 구처럼 '인의예악'이라는 틀을 만들어 사람을 괴롭히려 하는가?"라고 묻는다. 천지와 만물, 인간은 각자 천성을 지니고 있으며, 각자의 천성에 따라 살아가면 그것이 곧 가장 큰 행복이자 최고의 경지라는 것이다. 노자는 "인의는 도덕이 추락한 결과"라고 한다. 노장에게 예가 가장 낮은 단계이며, 사람들이 덕을 잃은 이유는 도(道)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노자는 공자가 강조한 종법·등급사회를 혐오했다. 유학이 주례(周禮)의 회복, 예악인으로서 인성을 규범화해 인간세상의 변화를 꾀했다면 장자는 비인간세, 나아가 초인간세를 지향하고 정신의 독립과 자유를 중시했다. 유학이 형이상학적인 이원 대립의 세계관이라면 노장은 사물의 상호의존적 관계에 중점을 뒀다. 노장에게 옳고 그름, 선과 악, 미와 추 등은 사물의 고유한 속성이 아니라 사람의 판단에 불과할 뿐이다. 노장 철학은 정치 윤리철학인 유학과 달리 존재론적 철학이다. 이런 이유로 예술 분야에선 유학보다 영향력이 더 컸다.
◇노장 철학에 대한 비판
상하이사범대 인문학원 교수였던 쑤치시는 "장자는 결함많은 보물창고"라고 했다. 노장은 유한한 지식, 인위적인 대립, 세속적인 영리, 사회적인 윤리규범으로부터의 초월을 외친다. 하지만 개체는 유한한 시간과 공간 속에 존재하며, 그의 인식활동은 항상 유한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다. 따라서 그러한 지식의 제약을 받는 정신활동 또한 자유롭지 못하다.
또하나는 노장이 현실속에서 실천할 방안을 찾지 못했다는 점이다. 장자는 초월의 실천, 유한성의 초월, 무한한 절대자유를 추구하지만 그러한 자유는 이념상 또는 환상 속의 자유일 뿐이다. 정신적 자아는 고답적일 수 있지만 육체적 자아는 현실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문제다. 장자의 자유는 개인의 정신적 자유일 뿐이지 실천적 자유는 아니다. 그래서 "고상한 자들의 순응적인 처세의 도구", "모순의 비현실적인 해탈"이라는 비판이 있다. 마치 장자에 조예가 깊었던 위진남북조 시대 죽림칠현의 한 사람인 완적처럼 "현실을 한 바탕 냉정하게 조소하고 맹렬하게 욕설을 퍼부은 다음 바람처럼 훌쩍 떠나 스스로 깨끗하고 고상하다고 자랑하는 격"이다. 이렇게 되면 굳건히 지켜야 할 인생의 목표를 잃게 만든다.
◇종교로서의 도교
도교는 2세기 후반 후한 말기 장각의 태평도와 장릉의 오두미교로부터 시작된다. 양생술 중심의 도교는 철학적 사유인 노·장 철학과 적지 않게 다르다. 일본 학자인 가미쓰카 요시코(神塚淑子)에 따르면 5세기 중엽 남제의 도사 고하의 '이하론'(夷夏論)에서부터 도교가 불교에 맞선 중국 고유 종교로 지칭되기 시작했다. 도교는 폭넓은 스펙트럼을 가지는데 대략 △청정(淸淨·노자의 청정무위 사상) △연양(煉養·내단 등 양생술) △복식(服食·선약을 복용해 불로장생을 꾀하는 방법) △경전과교(經典科敎·불교에 대항해 제작된 경전과 의례) △부적(符籍·부적을 활용한 주술) 등으로 나눠볼 수 있다.
청나라때 발간된 '사고전서 총목제요'의 도가류 서문은 "도가는 노장의 청정사상을 근본으로 삼고서 그 뒤에 신선가, 연단술, 부적, 제초(죽은 이의 넋을 기리거나 재앙을 없애는 제사의례), 달두(천상의 신들에게 글을 올려 액막음을 청하는 의식이나 주술) 등이 더해진 것"이라고 했다. 수행과 양생을 통해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신체를 온전히 유지하는 게 목표다.
노장 철학과 도가가 주는 메시지는 지혜의 깨달음을 추구하고 자신과 편안하게 지내며, 자연·대도(大道)와 노닐라는 것이다. 스트레스가 많은 현대인들에게 주는 처방이 아닐 수 없다. 강현철기자 hckang@dt.co.kr
* 이 글은 한국조폐공사 사보 '화폐와 행복' 2023년 11+12월에 필자가 게재한 글을 전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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