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고무신 사태 방지? 오히려 신예 작가들만 발 묶을 것"

윤정민 기자 2023. 11. 15.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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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입법 추진 중인 문화산업공정유통법(문산법)이 과도한 사전 규제, 중복 규제라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고(故) 이우영 작가의 '검정 고무신' 계약 논란을 계기로 불거진 문화산업계 불공정 행위를 금지하겠다는 법적 취지와 달리 부처 간 중복 규제가 나타날 수 있고 금지 행위에 대한 모호한 규정 등으로 자칫 K-콘텐츠 발전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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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통신정책학회·한국미디어정책학회 문화산업공정유통법 세미나 토론회서 지적
학계 "공정위 등과 중복 규제…K콘텐츠 산업 경쟁력 악화될 것"
[서울=뉴시스] 윤정민 기자 = 정보통신정책학회와 한국미디어정책학회는 15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디지털 심화시대, 콘텐츠산업 생태계의 지속가능한 발전 정책: 문화산업공정유통법안, 이대로 좋은가' 세미나를 열었다. (왼쪽부터) 최영근 상명대 교수, 권남훈 건국대 교수, 오병철 연세대 교수, 박천일 숙명여대 교수, 이승민 성균관대 교수, 황유선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연구위원, 김유향 국회입법조사처 박사. 2023.11.15. alpaca@newsis.com


[서울=뉴시스]윤정민 기자 = 현재 입법 추진 중인 문화산업공정유통법(문산법)이 과도한 사전 규제, 중복 규제라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고(故) 이우영 작가의 '검정 고무신' 계약 논란을 계기로 불거진 문화산업계 불공정 행위를 금지하겠다는 법적 취지와 달리 부처 간 중복 규제가 나타날 수 있고 금지 행위에 대한 모호한 규정 등으로 자칫 K-콘텐츠 발전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정보통신정책학회와 한국미디어정책학회는 15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디지털 심화시대, 콘텐츠산업 생태계의 지속가능한 발전 정책: 문화산업공정유통법안, 이대로 좋은가' 세미나를 열었다.

이날 발제자로 나선 이규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문산법에 대해 "문화체육관광부가 문화산업계의 공정거래위원회 역할을 만드는 법"이라며 주장했다.

문산법은 지난 3월 검정고무신을 그린 고(故) 이우영 작가가 출판사와의 저작권 소송 진행 중 극단적 선택을 하자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가 유정주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법안을 수정·병합해 대안으로 제시한 법안이다. 현재 이 법안은 계류 중인 가운데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지난 14일 문산법 제정 추진에 협조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 법안은 문화산업계에 공정한 거래 관행을 조성해 제2의 검정고무신 사태를 막겠다는 취지로 입법이 진행되고 있다. 문체부가 시정 조치를 불이행한 문화상품사업자(문화상품제작업자, 문화상품유통업자 등)에 이행 강제금과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는 조항이 법에 포함돼 있다.

이에 대해 산업계, 학계는 사적 계약 규제가 과도하고 법 적용 대상도 방송,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음악, 출판, 웹툰 등으로 다양해 공정위뿐만 아니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방송통신위원회 등 부처 간 중복 규제 논란이 있다며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이 교수도 문산법이 '검정고무신 사태 방지법'으로 불리는 데 대해 "(이미 시행 중인) 예술인권리보장법을 통해 예술인을 보호해 줄 수 있다"며 "문산법이 문화산업계 예술인을 보호하는 법이라면 법 방향이 잘못된 것"이라고 밝혔다.

또 그는 "문화상품은 일반 공산품과 달리 창작 대가를 유통업자, 저작권자 등과 어떻게 나눌지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는다"며 "성과가 낮은 저작권자의 경우 초기에 낮은 비율을 감수하고라도 시장에 진입한다"고 말했다.

이어 "대가를 어떻게 정할 것인지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라 '문화상품 제작에 통상적으로 지급되는 대가보다 현저히 낮은 수준으로 대가를 정하거나 문화상품 공급계약에 명시된 대가를 정당한 이유 없이 감액하는 행위'를 금지하면 무명 창작자들이 시장에 진입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유통업자 입장에서 이미 흥행력이 보장된 창작자에게 같은 비율을 주고서라도 문화상품을 받지, 시장에 검증되지 않는 신인에게 높은 대가를 줘서라도 문화상품을 받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온정주의적 관점으로 밀어 붙이지 말아야"

[서울=뉴시스] 윤정민 기자 = 정보통신정책학회와 한국미디어정책학회는 15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디지털 심화시대, 콘텐츠산업 생태계의 지속가능한 발전 정책: 문화산업공정유통법안, 이대로 좋은가' 세미나를 열었다. (왼쪽부터) 최영근 상명대 교수, 이승민 성균관대 교수, 이규호 중앙대 교수, 박천일 숙명여대 교수, 이희정 고려대 교수, 김유향 국회입법조사처 박사, 권남훈 건국대 교수, 황유선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연구위원. 2023.11.15. alpaca@newsis.com

토론자로 나선 법학계, 경제학계 관계자들도 일제히 문산법 재검토를 촉구했다.

오병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정고무신 사태는 작가와 제작업자 간 관계에 따른 사건인데 이 법안은 제작업자와 유통업자 관계를 다루고 있어 검정고무신 사태와는 사실상 아무런 관계가 없다"며 온정주의적 관점에서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법안이 통과될 경우 문화상품 제작과 판매부터 어려워질 수 있다"며 "취지에 맞게 구성하기 위해서는 법안에 명시된 금지 행위 유형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승민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검정고무신 사건은 잘못된 저작권 계약에 의한 불행한 사건이었으며 이를 (문산법과 같은) 강력한 규제 법안의 근거로 삼는 것은 정당화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오히려 이 교수는 문화산업계에서 저작권 계약서 작성이 없어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며 서면계약 체결·교부 의무 조항이 문산법에 들어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권남훈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상대적으로 협상력이 높은 사업자가 더 많은 몫을 가져가는 것은 자연스러우며 그 자체로 불공정하지 않다. 자유롭게 맺어진 사적 계약에 대한 정부의 개입은 불가피한 것일 뿐 바람직하다고 볼 수는 없다"고 밝혔다.

이어 "(정부의) 과도한 개입은 문화 산업과 생태계 발전에 저해될 뿐 아니라 중소 사업자 보호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특히 금지 행위 조항에 있는 '정당한 이유 없이는'이라는 내용은 웬만하면 하지 말라는 것과 같다"며 실제 규제 범위를 가늠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문체부 외 정부 출연연 관계자도 학계 입장에 동의했다.

황유선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연구위원은 "문화상품유통업자의 우월적 지위를 전제하고 있는데 이는 시장 구조와 경쟁 상황을 고려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단순화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황 위원은 "방송법 등의 적용을 받는 방송사업자가 (문산법의) 문화상품사업자(문화상품제작업자, 문화상품유통업자)에 포함돼 유사한 행위에 대해 복수 부처 규제를 받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전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alpaca@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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