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예가 세운 철원의 ‘태봉국’ 연호 적힌 8각 목간 발견
“짧은 역사, 현재 철원 수도성 비무장지대에”
20∼21일 목간 연구 전문가들과 판독 회의
경기 양주 대모산성 터에서 궁예(?∼918)가 세운 나라인 ‘태봉’의 연호가 적힌 목간(木簡·글을 적은 나뭇조각)이 출토됐다. 태봉은 신라말 궁예가 강원도 철원에 세운 나라이며, 양주 대모산성은 6∼7세기에 축조된 고대 산성이다.
짧은 역사를 가진 태봉과 관련된 유물이 처음 확인된 데다 각 면에 쓰인 글자도 120여 자에 달해 연구 가치가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궁예는 905년 수도를 송악에서 강원도 철원으로 옮기고, 911년에는 국호를 ‘태봉’으로 정했다. ‘태봉’이라는 나라 이름은 918년 궁예가 왕건에 의해 제거될 때까지 사용됐다.
15일 양주시 등에 따르면 최근 양주 대모산성 동쪽 성벽 구간 원형의 집수(集水)시설에서 길이 30㎝ 목간 1점을 발견했다.
이 목간은 나무를 8각으로 다듬은 다각면 목간으로 8면 가운데 총 6면에 한 줄씩 글이 적혀 있다. 남은 2면 중 1면은 비어 있었고, 다른 1면에는 얼굴 형체와 글씨가 적혀 있다.
글자가 남아있는 한 면을 해독한 결과, ‘정개 3년 병자 4월 9일’(政開三年丙子四月九日)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정개’는 태봉국에서 914년부터 918년까지 약 5년간 쓴 연호를 뜻한다. 즉 정개 3년은 916년을 의미하며, 육십 간지를 계산하면 병자년에 해당한다.
날짜가 적힌 나무 면에는 ‘성’(城), ‘대정’(大井), ‘대룡’(大龍)이라는 글자도 확인됐는데 ‘성의 큰 우물에서 큰 용을 위한’ 행위가 있었고 이를 기록했을 것이라는 추정이 나온다. 조사단은 목간이 실용적 목적보다는 의례와 관련됐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발견 당시 목간은 나무로 만든 배 모양의 조각과 함께 집수시설에서 출토됐다. 목간과 거의 비슷한 크기의 배 모형은 의례용으로 쓰였거나 주술적 의미를 담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학계는 국내에서 태봉과 관련한 목간이 확인된 것은 처음으로 보고 있다.
발굴 조사를 담당한 양주시 채규철 학예연구사는 “그동안 (국내에서 발견돼) 알려진 목간은 대부분 납작한 형태인데, 다각면 형태의 목간은 그 수가 많지 않다”면서 “궁예의 태봉국 수도인 철원성은 전체가 현재 비무장지대 안에 위치해 태봉국과 관련된 유물은 그간 국내에서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또 채 연구사는 “8면에 쓰인 글자를 합치면 120여 자”라며 “연대가 확실하고 지금까지 나온 목간 가운데 가장 많은 내용을 담고 있어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양주시와 기호문화재연구원은 오는 20∼21일 목간 연구 전문가들과 판독 회의를 열 예정이다. 채 연구사는 “판독 회의에서 목간의 용도와 문화재적 가치 등에 대해 면밀한 검토가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호 선임기자 sh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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